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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대학에 떨어져서 드리는 감사


맏아들 준혁이가 대학입시에 떨어졌다. 예비합격자 발표가 3차까지 끝나려면 아직 3월27일까지 남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 인생에서 처음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는 아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다. 무엇보다 우리 가정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 감사하다.


1. 준혁이를 임신했을 때, 반전치태반으로 진단 받았다. 임신기간 고생도 했고 결국에는 수술로 출산해야 했다. 그러나 건강하고 너무 예쁘게 태어나 감사했다.


2. 준혁이는 어린 시절에 중이염을 심하게 앓았다. 의사는 청력이 70%도 안된다는 심각한 경고를 해주었다. 아내는 둘째를 업고서도 준혁이를 위해 열심으로 병원을 다녔다. 그 헌신과 사랑 속에서 아이는 온전히 회복되었고 이후로 건강했다. 그 건강이 늘 감사했다.


3. 준혁이가 4학년에서 5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본으로 왔다. 무거운 짐을 배낭으로 지우고 찬비를 맞으며 교회에 도착해서 사무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재웠다. 한 두 달은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일본어가 전혀 안되는 아이를 일본 학교에 보냈다. 처음에는 이지메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는 묵묵히 이겨냈다.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감사했다.


4. 준혁이의 중학교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상담했을 때에, 담임교사는 말했다. 아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가끔 잊을 만큼 언어와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대단히 빨리 잘 적응했다고 칭찬도 했다. 우쭐해지는 마음 속에서, 아이를 보는 내 눈이 따뜻했다. 나의 주님도 웃고 계셨다.


5. 중학교에서 농구부를 했다. 아이는 덩치가 좋고 키가 커서 '센터' 포지션을 맡았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 시절에 식구들은 준혁이의 땀냄새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 때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가깝게 지낸다. 하나님이 이국 땅에서도 아이에게 좋은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했다.


6. 고등학교 입시는 치열했다. 사립학교는 경제적인 형편상 무리였고, 국립학교 중에서 갈 만한 학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오이즈미고등학교'에 올인을 해야 했다. 보통 서너 학교에 지원을 해서 그 중에 선택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직 하나만 지원하겠다고 했더니 담임이 놀라더라. 더구나 그 시절 아내는 우울증이 와서 집안 분위기가 더 힘들었다. 아이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이겨냈고 자랑스럽게 합격했다. 덕분에 둘째는 훨씬 수월하게 그 전례를 따랐다. 사교육 한 번 없이 입시를 잘 감당케 하신 은혜가 감사했다.


7. 대입을 위해서는 고2 정도부터 마음을 잡아야 했는데, 아이는 흔들렸다. 고3에 들어서서는 심지어 몰래 학교를 빼먹기도 했다. 어디 갔었냐고 물었더니 공원에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무슨 방황이었을까? 나는 지난 10월에야 알고 둘이 상담을 했고, 아내에게는 최근에 입시가 끝나고서야 고백을 했다. 방황하지 않는 청춘이 어디 있으랴... 그도 잘 넘긴 것 같아 감사하다.


8. 그리 신령하지는 않지만, 나는 입시와 함께 실패를 예감했다. 아니,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에 이미 예감했다. 그러나 실패도 인생의 엄연한 부분이고, 그것을 잘 이겨내는 것이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오랜 시간 '성공적인 실패'를 위해 기도했고, 아이와 얘기를 계속 나누었다. 그 소망들이 잘 심겨진 것 같다. 아이는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또한 그것을 발판으로 내일의 각오를 마음에 가졌다. 훌륭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이 점에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9. 아내는 자신의 입시경험에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았다. 그 트라우마를 아이에게 물려주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합격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아이는 떨어졌다. 하지만 주님이 다스리는 우리집은 달랐다. 실패 속에서도 매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아무도 좌절하거나 상처 받지 않았다. 어쩌면 준혁이의 경험을 통해 아내가 내적인 치유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제나 은혜는 고통보다 크고 놀랍다.


10. 준혁이의 실패로 둘째가 정신을 바짝 차리는 분위기다. 매일 '공부하기 싫다'를 입에 달고 시험공부를 하던 녀석이다. 그런데 요즘 시험기간이다. 아이는 매일 새벽 5시까지 스스로 공부를 하고 학교에 등교를 했다. 형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인지, 입시와 진로에 대하여도 관심이 뜨겁다. 역시 첫째는 개척자로 살고, 둘째는 눈치로 사는가보다. 아무튼 실패가 약이 되었으니 이것도 감사한 일이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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