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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0 목양칼럼 

 

전에도 느껴왔던 사실이지만, 위기는 진짜 얼굴을 드러나게 한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 한국의 교회가 보여준 사회적 책임감과 현실감각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이번에도 그랬다. 소규모 교회모임을 통해 바이러스가 번져갈 때에, 교회를 통해 터져나온 소리는 결코 교회답지 못했다. 
지난 7일 <중앙일보>에 '예배 봐도, 안봐도 망한다… 코로나에 개척교회 생사기로'라는 기사가 나왔다. 
소수의 인원으로 간신히 버티는 소위 '개척교회'의 경제적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아는 바가 아니라 지금도 내가 체험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사의 이면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목사들의 입장은 무척 송구하다. 방역을 위해 당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연보가 없어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볼멘 소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의 안전을 다소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종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이 화두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인들의 태도에 분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3:16~17)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23: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신약의 교회는 각각의 교인들이 걸어다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기독교는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을 극복하고 보이지 않는 영성을 깊이 추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것과 교인 한 사람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목회에 치명적일까?

일본에 와서 몇 년을 높은 임대료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교인들이 모두 허리가 휘도록 연보를 드렸지만, 목사는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예배의 장소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2011년도 대지진 때에 교인들 대부분이 흩어지면서 임대료 감당이 당장 불가능해진 것이다.
더 이상  장소를 빌릴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나의 결정은 내가 사는 집으로 교회를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수 년 동안 그렇게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인들이 주일 아침에 와서 저녁에 가기까지 찬양하고, 아이들은 뛰고, 사람들은 시끄러웠다. 결국 집 주변에서 불만이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알아보고, 공공기관의 교실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다. 공공기관이라 1년의 몇 주는 주일에 휴관을 했다. 그리고 공적 행사가 있을 때에는 교실의 대여가 불허되었다. 그럴 때에는 다시 목사의 집으로 모이거나, 아예 야외일정을 잡아 야외예배를 드렸다. 
이런 방식의 적응은, 한 가지 각오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교회를 연보가 아니라 교인들의 믿음으로 세우겠다는 각오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기도했고 지금도 기도하는 바이지만, 만약에 이렇게 하여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 때는 나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각오였다.

목사들은 부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종종 그 부흥은 개인적인 '성공'과 구분되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은 목사가 실패하고, 교회가 망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진정한 믿음을 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동경드림교회가 문을 닫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동경드림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만났던 소중한 추억이 살아있고, 그래서 평생 어디에 가서든 그 시절의 신앙생활을 잊지 못한다면,  나는 동경드림교회의 간판이 어느 건물에 붙어 있든지, 혹은 없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우리 교회의 부흥이라고 생각한다.

교인들은 목사의 맘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알게 된다. 이것이 30여년 목회의 길에서 배운 교훈이다.
비록 목사의 마음을 다 헤아리는 교인들은 없더라도, 결국 목사의 설교와 결단은 교인들에게 그가 추구하는 신앙의 비전과 인격을 드러나게  만든다. 무서운 일이지만, 이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인격의 감화는 말이 아니라 세월에서 나온다. 목사가 교인들의 곁에서 인내하며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 이유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가? 아니면 더 귀한 것이 돈인가? 명예인가? 성공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대답이야말로 나는 목회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한 사람을 위기에 빠뜨리는 것에 대하여 죄의식이 없는 사람은, 천하를 위험하게 하고도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늘 한 사람의 가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한다. 
나는 그것이 교회이고, 목회라고 생각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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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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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3일)에 둘째 찬혁이가 고등학교 입시를 봤다.
바짝 공부를 한 것은, 아마도 두 세 달 되는 것 같다. 
과년도 문제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출력해서 집에서 모의고사를 봤는데, 그 모은 양이 A4 1박스쯤 되는 것 같다.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주일학교 이후로는 개척교회 예배를 같이 드렸다.
첫째 준혁이는 그래도 좀 주일학교의 혜택을 누렸지만, 둘째 찬혁이는 거의 주일학교를 누리지 못했다.
어른들도 힘들어 하는, 1시간짜리 설교를 매주 들으며, 그래도 아빠에게 예배 드리는 태도가 정숙하지 못하다고 늘상 야단을 들을 때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참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내게 그런 말을 한다. 
"학원 한 번 안 가고 이 정도 학교에 들어가면 내가 꽤 괜찮은 놈인거죠?"
그래. 그 말이 참 맞다.


아무 예고도, 준비도 없이... 한 걸음에 결정했던 일본행.
그 시절에는 내 눈에 교회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속에라도 뛰어들면,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충만해 있었으니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리숙한 믿음을 주님께서 은혜로 받아 주신 것이.
하지만 지금은, 내게 자녀를 주신 것도 '목사'라는 이름 만큼이나 소중한 사명이라고 깨닫고 있다.


큰 아이는 4학년을 마치고, 작은 아이는 2학년을 마치고 일본에 왔다.
내가 먼저 일본에 와 있는 동안, 우리는 6개월을 떨어져 있었는데, 그 동안 엄마가 아이들에게 히라가나를 가르쳤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일본 초등학교에 갔을 때에, 아이들은 자기 이름도 겨우 쓰는 수준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 어린 것들이 그 막막한 세상에 던져졌을 때...
그러나 아이들에게 해줄 것이 없었다. 
우리 부부 모두 일본어에 벙어리요 귀머거리였고, 아이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도 전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왕복 1시간의 거리인 교회에 차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로 다녔고, 아이들은 다시 주말에도 구약소에 있는 볼란티어 일본어 수업을 듣기 위해 40분을 왕복했다. 
이제 갓 3학년에 들어섰던 둘째가, 자전거를 비틀거리며 찻길을 달릴 때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한숨과 함께 기도가 절로 나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떠밀리며.. 그렇게 세월이 지났다.


목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더라.
오히려 가족들이 더 힘들더라. 선교지에 나오면, 설음도 많더라. 내 새끼 배불리 먹이는 욕심 부리고, 내 식구 따뜻하게 하는 욕심 품고서는 갈 수 없는게 이 길이더라... 참 많이 울고, 참 많이 배웠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덧, 큰 아들은 대학을 목전에 두고 있고, 작은 아들은 고등학생이 된다.
아직 합격통지가 날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기까지 온 것도 참 귀하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실패와 역경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역경을 지나온 사람에게 역경은, 넘어갈 길에 불과할 뿐이다. 오르지 못할 산은 없고, 지나지 못할 바다는 없으니까...
나는 내 아들이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키워주신 그 떳떳한 자부심이, 자기 긍정이, 자기에 대한 신뢰가 다른 무엇보다 더 귀한 재산이요, 보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일이 발표일이다. 아마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나는 그냥 감사하다. 그 무수한 비틀거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가, 아이들의 마음을 키워주신 사랑이, 그리고 한 사람으로 따뜻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목메이게 감사하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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