블로그 이미지
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896)
목회 (632)
인생 (179)
동경in일본 (35)
혼자말 (50)
추천 (0)
04-24 05:26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동경 국립신미술관에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전을 보다.

아침부터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서 외출한김에 녹본기(六本木)에 있는 국립신(新)미술관에 다녀왔다.
모르고 갔지만, 오늘의 메인 기획전은 [워싱턴 내셔널 캘러리전]이다.



물론 서양미술은 유럽이 그 중심이지만, 돈 많은 나라인 미국에 가치 있는 작품들이 의외로 많이 수집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그것을 확인했다.
이번에 일본에 들어온 작품은 모두 83점이다. 작품의 분류는 인상파, 포스트 인상파의 작품들이다.

마네, 모네, 드가, 르누와르… 그리고 고흐의 그림이 걸렸다.
하나같이 쉽게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다.
특히,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 두 점은 완전히 첫만남이다. 나는 그 앞에서 다리가 붙어 버렸다.



고흐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무래도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위의 작품이 아닐까 한다.
1890년 7월에 권총으로 자살했던 고흐가 1889년 9월 즈음에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람들은 지중해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배경의 무늬와 색감에서, 그리고 마르고 강렬한 눈빛의 표정에서 고흐의 정신과 조우한다.
그런데 오늘 이 작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구도로 그려진 다른 그림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도 역시 1889년9월 즈음, 그러니까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자화상이다.
컴퓨터 사진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데…
음, 이 그림의 느낌을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래서 사람들이 진품을 보기 위해 멀리 유럽까지 가는가 보다.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냥 그림 앞에서 숨을 죽이게 하는… 작품이다.

고흐는 1889년 5월8일에 스스로 생레미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독한 우울증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고갱과 싸우고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은 그 이전이다.
이후로 그의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 갔던 것 같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가서도 고흐는 그림을 놓지 않았다.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고흐는, 이 시기에 자신의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무려 40여 점 이상의 자화상을 남겼다.
고흐는 이 시절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한 사람에게서 여러 성격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자화상을 통해 고흐가 그렸던 것은, 자기의 얼굴이 아니라 자아였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잃어가는 자신을 그림을 통해 붙잡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붓의 터치가 굵었다. 어깨는 산맥처럼 뻗어 내렸다.
그는 왼손에 팔레트를 들고 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다.
눈동자도 파랑이다.
곱쓸의 머리는 마치 태양의 이글거림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그 눈빛이 강렬하면서도 우울하게 빛나고 있다.
마른 얼굴과 강조된 광대뼈가 창백한 푸른 빛의 안색과 조화되고 있다.
굳게 다문 입은 오래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눈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배경에는, 지워진 주변의 일렁거림… 그건 시간처럼 느껴진다.
겹겹이 고흐를 덮고 눌렀던 시간… 그리고 그 텁텁한 우울함.

나는 한 시간은 이 그림을 보았던 것 같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찾아 함께 그림을 보는 풍경은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는 젊고, 어린 사람들도 많았다.
그 군중 속에 멈춰서 그림 속의 고흐와 눈을 마주치고. 묻고 대답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다리가 아팠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거기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붙들렸다.
아직은 고흐와의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지만, 아직 무슨 말도 하지 못하겠다.
한참을 그의 자화상 앞에 서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일렁였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말들,
아마도 다시 고흐의 책을 읽으며 그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빈센트 반 고흐 (1853.3.30 ~ 1890.7.29)

1853년 - 3월30일 네덜란드의 흐로트쥔데르트지역 목사의 아들로 태어남
1857년 - 5월1일 동생 테오가 태어남. 반 고흐는 테오와 아주 가깝게 지냈으며, 평생 테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음
1869년 - 8월 고흐는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 들어가 일하게 됨
1873년 - 1월에 고흐의 동생 테오도 구필 화랑의 뻴기에 지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반고흐는 런던 지점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2년간 일함
1875년 - 반고흐는 구필 화랑의 지점에서 파리 지점으로 또 다시 자리를 옮김. 그러나 그는 파리에서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읽느라 화랑의 일을 소홀히 함
1876년 - 구필화랑에서 해고를 당하고 영국으로 감, 그리고 12월에 부모님이 계신 네덜란드의 에덴으로 돌아감
1877년 - 도르트레히트에 있는 서점에서 일하다가 신학공부를 하려고 5월에 암스테르담으로 떠남
1878년 -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던 반 고흐는 이 계획을 포기하고 브뤼셀에서 3개월간 복음 전도사 교육을 받음. 그러나 그는 복음 전도사로 임명받지 못했고 벨기에의 탄광지대인 보리나주로 가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며 선교 활동을 했음
1880년 - 보리나주에서 열심히 선교 활동을 했으나 종교권위층에서 그의 지나친 열의를 달가워 하지 않아 그는 선교 활동을 그만둠 . 그래서 그는 브뤼셀로 갔고 그곳에서 네덜란드 화가 안톤 반 라파드를 만나고 친구가 됨. 그 당시에 동생 테오가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함
1881년 - 고흐는 헤이그로 감. 그리고 다음해 그곳에서 창녀인 시엥을 알게 되지만 동생 테오의 반대로 헤어짐
1883년 - 고흐는 드렡네에서 몇 달간 머무르다가 아버지가 새로 옮겨 간 누에넨으로 가서 작품활동을 시작함
1885년 - 3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 고흐는 그림의 모델이었던 한 여인과 연애설이 퍼지자 누에넨을 떠나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으로 가게 되었고, 다시는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않음
1886년 - 안트베르펜에 있는 동안 고흐는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 작품 공부를 몰두, 그러나 전통 아카데미의 화풍과 달랐던 그의 작품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함.
그는 결국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가서 코르몽의 화실을 다니며 에밀 베르나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루이 앙크탱 등을 알게 됨
1887년 - 친구가 된 베르나르와 함께 파리에서 멀지 않은 아니에르에 가서 센강의 풍경을 자주 그림. 그는 드가의 그림 모델이기도했던 이탈리아 인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를 알게 되어 사귀게 됨 . 또한 고흐의 미술품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미술재료 상인인 페르탕기와도 친구가 되었음
1888 - 파리가 싫어진 반 고흐는 프로방스의 아를로 감, 그리고 그곳에서 예술가들의 모임을 만들 생각으로 <노란집>을 빌려 장식했음. 10월에 폴고갱도 아를로와서 노란집에서 머뭄. 그러나 고흐와 고갱은 성격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자주 싸웠으며, 결국 성탄절 전날밤에 고흐는 고갱과 싸운후 자신의 한쪽귀를 잘라 버리는 사건이 발생함
1889년 - 테오의 친구인 여동생 요한나 봉거와 결혼했으며 아들을 낳아 반 고흐의 이름을 따 빈센트라고 이름을 지음.
그해 5월8일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에 있는 정신 병원에 입원함
1890년 - 동생 테오의 노력으로 고흐는 파리 근교에 있는 오베르로 옮기게 되었고 가셰 박사에게 치료를 받음. 그러나 7월27일 권총으로 자신을 쏘고 마지막으로 동생 테오를 만난후 7월29일 세상을 떠남
1891년 - 1월25일 고흐가 세상을 떠난지 6개월 후에 동생 테오도 세상을 떠남 , 그리고 오베르에 있는 반 고흐의 묘지 옆에 묻힘
* 살아 생전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반고흐의 그림은 화랑에서 일하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졌고 테오는 고흐와 고갱의 그림을 미술 재료 상인인 페르 탕기에게 싼값게 팔게 되면서 후에 고흐가 죽고 나서 페르탕기에 의해 많은 고흐의 그림들이 깨끗한 상태로 소장이 되어있었다고 하는군요.

Posted by makario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