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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arios


2016-09-12 목양칼럼 :: 경청과 주목




과학자들은 2030이 지나면,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교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면 영화에서와 같이 따로 배우지 않아도 바로 정보를 뇌에 업로드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어렵고 고생스러운 공부가 드디어 사라지는 걸까요? 

그러나 아직, 이런 세상은 상상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힘든 공부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글쎄요.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There is no royal road to learning)는 격언이 생각나는군요. 

하지만 잘 배우는 자들의 특징은 있습니다. 그것은 경청(傾聽)과 주목(注目)입니다. 눈과 귀를 잘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눈과 귀를 자유분방하거나 느슨하게 하고서 잘 배우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있는 것에 눈과 귀를 집중하거든요. 결국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도 공부하게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시간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경청하지 않는 것은 커다란 실책입니다. 그가 아무리 다른 방법으로 노력을 해도, 이런 방식으로는 영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꼭 깨닫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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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7 목양칼럼  :: 자기를 살피고




(고전 11:28, 개정)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초대교회의 예배는 성찬을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성찬에 임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고 권했습니다.

자기를 살피라(“A man ought to examine himself”, NIV)는 말씀은 우리가 예배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과 같습니다. 


현대인은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말이 우리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 정체 모를 바쁨에 떠밀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기심에 눈이 어둡고, 자기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하게 변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경험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의 내면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의 향락과 성공만을 추구하며 산다면 그는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만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전형(典型)입니다.


커다란 통성의 기도와 열정적인 찬양도 좋습니다. 그러나 침묵과 고요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살피기 위해서는 바로 그런 환경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중에 깊이 생각하며, 자기를 살피고 시험하는 과정이 없이는, 우리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절실하게 우리에게 필요하신 분인가를 놓칠 수 있습니다.


예배를 앞두고, 마음의 신을 벗으십시오. 마음의 옷도 다 벗어 창조주 앞에 어린 아이와 같이 벌거벗은 실체(實體)가 되십시오. 가장 정직한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보여주는 나의 모습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예배가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야 하는 그릇은, 느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릇이 깨끗하면 충만한 은혜가 부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그렇게 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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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2 목양칼럼 :: 쉬운 인생은 없다




예전에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생활에 지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모형제가 있는 한국이 덜 힘들고 좋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신기합니다. 한 번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마치 한국은 천국처럼 보이고 일본은 지옥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그 청년은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보내기 전에 그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쉬운 길로 가지 마라. 자기를 바꾸지 않으면 세상 어디를 가도 결국 마찬가지다. 여기서 힘들었던 것을 또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정말 탈출을 하고 싶다면 치열하게 자기를 바꾸어야 한다. 항상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항상 도망치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망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방식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자기를 고치는 과정입니다. 그것만이 인생의 정답입니다. 자기를 바꾸지 않고서 행복에 도달하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깊이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절대로, 결코, 단언하건데 쉬운 인생은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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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목양칼럼 :: 나도 사람이라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 (행10.26)

베드로가 자신에게 절하는 고넬료를 일으키며 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참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목사에겐 늘 거룩하고 신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고, 목사의 실존은 그리 경건하지도, 특별하지도 못합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그래서 저의 내면에는 항상 ‘내가 사기꾼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좇아 다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빙자하여 사적인 이익을 남기려는 종교인은 아닐까? 혹여라도 내게 주어진 목사라는 지위를 나에 대한 충성과 나의 성취를 위해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은 늘 떠나지 않는 고뇌이며, 가시지 않는 여념(餘念)입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이것은 끝나지 않을 싸움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역자라도 언제나 넘어질 가능성이 있고, 타락해 버릴 불량함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에서 ‘거룩함’이 완성되는 것은 절대로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요, 사랑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며, 아주 고귀하고 사모할 만한 것입니다.


모두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목사도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함께 절망스러운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목회를 하지만, 그 목사의 흔들림과 부족함을 기도와 권면으로 붙들어 주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교회란 목사의 사업장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의 집입니다. 목사는 완전한 천사로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성장해 가도록 택하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목회’라는 말을 일방적 훈육이 아닌 상호적인 교제와 권면으로 이해합니다. 

목사는 기도하는 만큼의 성도를 얻습니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만큼의 목사를 얻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심지 않고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빛나는 진리입니다. 그러니 좋은 목사를 만나고 지키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 기도와 이해 없이 건강한 목양의 관계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서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는 것이 불법입니다. 이 기준에 대하여 우리는 단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보할 수 있는 것에는 충분히 양보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너그러움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 연약한 사람들이 거룩하게 세워지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열매인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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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5 목양칼럼




우리는 삶을 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정작 무엇이 삶을 낭비하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무언가를 배우거나, 혹은 어떤 일에 몰두하여 노동하는 것만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습이나 노동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기 원하는 목적은,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입니다. 그런 점에서 수단이 목적을 추월하면 오히려 나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범을 통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노동이든, 학습이든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가 일주일 동안 열심히 살았던 의도만큼 스스로 행복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열정이 충분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다음 일주일 동안 더욱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버거운 시간이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재충전하면서 다음 일주일 동안은 조금 덜 무겁게 살도록 생활의 페이스를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의학이 발달하고 사람의 기대수명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건강한 여생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무서운 질병의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암과 백혈병과 같은 불치의 병도 두려운 대상이지만, 치매(알츠하이머병)와 같은 질병은 차원이 다른 불안감을 우리에게 줍니다. 

사실,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보다 자잘한 조건들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건강한 이빨이나, 시력, 청력, 그리고 관절 같은 부분의 건강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합니다. 모든 질병에서 지켜주시기를 바라고, 계속 건강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아무 것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야고보 사도가 ‘행함이 없는 믿음’ 혹은 ‘죽은 믿음’이라고 책망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보아야 합니다. 사실 이것보다 중요한 사명은 없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리는 최선의 예배가 아닐까요? 더구나 그분은 우리의 아바 아버지시니 말입니다.

우리가 예배당을 지어 드리는 것보다, 우리 자신이 행복하고 보람 있게 일생을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쁘게 여기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현대인은 안식일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잠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벽에도 어딘가를 그렇게 열심히 다닙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 새는 어둠이 대지에 찾아오면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것입니다. 누구처럼 밤을 새우고 새벽까지 벌레를 찾아 눈이 빨개진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의 규범을 따르지 않을 때에, 우리는 다소의 이익은 얻더라도 결국에는 중요한 것을 잃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항상 묵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하나님께서 옳으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 생각에 따라 성경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성경에 따라 내 생각을 기꺼이 바꾸려고 해야 합니다. 


잘 쉬는 것은 낭비하는 것도, 게으른 것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안식을 통해, 비로소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안식은, 개인이 혼자 골방에서 잠자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잔치와 즐거운 교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함께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에게 안식이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라는 공동체의 색깔을 결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명령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코이노니아’ 곧 ‘교제하는 공동체’라고 부르고, 거기 하나님의 안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식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예배가 가져야 하는 의미입니다.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귀하고 아름답게, 의미 있게 사십시오. 그 의미는 지금을 희생하여 먼 미래에 거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따라 안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재충전하고, 새롭게 설계하는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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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9 목양칼럼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통해 옵니다.


물론 하나님과 나만 아는 직접적인 은혜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더 근본적인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삶이 나만 잘 마음먹고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통사고의 예와 같이,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다른 차가 와서 충돌하면 사고는 일어나고 병원신세를 지는 것입니다. 인생도 비슷합니다. 내가 잘 해야 하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를 풀어주는 만능의 열쇠는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그늘 밑에서 살아갑니다. 설사 ‘대장(大將)’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성공은 곁에서 말없이 순종하는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은혜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은혜의 관계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흔히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처럼 흥얼거리는 분들을 만납니다. 참 좋습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중의 어떤 이들은, 사람의 은혜는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는 은혜를 받았지만, 사람에게는 신세 진 것이 없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내 입에 들어가는 밥이 내가 농사 진 것이 아니고, 내가 입는 옷이 내가 짠 옷감이 아닌데요. 내가 다니는 교회가 나 홀로 교회가 아니고, 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은 누군가가 함께 땀 흘리는 자리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려면 사람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른 빵 한 조각을 손에 들고서도, “감사하다!”라고 고백할 때에는 그 고백이 하나님께만 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환경에, 그리고 특별히 사람에 감사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지 않는다는 말은, 예배당에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는 교만이 그 핵심입니다.


간혹 바리새인과 같은 이상한 종교인들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마음에 숨겨진 교만을 포기하지 않은 채, 종교적인 행위를 통하여 자기를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깔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습니까? 스스로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저항하는 정신입니다. 그래서 잘난 사람들이 자기 함정에 빠져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시오. 특별히 지금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찾으십시오. 하나님께 감사 드리듯 사람에게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저절로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흘러 나오게 됩니다.


은혜가 사랑으로 응답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그런 풍경을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눅 6:35, 개정)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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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1 목양칼럼



옆 사람이 누구냐가 참 중요하다. 그것이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

부정적인 사람, 불평하는 사람, 분노조절 장애자, 우울한 사람, 비판적인 사람, 아픈 사람은 남의 행복까지 갉아 먹는다. 긍정적인 사람, 감사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밝은 사람, 겸손한 사람, 건강한 사람은 주변에까지 활력을 준다.

우리 인생은 환경에서 받는 영향도 작지 않겠지만, 사람에게서 받는 영향이 훨씬 크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인생과 성공하는 인생의 비결은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다.


여기서 시선의 각도를 조금 틀어 보자. 누구나 좋은 사람의 곁에 있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옆 사람이 되고 있을까?

사람은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관계에는 긍정적인 순환과 부정적인 순환이 있는 것 같다. 

누가 시작인지 모르겠지만(사실, 그것을 밝히는 것도 의미는 없다!), 나쁜 사람은 옆 사람을 나쁘게 만들고, 나쁜 사람과 더 나쁜 사람들의 도미노 속에서 결국 자신도 뒤통수를 맞는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세상은 땅이 불타지 않을 뿐 이미 지옥이다.


내가 어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것이냐의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지 않고서야 어떻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고서 살아갈 수 있으랴. 설사 나쁜 사람들을 잠시 경험하더라도, 넘어지지 말고, 먼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실패한 모든 인생에는 변명이 가득하다. 관계를 끊어버리고 외롭게 되는 인생에도 이유는 많다. 그러나 정직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잠시 생각해 보시라. 나 같은 옆 사람을 나라면 좋아할까? 섬길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육체적으로도 자기 눈으로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마음은 더욱 그렇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모른다. 심지어 알게 되어도 대단히 관대하다. 그 관대함의 반만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용한다면 정말 좋은 이웃과 친구가 될 만큼 말이다.


내가 하는 말, 나의 표정, 나의 사소한 행동들, 나의 씀씀이를 생각해 보시라.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이고, 나의 옆 사람들에게 그 선한 영향력을 비추고 있는가?

인생은 결국 자기를 찾는 과정이다. 그러나 거울이 없으면 내 얼굴을 볼 수 없듯이, 친구가 없으면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어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 숨어 있다. 그래서 옆 사람이 누구냐가 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삶의 의미는 항상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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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5 목양칼럼


역설적이게도 이기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신입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기를, ‘관계’에 적당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원만한 관계, 곧 ‘화목’을 통해 가장 충족감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성경은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은 곧 사람과도 끊어지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여러 불행의 뿌리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내적으로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이며, 외적으로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거나 새롭게 화목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화목이 목적이라면, 사랑은 그 길이요,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자기를 늘 돌아봐야 합니다. 

첫째로 자기의 이기심을 얼마나 경계하며 극복하고 있는가? 이것은 끊임없는 회개와 내적인 자기싸움을 요구합니다. 둘째로, 얼마나 적극적으로 화목을 추구하고 있느냐? 이것은 섬김과 헌신, 봉사와 같은 삶의 실천을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내적인 묵상과 삶의 실천이 균형을 갖출 때에, 우리의 신앙은 건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건강한 신앙이란, 바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비결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신앙은 항상 행복한 사람을 만듭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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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8 목양칼럼 (어버이주일)


부모도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절대자요 영웅일 수 있지만, 나이 들어 발견하는 부모는 그다지 특별함이 없는, 좁은 어깨의 노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었던 것들도 용서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에게 실망과 상처를 남겼다손 치더라도,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었음을… 우리 인생을 통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상처를 남기겠지요. 어쩌면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함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고민하며 최선을 다했음을… 우리의 자녀들도 그들의 인생을 통해 느끼게 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모(父母)’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를 추스르며 그 이름에 합당하려고 몸부림친 지난 세월이 눈에 선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몰랐던 내가 보이고, 가족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자식에 대한 갈망과 포기를 함께 알아가면서… 우리는 나이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어깨 좁다란 노인으로 천천히 변해갈 것입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저렇게 늠름하게 자라고 잘난 아이들이 있는데. 저 아이들의 인생은 우리와 다르겠지요... 그러나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핏덩이로 태어나 사랑 받고 자란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기 심장보다 소중한 생명 같은 자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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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2016-05-01 목양칼럼 (어린이주일)






아이는 어른들의 거울입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는 엄마의 태도를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내들은 자녀를 위해서라도 남편을 존경하는 태도로 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남편들은 아이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아내에게 존경 받는 남편이 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가르침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훈육(訓育)’을 말로 해도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배우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의 가르침과 다른 모범을 보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끊임없이 완전한 인격을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父母)라는 이름의 자리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책임이 막중하고 무한한 것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이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상당한 영향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自覺)하지 못하고 함부로 언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는 세월로 치유되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상처는 세월이 지나도 쉽게 극복되지 않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범사에 신중 하십시오. 특별히 신앙의 모습에 있어서, 더 깊은 고민을 가지고 세심하게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혹여라도 아이에게 부모의 신앙이 가식과 위선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더 깊이 기도하고 열심히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막중한 사명 가운데,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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