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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5 목양칼럼


밖에는 하루 종일 눈이 오고 있습니다.

시야를 가릴 만큼 펑펑 쏟아지는 눈이지만, 정작 땅에는 하나도 쌓이지를 못합니다.

지표면이 따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은 떨어지자마자 녹아서 촉촉하게 땅을 적시고 있습니다.

눈에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성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눈이 많은 지역들이 대부분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잘 되는가 봅니다.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함박눈이 내려도 쌓이지 못하는 이런 풍경


우리도 그와 같은 것은 아닐까요?

인생에 고난과 시련이 많다고 꼭 냉랭하고 거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험악한 세월을 살아도, 그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면 결코 한()이나 응어리가 남을 리 없습니다.

오히려 그 힘든 세월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항상 감사하는 신앙이 깊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이 망가지는 것은, 적어도 환경 탓은 아닙니다.

모든 환경을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따뜻한 땅 위에는 함박눈조차 쌓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심령에는 성품을 망가지게 하고 신앙을 후퇴시키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하루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은 생각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미 닥친 일에 어찌 의미가 없겠습니까? 과연 우리가 만난 시련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이 없겠습니까?

은혜는 고통보다 큽니다. 은혜는 그 어떤 시련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동안, 그 무엇도 우리를 비참하게 할 수 없습니다.

고난을 이기는 것은 고난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진심으로 고난조차 두렵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환경으로 흔들 수 없는 근본적인 행복이 그 삶에 나타납니다.

그러니 오직 은혜를 사모하며 삽시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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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5 목양칼럼


자녀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속상해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유별나게 말을 듣지 않는 아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아이들마다 개성이 다르고 성품의 차이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아이들은 착한 성품을 타고 났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후천적 영향에 좌우되고, 특별히 부모의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의외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에, 그 언어의 대부분이 자기 의사 전달과 명령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당연히 관계는 위기를 맞을 것입니다. 소위 아이들의 절기(絶技)인 ‘부모 말 뒷등으로 듣기’는 그렇게 생겨납니다.

대화(對話)는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 대화의 기술은 역설적으로 경청(敬聽)의 기술입니다.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 정성껏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내 말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대하여 중간에 말을 끊거나 귀찮아 하는 태도를 보이면, 당연히 대화는 실패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끝까지 자기 진심을 말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아이와 부모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들어줘야 잘 듣게 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대화를 할 때에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화를 통해 좋은 결과나 느낌을 기대하게 되고, 그런 기대감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잘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화할 줄 모르는 부모들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합니다. 그 말의 대부분이 자기 생각, 느낌, 주장에 대한 것들이고, 방식도 명령형입니다. 세게 말하지 않으면 아이가 듣지 않는다는 불쾌한 감정이 이미 처음부터 깊이 스며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마음의 문이 닫히면 귀가 열려 있어도 전혀 그 듣는 말의 의미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어려서는 ‘혼나기 싫어서’ 듣는 척이라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춘기에 접어들면 분노가 쌓이고 반항이 시작될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사귐이 필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계속 대화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고 공부를 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의 감정과 느낌에 대하여 표현하게 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해와 공감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를 자기 편으로 믿게 되고, 그런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부모의 쓴 소리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대화>가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습니까?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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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4 목양칼럼 


나이를 먹으니 더더욱, 사람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교양과 지식의 수준도 다양하고, 사고방식도 정말 많이 다릅니다.

세상에 왜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고 전쟁이 쉬지 못하는지를 나름 이해할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극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가지는 일반적인 반응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자기만 사람이고 상대는 사람 같지도 않다는, 아주 독선(獨善)적인 반응이지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상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사람이고 상대방이 사람 같지 않을 뿐입니다.


이 유치한 구조가 세상의 많은 갈등과 다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이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종족, 국가, 신앙, 풍속을 혐오하고 자기 중심적인 기준을 근거로 파괴적인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계속되는 지구촌의 부조리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떨까요?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미덕과 교훈이 ‘사랑하라’는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친절하게도, 그 사랑에 대하여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폄하하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교회 밖을 더럽고 냄새 나는 세상으로 깍아내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불의한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분명한 사실은, 불의한 세상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것을 심판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그리스도인은 인내하며, 겸손하며,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 시간(하나님의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뿐입니다. 이조차 우리의 생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시야를 더 좁아지게 하고 마음을 더 옹졸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은 연륜이 깊어갈수록 더욱 관용이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 순결함의 저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로서 마땅한 처신인 것입니다.


사람은 다양하고 전부 내 마음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특별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곤한 삶조차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신앙으로 누리는 은혜를 내세워 우쭐대거나 자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러라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결코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구하십시오. 

사랑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치료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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