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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11 유감스러운 데자뷰
  2. 2013.02.10 권력은 위기다 :: 하만에게서 얻는 교훈
  3. 2012.09.23 자기를 점검하라.





일본의 정치가 막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이 발생하기 전부터 수상인 ‘아베’를 둘러싸고 터져나오는 스캔들로 인하여 일본은 시끄러웠다. 지지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중에서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일본의 빈곤한 정치적 환경으로 인하여 아베는 권자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터졌다.
이제는 세계적인 유머 코드가 되어버린 ‘아베노 마스크’를 제외하고라도, 일본은 정상적인 국가들의 방역대책을 따라가지 못했다. PCR 검사는 제한되고, 병원은 환자를 받을수록 재정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이다. 의료용품의 부족을 돕겠다고 나선 정부의 알선으로 병원에 공급된 소독용 알콜액은 기존 가격의 4~8배가 되어 “사기다!”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일본이 사회적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이만큼 유지되는 현실은, 분명히 높은 시민의식이 그 바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높은 시민의식은 정치적 참여로 이어지지 못해, 가장 뛰어난 시민들이 가장 멍청한 정치인들의 지도를 받고 있다.

아베는 이미 최장기의 총리라는 경이적인 이름을 예약했다. 그러나 그 이름이 과연 명예가 될 것인지, 수치가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그가 장기적으로 고집했던 ‘아베노믹스’는 꺼져가는 일본의 경제적 심장을 다시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 무지막지한 재정정책이 앞으로의 일본을 더 비참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현실이다.
2020년의 동경 올림픽은 어떠한가? 팬데믹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신속하고 단호해야 했다. 올림픽을 후쿠시마 부흥의 선전의 장으로 이용하려던 욕심 때문에, 일본은 코로나19를 거의 방치 수준으로 관리했다. 결과적으로 시간과 돈도 잃고, 목숨도 잃는 선택이었다.

정치권력에서 이런 류의 문제들이 터져나온다는 것은, 이미 정권의 생명이 다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런 징조들을 높은 시민의식이 읽었다면, 지난 몇 번의 선거들의 결과가 달랐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지독하게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로 인하여 정치가 외면받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번에는 G7의 중국 때리기에 행동대장을 자처할 모양이다. 이것이 분명 G2로 성장한 중국의 극렬한 반감을 살 것을 알면서도, 일본과 일본 총리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하여, 그리고 새롭게 초대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기꺼이 악역을 감당하겠다는 모양새이다. 
사실, 일본은 과거에 G2의 영화를 누렸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한 방으로 인하여, 장기적인 침체와 몰락을 경험했다. 그런 과거의 교훈(?)에서 일본은 지나칠 정도로 미국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번의 중국과의 충돌도, 일본이 미국의 편에 서는 한 별일 없이 무사하게 지나갈 것이며, 오히려 중국의 몰락을 통해 일본의 새로운 기회가 생겨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는 몽상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이미 일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오래 지속된 미국의 패권에 대하여 권태감과 반감을 가진 나라들도 세계에는 이미 많다. 결국 미국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뜻대로도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중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며 일본에 치명적인 손해를 가할 정도의 위력은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곧 정권을 내려놓고 물러날 아베가, 일본의 국제적 위상에 지극히 중요한 결정을 미리 내려놓고 퇴임하려 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마치 한국에서 탄핵을 당해 식물 대통령인 상황에서도 미국의 대중국 위협인 ‘사드’를 성주 땅에 들여와 골프장에 설치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떠오르게 한다. 그 무책임한 결정으로 한국은  한동안 중국의 다각적인 보복을 당해야 했고, 외교적인 멸시를 참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은 계속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위기는 사람을 드러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아베는 일본의 총리감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합리적인 비전이 없었으며, 그의 주변은 무능력했다. 권력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패도 문제지만, 그 부패를 교정하려 하기 보다는 은폐하고 대충 넘어가려 하는 의지가 더 문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일본은 전후(戰後) 최고의 위기를 당하고 있다. 미국의 한 방을 먹고 잃어버린 10년을 전전긍긍했지만, 지금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의 위기는 누구의 탓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의 위기이며 동시에 전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며, 또한 이미 일본의 국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과연 일본은 이대로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저력을 보여줄 것인가? 그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과연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알고 있을까?  
노쇠한 이 아시아의 나라가, 탈아입구의 꿈에서 깨어, 주변국과 협력하고 좋은 이웃으로 상생하는 미래를 다시 설계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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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0 주일예배설교

제목 : 권력은 위기다 (하만에게서 얻는 교훈)

본문 : 에스더 3:1~6


(3: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3: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3: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3: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3: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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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3 목양칼럼

 

신앙과 삶을 구분하여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믿음은 살아가는 것과 일치한다. 믿음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전부이다.

살아가는 것과 믿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위선’을 경험한다.

위선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악(惡)이다. 아무리 열렬한 종교행위를 하더라도 위선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한 청년이 잠시 컴퓨터를 내게 맡겼다. 컴퓨터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몇 가지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가난한 목사가 뭔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낯선 이름의 폴더에 포르노가 잔뜩 들어 있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청년이었다. 사적인 영역이기에 모른 척 하고 넘어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청년은 중요한 고민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작정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매일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하고, 그 사실을 목사인 내게 알려서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중이었다.

갈등이 일어났다. 민망한 이 사실을 그냥 지나갈 것인지, 아니면 목사로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충고할 것인지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는 청년을 교회로 불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다음에 우리는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하여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청년은 자기를 인정하고 기도생활을 위해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사람은 잘못을 한다. 그것이 실수이든, 고의이든 잘못을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완벽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그런 잘못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의미한다. 삶을 리셋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잘못을 품고서 하나님과 대화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더 열렬한 종교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강제하려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그러면서 삶과 믿음이 분열된다.

포르노가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더 추악한 문제들도 많다. 이 문제들에 대하여 당연히 양심이 찔려야 한다. 나는 목사로서 여기에 대하여 위로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사람들이 다 그렇다거나, 그 정도는 가볍다는 식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위로를 계속하는 동안, 영혼은 파선하고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진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동안 아파야 한다. 믿음이 동맥경화처럼 막혀서 지배하지 못하던 삶의 영역들에 믿음이 들어가 지배하려면 눈물은 필수이다. 찔리고 아프고 고민할수록 영혼은 힘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된다.

위기는 이런 역동적인 작용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신앙생활이다. 그것은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면서도 전혀 이질감 없이 종교행위를 할 수 있다면, 심지어 사람에게 보이려고 더 열렬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영혼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부디 이런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혹시 있다면 빨리 자기를 점검하라. 병이 깊어지면 약도 소용이 없는 때가 온다. 희망은 기회가 있을 때에 붙잡아야 자기의 것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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