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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arios




2016-05-15 목양칼럼


역설적이게도 이기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신입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기를, ‘관계’에 적당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원만한 관계, 곧 ‘화목’을 통해 가장 충족감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성경은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은 곧 사람과도 끊어지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여러 불행의 뿌리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내적으로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이며, 외적으로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거나 새롭게 화목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화목이 목적이라면, 사랑은 그 길이요,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자기를 늘 돌아봐야 합니다. 

첫째로 자기의 이기심을 얼마나 경계하며 극복하고 있는가? 이것은 끊임없는 회개와 내적인 자기싸움을 요구합니다. 둘째로, 얼마나 적극적으로 화목을 추구하고 있느냐? 이것은 섬김과 헌신, 봉사와 같은 삶의 실천을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내적인 묵상과 삶의 실천이 균형을 갖출 때에, 우리의 신앙은 건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건강한 신앙이란, 바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비결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신앙은 항상 행복한 사람을 만듭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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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8 목양칼럼 (어버이주일)


부모도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절대자요 영웅일 수 있지만, 나이 들어 발견하는 부모는 그다지 특별함이 없는, 좁은 어깨의 노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었던 것들도 용서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에게 실망과 상처를 남겼다손 치더라도,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었음을… 우리 인생을 통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상처를 남기겠지요. 어쩌면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함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고민하며 최선을 다했음을… 우리의 자녀들도 그들의 인생을 통해 느끼게 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모(父母)’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를 추스르며 그 이름에 합당하려고 몸부림친 지난 세월이 눈에 선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몰랐던 내가 보이고, 가족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자식에 대한 갈망과 포기를 함께 알아가면서… 우리는 나이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어깨 좁다란 노인으로 천천히 변해갈 것입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저렇게 늠름하게 자라고 잘난 아이들이 있는데. 저 아이들의 인생은 우리와 다르겠지요... 그러나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핏덩이로 태어나 사랑 받고 자란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기 심장보다 소중한 생명 같은 자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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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1 목양칼럼 (어린이주일)






아이는 어른들의 거울입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는 엄마의 태도를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내들은 자녀를 위해서라도 남편을 존경하는 태도로 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남편들은 아이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아내에게 존경 받는 남편이 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가르침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훈육(訓育)’을 말로 해도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배우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의 가르침과 다른 모범을 보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끊임없이 완전한 인격을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父母)라는 이름의 자리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책임이 막중하고 무한한 것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이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상당한 영향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自覺)하지 못하고 함부로 언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는 세월로 치유되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상처는 세월이 지나도 쉽게 극복되지 않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범사에 신중 하십시오. 특별히 신앙의 모습에 있어서, 더 깊은 고민을 가지고 세심하게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혹여라도 아이에게 부모의 신앙이 가식과 위선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더 깊이 기도하고 열심히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막중한 사명 가운데,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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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 목양칼럼


오직 믿음으로.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너무 쉽고 간단해 보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사람의 완고함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저항하는지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마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잘 설명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영적인 지식은 조롱의 대상일 뿐입니다. 감동을 주면 될까요? 잠시 부드러워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믿음의 결단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강권할 수 있을까요? 더더욱 아닙니다. 믿음은 결코 억지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결국,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 앞에서는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거절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믿음이라는 것이 결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은총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 전도(傳道)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에는 좀 더 일찍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는, 좀 더 성실하게 노력하고 좀 더 간절하게 권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올지도 모릅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오늘 내 마음에 있다면, 나는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를 지켜줄 능력은 오직 믿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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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 목양칼럼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걱정을 합니다. 사랑이 상대방을 버릇 없게 만들지 않을까? 현실에서 계속 용서하는 사람은 시쳇말로 ‘호구’라고 불립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도 대부분 비슷한 걱정을 합디다. 따끔하게 버릇을 가르쳐 반듯하게 키우자니 아이의 심성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그렇다고 다 받아주고 사랑만 하자니 그 사랑으로 인하여 버릇 없고 제멋대로인 아이가 될까 우려가 됩니다. 반듯한 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기도하며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질문은 직접적인 답을 찾기도 하고, 적어도 간접적인 대답은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심어지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반드시 능력이 있습니다. 

최소한, 사랑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은 결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했다는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조급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사랑할 일입니다.

사랑 받는 사람은 존귀하게 됩니다.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자기를 함부로 여기고 인생을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는 것은 헐값에 팔리지 않습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사랑을 경험하면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사람들이 방자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하나님 탓입니까? 사랑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우리들 탓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분이 아닙니다. 더러 그런 배신이 있더라도, 용감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맛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다루는 방법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무엇보다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엇보다 진실될 뿐만 아니라, 성실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맛보고 깨닫는 자는 다른 것에 흔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천지를 만드신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능력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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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8 목양칼럼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들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흘려 보내고, 정작 하고 싶고 해야만 했을 일들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인생의 마지막에 도착하고 맙니다.

인생의 승패는 황금이 아니라, 시간에 달렸습니다. 젊어서는 젊어야 하고, 늙어서는 늙어야 합니다. 인생의 그 시절마다 고유한 맛이 있고, 그 맛을 충분히 누리며 사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사는 것이며,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지혜를 압축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모두 은혜 아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입니까? 아이의 탄생을 직접 목격하는 아빠들은, 펑펑 우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세상의 아기는 모두 애절하고 따뜻하게 태어납니다. 

그리고 또 자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많은 질병과 수없이 많은 사고의 위험 속에서, 그럼에도 그 정신의 건전함을 수호하며 자라는 것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입니까? 종교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한 아이를 키우며 기도해 보지 않은 부모는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과 기도 속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불안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몸과 정신 속에서, 인생의 종착역을 생각하고, 자기를 추스르는 것입니다. 그 또한 얼마나 절실한 고독입니까?

마지막으로 죽음을 생각해 봅시다. 죽음은 우리의 손이 절대로 닿지 않는 저편입니다. 겁도 나고, 허무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옵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것에 있어… 인간은 창조주를 찾지 않을 수 없고, 그 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그 본래의 설계를 따라, 인생의 과정마다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지혜이며 행복인 것입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 가지지 않아도, 인생의 순간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함께 걸어가는 길이라면, 그런 인생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것이며,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않고서는, 결코 인생의 시간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시 84:10) 주님의 궁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며,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내 하나님 집의 문지기가 좋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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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목양칼럼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7)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고집하는 까닭은, 마지막까지 그 결정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콩 심은 곳에 콩이 나듯, 잘못된 결정으로부터 행복의 열매를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미련한 자의 미련함은 끝이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 훈계이고, 바른 것을 알려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은 다 미련한 자에게는 보배와도 같은 기회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그 보배와 같은 말을 들으면 얼굴색이 변합니다. 싫어합니다. 심지어 그것을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사람의 내면에 도대체 어떤 괴물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받은 은혜는 흐르는 물처럼 흘려 보내고... 섭섭하고, 밉고, 원망스러운 감정은 돌에 새기듯 깊이 간직합니다. 그리고 그 미움의 지배를 받습니다. 감정에 이끌려 판단력이 흐려지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합니다.

목회가 고독한 것은, 목회자에게는 듣고, 듣지 않고를 떠나서 지혜와 훈계를 말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뜻이 없다면, 목회도 그리 고독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귀에 달콤한 말이 독약이 될 때가 많고, 마음에 힘든 말이 양약이 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남에게는 이 원리를 잘 적용하면서, 정작 자신의 차례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에 휘둘려 이 원리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고칠 것이 있는 것도, 실수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칠 것이 있음에도 바른 말을 듣지 못하고, 실수하였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 사람에게 기대할 것이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 인품의 제일 되는 문제는 완고함 같습니다. 미련하여 알지 못하는 것과 나중에 알고서도 고집을 부려 고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완고함의 이유로,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답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듣는 귀를 가집시다. 마음으로 들읍시다. 듣고, 생각하고, 기도 합시다. 기도 속에서 자기를 보고, 또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 봅시다. 

사람 다 그렇게 산다고 자위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다르게 사셨으니 나도 다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결심합시다. 

그런 결심 속에서만, 우리의 믿음은 허전한 말장난이 아니라,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종교가 아니라, 진리만이 우리를 구원하며 자유케 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들을 수 있는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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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1 목양칼럼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의 복도에서 매미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 6층입니다. 매미는 뒤집혀 있었고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옆을 지나가는 순간 하늘을 향하고 있는 다리가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매미를 들어서 난간 밖으로 놓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 죽어가던 매미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신나게 날아서 선회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 매미의 마지막 비행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매미는 분명 날았습니다. 아주 신나게 살아났습니다.

 

생명은 어떤 것이나 한결같이 귀하고, 그렇게 때문에 절박한 것입니다. 당장 살아있던 것이라도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먼지로 돌아갑니다. 어떤 날을 살았고, 어떤 능력을 가졌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모든 화려함은 살아있는 날의 빛깔이며, 죽음은 모든 것을 회색으로 덧칠해 버립니다.

하지만 죽음에 직면했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매미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사력을 다해 날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의 권리는, 그 생명을 생명의 빛깔로 최선을 다해 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을 때에,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침범하는 회색빛의 죽음과 싸우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자기답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매미는 날개를 퍼득여 날고 사력을 다해 울어야 하고, 사람은 끝까지 희망을 믿어야 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이루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그 업적에 비하여 죽음은 한 없이 초라하고 실망스러운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기들의 인생이 끝났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높이 날고 크게 울 수 있는 능력이 더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쇠약해지는 것은 분명 섭섭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늙고 노쇠한 것이 아직 죽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한 모금의 호흡이 있다면, 한 줌의 생기가 있다면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해볼 수 있습니다. 그 시도의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시도한다는 것이 곧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어버린 사람들, 그래서 이미 죽기도 전에 묘자리를 찾아보고 자기의 묘비명부터 써두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맡기고, 아직은 삶을 사십시오. 마지막까지 자기 하늘을 향한 날개짓을 멈추지 마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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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목양칼럼

 

1945년8월15일,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36년 동안 국권을 잃었던 당시의 대한제국은 이미 나라의 모든 조직과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해방된 것입니다.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군대의 힘도 정치의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민초들의 힘이었습니다. 저항하고 또 저항하며 내 민족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름 없는 죽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과 북으로 갈라서는 38선은 다시 민족의 허리를 끊고 동맥을 잘랐습니다. 통탄스럽게도 한국의 동란은 일본의 경제적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 갈라진 허리로 고통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세계에서 2~3번째를 다투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패전국가임에도 독일이 지난 70년을 고개 숙여 사죄와 반성을 계속해온 것과 달리, 일본이 만행을 부인하고 사죄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 온 것에는, 피해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부실하여 일본보다 미약한 상태로 지내온 것이 제일 큰 이유입니다. 만약 한국이나 중국, 필리핀, 태국이 프랑스나 영국, 이태리, 스페인과 같은 역량으로 성장했다면 일본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결국 힘이 없어 나라를 잃었고, 힘이 없어 사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며 70년을 보낸 것입니다.

더러는 말하기를, 우울한 과거를 희망찬 미래의 장애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희망이 모두의 희망은 아닐 것입니다. 희망은 과거와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고민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찾아집니다. 희망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인류의 보편적 지혜 위에서 탄생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고민하는 '역사'라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광복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빛을 찾고 모든 것을 본래의 자리로 돌린다는 광복은 아직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숙고하고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평화와 안녕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동북아의 이웃 국가들에게 다시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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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2015-08-08 목양칼럼

 

한국에서 지인을 통해 비타민을 소개 받았다. 예전에도 간혹 비타민C를 먹기는 했었는데, 일일 권장량에 해당하는 1000mg에 해당하는 알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커피믹스와 같은 막대봉지에 들어 있고 '아스코르빈산'이라는 낯선 이름이다. 후에 인터넷을 통해 알아 보았더니, 이것이 99.9%의 비타민C 화합물이고, 특별히 영국산을 알아준다고 한다. 한 봉지가 3g인데, 이 양이면 약 3000mg에 해당한다고 한다.

과도하면 소변으로 다 배출되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단다. 몸의 독소를 해독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비타민이 필요하고, 특별히 피로감을 줄여주는 것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고용량의 비타민을 상복하는 것을 비타민요법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은, 이 비타민을 먹으면서 피로감이 정말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가벼워졌고, 잠을 줄이고도 덜 피곤하게 되었다. 효과를 보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더 챙겨먹게 된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뭔가 덜 건강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한국 속담에 "맛을 봐야 맛을 안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의 반복 같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과 같이 직접적 경험이 곧 확실한 지식의 습득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무리 설명하면 무엇하겠는가? 직접 먹고, 맛을 보고, 효과를 봐야 비로소 사람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게는 비타민 만큼이나 너무 확실한 신앙의 경험들이 적지 않다. 어려서부터 신앙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라오며 본 것이 그러하고, 일찍 목사가 되어 만나고, 듣고, 경험한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내게는 너무 좋은데, 이걸 도대체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하지가 않다.

하기사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건 목사의 잔소리나 설교일 뿐이다. 신앙은 본인이 먹어봐야 비로소 세상의 피로가 풀리고, 사는 맛을 안다. 진리의 힘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자의 행복을 알게 된다.

제발 말로만 듣지 마시라. 여러분의 것으로 실천하고, 꿀꺽 삼켜 그 맛을 보시라.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여러분의 삶으로 경험해 보시라. 이거 정말 좋다. 비타민보다 좋다. 아니,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좋다.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초보다 좋다. 확실히 좋다.

이 복음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목적이다. 나는 이것을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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