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히까리가오까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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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4 목양칼럼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교회는 더이상 교회일 수 없습니다.
희망은 조직이나, 건물이나, 아이템이나, 거창한 비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눈가림에 지나지 않으며 언젠가는 낡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참된 희망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속에서 주어지는 진리만이 허무한 인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이 임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에, 우리는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에 우리는 세상에서 구별되며, 차원이 다른 이해를 가지게 되고, 본질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고귀한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인이든, 교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거창한 이름으로 치장을 해도,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으면 죄의 온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하찮은 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정말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외면해 왔던가요?
세월은 흘러 삶의 날은 가버리고 인생의 종착역은 가까와지는데, 아직도 헛된 것에 묶여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자아입니까? 얼마나 무력한 교회입니까?
아, 하나님의 마음을 갈망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온 맘을 쏟아 내게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것만이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나와 우리 교회에 부어 주소서. 충만하게 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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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9~15
(8: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8: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8: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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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목양칼럼
아침 밥상부터 아들에게 한참 훈계를 했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묵묵히 듣고 있던 아들이 마지막에 한 마디를 합니다.
"아빠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만, 나이 스무살 짜리가 어떻게... 아빠 말씀처럼 살려면 사십 살이 되어도 다 그렇게 하기는 힘들겠네요!"
딱, 말문이 막혔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은 어려운 것이고,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언제나 너그러움과 기다림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훌륭한 것은 무엇이나,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과정이 어렵고 지루하다고 하여서 속성을 좋아하고 편법을 사용하면, 결국 사람이나 물건이나 제대로 된 완성품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큰 그릇은 언제나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성취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 너그럽게 이해하며 기다려준 은혜가 있기 마련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 왜 속담이 되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 하십시오.
인생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냥 흐르는 것 같아도, 다 의미가 숨어 있고 그 의미와 의미의 과정 속에서 사람은 성장하고 진보하게 됩니다. 흰 머리만 허무하게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월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철이 들어 갑니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생에는, 굳이 후회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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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목양칼럼
사람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도 그러하고 마음도 그러합니다.
이 두 가지 영역은 사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많은 영향력을 주고 받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몸의 질병을 이기기도 하고, 반대로 몸이 피곤하면 마음까지 약해지거나 병들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양편의 건강을 잘 돌봐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격언과 같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특별히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에 참으로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들조차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무모하게 도전만을 하다가 심신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매우 뛰어난 지적 능력과 높은 교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대체로 마음의 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몸의 관리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지나친 긍정과 과도한 열정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물러나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의 특징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장애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자기의 능력 밖의 일을 걱정하는 것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람보다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무능력을 인정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와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십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고백 중의 하나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혹은 "나의 도움이신 여호와"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내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고, 비로소 하나님의 손을 바랄 수 있으며, 또한 무모하게 망가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 너머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양약이 아닌가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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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목양칼럼
은혜가 없으면, 사람이 이기적이 됩니다.
한 동안 매우 너그러운 마음으로 생활한다고 하여서 자신의 내면에서 이기심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순진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은혜가 옅어지는 순간, 숨어 있던 자기 중심성과 이기심은 마치 괴물처럼 되살아나서 우리의 삶을 순식간에 덮칩니다.
때문에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 삶의 질서를 지속하도록 꾸준히 자기를 돌보는 사람이 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은혜 생활이 성실함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적은 교활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지만, 기회만 생긴다면 주저없이 신앙의 등에다 비수를 꽂을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속성이며 정체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믿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며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밤이 두려운 것을 아십시오.
그 밤이 지나면, 내일 아침에는 자신에게서 괴물의 부활절을 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은혜로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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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목양칼럼
곡식이 자라는 들판에 나가보면, 허수아비(scarecrow)라는 것이 있습니다. 곡식을 먹는 새를 쫓아버리기 위해서 사람의 형상으로 기둥을 세우고 거기 사람의 옷을 입혀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치 사람이 들판에 서 있는 것 같아서, 소심한 새들이 쉽게 날아들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속임수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의 옷을 걸치고 사람의 모자를 쓴 허수아비는 결국 그 실체가 발각 당하게 되고, 그러면 새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들이 앉아 쉬어가는 놀이터가 되고 맙니다.
한낱 새들도 ‘사람’의 실체가 옷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새들보다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마치 좋은 옷을 입으며 좋은 사람이고 비싼 옷을 입으면 귀한 사람인 줄 압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런 선입관과 예단 없이 정직하고 순수하게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그의 옷을 보지 말고 그의 마음과 인격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좋은 옷만 사려고 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기도해야 합니다. 겉으로 화려한 옷에 집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는 그 내면의 허술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안으로 꽉 채워지면, 겉으로 좀 부족한 것을 취해도 불행하거나 초라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허수아비처럼 살지 않도록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외식하는 자를 미워하신다는 것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직이 최선의 방책인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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