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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1 목양칼럼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의 복도에서 매미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 6층입니다. 매미는 뒤집혀 있었고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옆을 지나가는 순간 하늘을 향하고 있는 다리가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매미를 들어서 난간 밖으로 놓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 죽어가던 매미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신나게 날아서 선회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 매미의 마지막 비행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매미는 분명 날았습니다. 아주 신나게 살아났습니다.

 

생명은 어떤 것이나 한결같이 귀하고, 그렇게 때문에 절박한 것입니다. 당장 살아있던 것이라도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먼지로 돌아갑니다. 어떤 날을 살았고, 어떤 능력을 가졌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모든 화려함은 살아있는 날의 빛깔이며, 죽음은 모든 것을 회색으로 덧칠해 버립니다.

하지만 죽음에 직면했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매미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사력을 다해 날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의 권리는, 그 생명을 생명의 빛깔로 최선을 다해 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을 때에,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침범하는 회색빛의 죽음과 싸우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자기답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매미는 날개를 퍼득여 날고 사력을 다해 울어야 하고, 사람은 끝까지 희망을 믿어야 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이루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그 업적에 비하여 죽음은 한 없이 초라하고 실망스러운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기들의 인생이 끝났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높이 날고 크게 울 수 있는 능력이 더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쇠약해지는 것은 분명 섭섭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늙고 노쇠한 것이 아직 죽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한 모금의 호흡이 있다면, 한 줌의 생기가 있다면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해볼 수 있습니다. 그 시도의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시도한다는 것이 곧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어버린 사람들, 그래서 이미 죽기도 전에 묘자리를 찾아보고 자기의 묘비명부터 써두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맡기고, 아직은 삶을 사십시오. 마지막까지 자기 하늘을 향한 날개짓을 멈추지 마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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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목양칼럼

 

1945년8월15일,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36년 동안 국권을 잃었던 당시의 대한제국은 이미 나라의 모든 조직과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해방된 것입니다.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군대의 힘도 정치의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민초들의 힘이었습니다. 저항하고 또 저항하며 내 민족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름 없는 죽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과 북으로 갈라서는 38선은 다시 민족의 허리를 끊고 동맥을 잘랐습니다. 통탄스럽게도 한국의 동란은 일본의 경제적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 갈라진 허리로 고통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세계에서 2~3번째를 다투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패전국가임에도 독일이 지난 70년을 고개 숙여 사죄와 반성을 계속해온 것과 달리, 일본이 만행을 부인하고 사죄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 온 것에는, 피해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부실하여 일본보다 미약한 상태로 지내온 것이 제일 큰 이유입니다. 만약 한국이나 중국, 필리핀, 태국이 프랑스나 영국, 이태리, 스페인과 같은 역량으로 성장했다면 일본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결국 힘이 없어 나라를 잃었고, 힘이 없어 사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며 70년을 보낸 것입니다.

더러는 말하기를, 우울한 과거를 희망찬 미래의 장애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희망이 모두의 희망은 아닐 것입니다. 희망은 과거와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고민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찾아집니다. 희망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인류의 보편적 지혜 위에서 탄생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고민하는 '역사'라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광복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빛을 찾고 모든 것을 본래의 자리로 돌린다는 광복은 아직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숙고하고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평화와 안녕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동북아의 이웃 국가들에게 다시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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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8 목양칼럼

 

한국에서 지인을 통해 비타민을 소개 받았다. 예전에도 간혹 비타민C를 먹기는 했었는데, 일일 권장량에 해당하는 1000mg에 해당하는 알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커피믹스와 같은 막대봉지에 들어 있고 '아스코르빈산'이라는 낯선 이름이다. 후에 인터넷을 통해 알아 보았더니, 이것이 99.9%의 비타민C 화합물이고, 특별히 영국산을 알아준다고 한다. 한 봉지가 3g인데, 이 양이면 약 3000mg에 해당한다고 한다.

과도하면 소변으로 다 배출되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단다. 몸의 독소를 해독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비타민이 필요하고, 특별히 피로감을 줄여주는 것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고용량의 비타민을 상복하는 것을 비타민요법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은, 이 비타민을 먹으면서 피로감이 정말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가벼워졌고, 잠을 줄이고도 덜 피곤하게 되었다. 효과를 보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더 챙겨먹게 된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뭔가 덜 건강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한국 속담에 "맛을 봐야 맛을 안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의 반복 같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과 같이 직접적 경험이 곧 확실한 지식의 습득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무리 설명하면 무엇하겠는가? 직접 먹고, 맛을 보고, 효과를 봐야 비로소 사람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게는 비타민 만큼이나 너무 확실한 신앙의 경험들이 적지 않다. 어려서부터 신앙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라오며 본 것이 그러하고, 일찍 목사가 되어 만나고, 듣고, 경험한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내게는 너무 좋은데, 이걸 도대체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하지가 않다.

하기사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건 목사의 잔소리나 설교일 뿐이다. 신앙은 본인이 먹어봐야 비로소 세상의 피로가 풀리고, 사는 맛을 안다. 진리의 힘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자의 행복을 알게 된다.

제발 말로만 듣지 마시라. 여러분의 것으로 실천하고, 꿀꺽 삼켜 그 맛을 보시라.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여러분의 삶으로 경험해 보시라. 이거 정말 좋다. 비타민보다 좋다. 아니,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좋다.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초보다 좋다. 확실히 좋다.

이 복음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목적이다. 나는 이것을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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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8 목양칼럼


지난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건축가 정기용씨는, 유언과 같이 이런 말씀을 남겼다.

"문제도 이땅에 있고, 그 해답도 이땅과 이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의 건축으로는 기적의 도서관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가 유명하다.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설계함에 있어 항상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배려의 마음과 사색이 곳곳에 스며 있는 건물을 지으려 했다고 평한다.

콘크리트는 본래 차가운 것이다. 꽃과 나무를 밀어내고 그 위에 군림하는 콘크리트는, 인간의 문명을 잘 상징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콘크리트는 인간을 품지 못한다. 인간의 정서를 단절시키고 고독하게 만든다. 그 피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하여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것이 건축가의 숙제다.

사람들은 오랜 서구 건축의 역사를 숭상하고 외국의 건축가를 찬양한다. 그러나 나는 정기용씨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남의 땅에 사는 사람이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마치 나무에게 본토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가 숨 쉬고 살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땅을 아는 사람이 가장 그 땅에 적합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도 그렇지 않을까? 신앙의 진리를 토착화 하는 것은 분명히 부작용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래 진리를 지식과 학문의 테두리에 가두어 정의하는 일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신학이든, 어떤 교리이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없다. 다만 그 특별한 시대와 장소에서 적절하게 사용되었기에, 오늘 우리가 그것을 존중하고 숙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의 문제도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해답을 찾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소의 부작용과 오류가 두려워서 옛것만을 고집하고 그 경계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히려 고립을 낳고 시대의 현실을 포기하는 폐해가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많다.

욕을 먹지 않고 성취를 이루는 것이 어디 가능하겠는가! 

남의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진리의 본질을 끈질기게 붙잡고 진보해 나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인류의 발전이든, 신학의 발전이든... 결국에는 같은 원리, 같은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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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7 목양칼럼

 

예년보다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역시나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왔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 더위를 잠시 에어컨 아래서 피해 보아도, 하루해가 저물 때 즈음에는 역시나 몸과 정신이 흐물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한낮에는 잠시만 밖을 외출해도 흠뻑 땀에 젖기가 일쑤이고, 음식보다 시원한 음료가 더 땡겨서 결국에는 입맛을 잃는다.

열대야에는 선풍기를 켜두고 잠이 들어서 아침이면 온몸이 매를 맞은듯 아프고, 에어컨과 실온 사이를 오고가다보면 코도 맹맹한 것이 감기 아닌 감기 같은 감기 비슷한 상태에 빠진다.

그래도 역시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다. 흠뻑 땀을 낸 후에 찬물에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앉는 맛이 좋고, 그렇게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는 맛은 더 좋다. 더위를 이겨 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삼계탕이나 우나기동(장어덮밥)도 이 계절의 별미이고, 얼음 동동 냉커피나 냉보리차도 역시 여름이라야 제맛이다.

 

모든 상황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불평하는 사람은 여름은 덥다고 짜증이고, 겨울은 춥다고 화를 낸다. 봄은 짧아서 섭섭하고 가을은 낙엽이 번거롭단다. 이것은 분명히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결정이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에 대한 사람의 습관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이유가 있고 적당하며 옳다. 이 믿음에서 출발하면 상황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그리고 삶의 내용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믿음이란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과연 우리의 마음을 어느 편에 두고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들기 보다는, 모든 것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낫다. 믿음은 우리를 유순하게 하고, 너그럽게 한다. 믿음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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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2 목양칼럼


사람은 섬세하다. 섬세하다는 것은 작은 자극까지 느끼고 반응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작은 것이고, 불행에 빠져 절망하게 하는 것도 역시 작은 것이다. 평소에는 아주 사소하게 여기던 작은 일이 때로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잔에 물을 부어 보자. 신기하게도 물은 잔의 높이보다 약간 더 부푼 순간까지도 넘치지 않는다. 물의 표면장력이 서로 붙잡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 방울의 물이 더해지는 순간 비로소 흘러 넘치는데, 넘치는 양은 마지막 더해진 한 방울이 아니라 잔이 다소 홀쭉해질 때까지 흘러 넘친다. 넘치기 직전의 순간을 '임계점'이라고 한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많은 물이 아니다. 한 방울이면 충분한 것이다.

사람의 내면도 이와 같다. 잘 참고 견딘다고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정말 못 느끼고 몰라서 견디는 것이겠는가? 살아야 하니까 참는거지... 그러나 그 인내를 방치하면, 결국에는 임계점이 다가오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의 끝은 아니겠지만, 적지 않은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람을 이해해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다.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생각 없음의 무지 속에서 사람은 자기도 죽이고 남도 죽일 수 있다. 예수님은 남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다. 무서운 경고이다.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교훈이다. 무의식의 한 마디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누군가를 잠 못 들게 하지 말아야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잠자기 힘든 열대야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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