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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5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 보셔요
  2. 2012.07.11 욕망이라는 이름의 괴물
  3. 2012.07.10 마음을 맡아 주세요!

 

 

2020-03-15 목양칼럼

 

역시나 위기는 본질을 드러냅니다.
본래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말로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자 여실히 그 진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진심은 본인도 모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은밀하고, 또한 남도 속이지만 자신도 속일 수 있을 만큼 교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고 어려운 때에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이 결국에는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과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흡족한 감동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실히 평소와 다른 모습에 실망하거나 당황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깨끗이 닦였던 거울도 잠시 방치하면 무수한 손자국이 생기고 알 수 없는 얼룩에 흐릿해지잖아요. 우리 마음도 닦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여 실망스런 모습이 있더라도, 아직 주저앉지 마십시오. 내가 내 마음을 살피고 닦지 못했구나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보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나누고, 더 중요하고 급한 것부터 먼저 실천하고, 의미 있는 일을 앞에 두고, 사람을 귀히 여기면 됩니다. 그러면 다시 마음이 맑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날마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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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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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5 목양칼럼


남의 떡은 거대하다. 단순히 '크다'는 단어를 바꾸어 '거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떡의 크기에 대한 재고(再考)가 아니라 욕망의 크기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진실로 이 막무가내의 몬스터(monster)가 한 마리씩 도사리고 있다.

기회를 보아서 우리 마음을 단숨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몬스터의 존재는 누구나 버겁고 껄끄러운 현실이다. 그래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기 전까지 우리는 이 괴물을 부정하거나, 사소하게 여기거나, 외면하려고 한다. 마치 자기의 마음에는 전혀 괴물이 살지 않는 것처럼, 남의 '욕망'에 대하여만 비판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모든 욕망은 위험하다. 욕망에게 '비전'이니 '긍정'이니 하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혀준다고 하여서 안전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치 사나운 불독에게 우스꽝스러운 애완견의 옷을 입혀 놓는다고 하여서 성격이 온순해지거나 이빨이 덜 날카롭게 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나는 내 마음에 있는 욕망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 '마흔'의 해가 걸린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하는 것은, 주변을 둘러봐도 여전히 내 또래와 혹은 연배가 더 되는 사람들 중에서 아직도 자기 마음의 욕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우스운 일이다. 이 놈을 남보다 조금 더 안다고 하여서 이 괴물을 다루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욕망은 언제나 자기가 가진 것은 사소하게 보고 상대적으로 남의 것은 크게 보게 만든다. 욕망은 꽃을 그대로 놔두지 못하고 꺾어야 직성이 풀린다. 욕망은 간절함을 주지만, 그와 함께 시기의 마음도 준다. 욕망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서도 마치 모든 것을 가져야 마땅하다는 식의 어리석은 생각을 끓어오르게 한다. 욕망은 책임감이 없으며 언제나 다른 사람과 환경을 탓한다. 욕망은 자기를 희생할 만한 가치가 밖에 있다고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욕망 안에서는 결코 희생이 있을 수 없다. 욕망은 먹어도 배가 고프며 얻어도 가난하고 입어도 추우며 올라가도 비천하다. 욕망은 아귀(餓鬼)와 같아서 언제나 허허롭다.

욕망은 의식보다 무의식을 좋아한다. 때문에 의식을 거치지 않는 습성(習性)은 욕망이 활약하기 좋은 조건이 된다. 자기 마음을 깊이 살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욕망은 작아지지만, 바쁘고 산만하며 즉흥적인 사람에게서 욕망은 태산(泰山)처럼 압도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욕망 앞에서 두 가지로 갈린다. 십자가를 경험하고 그리스도께 주권을 온전히 위임하는 기도는 욕망을 죽이지만, 십자가 없는 기도는 욕망의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오히려 욕망이 강성해지고 그 욕망을 이루어주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해지는 신자들이 생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도 기도를 거듭하는 것은, 신앙 때문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투쟁(鬪爭)이다. 참으로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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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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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1 목양칼럼

 

사람이 피곤하면 예민하게 되고, 예민하면 짜증스럽다. 육체적인 피곤함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피곤함은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순환한다.

피곤한 사람의 주변에서는 피곤한 사람들이 양산된다. 말과 표정, 느낌의 찌꺼기가 오물처럼 사람들을 습격한다. 단지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마음을 고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정말 피곤하게 만드는 원흉이라고나 할까!

세월은 사람을 좋게도 변하게 하고, 나쁘게도 변하게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병적이다. 한 번 그 흐름에 빠지면 헤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인생의 적이다. 좋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점점 나아지는 변화가 꼭 필요한데, 스트레스는 나쁜 변화를 주도한다.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이미 죄를 짓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에 충분히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의 상황에 빠지면 사람은 대부분 나쁘게 변해간다. 아무에게나 짜증을 내고, 자기를 쉽게 변명하며, 반성하지 않고, 흥분하고, 때로는 우울하고, 심지어 웃으면서도 슬프다.

나는 스트레스가 사람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향하여 하나님은 땀 흘리는 노동과 땅의 엉겅퀴와 가시나무의 저주를 말씀하셨다. 쉽게 풀어 말한다면, 세상이 맘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노력해도 실패하고, 욕심 부리지 않아도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은 고민하고 힘겨워 하며 살게 된 것이다. 결국 아담 이후로 이 저주의 굴레에서 사람은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요즘 기도의 제목은 나의 마음의 주권을 주님께 위탁하는 것이 전부이다. 나이를 먹고, 언제부턴가 ‘문제’도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다는 것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를 반응하게 하고, 생명의 의욕을 가지게 만든다. 배고픔을 모르면 먹는 즐거움도 모르게 되는 것처럼, 문제의 시기를 통해 우리는 평안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러니 문제도 필요한 것이며, 인생의 일부이다.

다만 그 문제를 통해 스트레스 상태에 휘말리는 마음이 진짜 문제이다. 실망과 좌절을 겪고서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얼마나 사소하고 부끄러운 옹졸함이던가! 좀 더 대범하고 강단 있게 대처했다면 문제의 시기가 오히려 자존감을 높이고 긍지를 주지 않았을까? 마음이 암울한 환상을 만들고, 행동이 그에 반응했기 때문에 실수했던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 마음이 진짜 문제다. 산책길에 줄을 풀어주면 사방으로 날뛰며 뒹구는 강아지처럼, 문제를 기회 삼아 여실히 허접함을 드러내는 나의 마음이야말로 내 인생의 원수이다.

예수님, 내 마음을 좀 맡아주세요. 줄로 묶어 주세요. 그러나 다치지 않게 조금은 부드럽게 대해 주세요.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을 만져 주세요.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을 안아 주세요. 미련하고 좁은 마음이 소중한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내 마음이 더 이상 나의 소유가 아니라 당신의 소유라고 말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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