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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목양칼럼 ::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킨 사람은 역사상 오직 하나였다. 바로 예수님이다. 그래서 ‘율법’의 심판 아래에서 예수님 이외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두가 죄인인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해 은혜가 왔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행함을 통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어 의롭게 된다. 옷 입는다는 것은 어떤 신비한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뜻이다. 믿음이 곧 그리스도 안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는다. 세례가 바로 이 두 가지의 경험이다. 율법의 심판 아래서 죽는 것과 십자가의 은혜 아래서 새롭게 살아나는 것, 그것이 바로 세례 안에 압축된 경험이다. 


예수님의 명령으로 교회는 두 가지 성례를 영원한 규범으로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성찬과 세례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예식의 바탕은 바로 십자가이다. 

성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이라면 세례는 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고 세례를 통해 자기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진정한 십자가는 이 두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에 완성된다.


십자가를 묵상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 위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정확하게 알아야 할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운전면허를 이미 가진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다시 모아서 기본적인 교통규범을 재교육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것이 매해 돌아오는 사순절의 의미이다. 아니, 심지어 매일이라도 이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묵상되어야 마땅하다.


아직도 자신에게 미련이 남았는가? 당신은 죄인이다. 부정하지 마라. 율법 아래 ‘죄인’이라는 굴레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가장 간단한 계명이라도 그것을 항상 지킨다는 것은 어렵다. 하물며 모든 계명을 항상 지켜야 한다니 그것이 가당키나 한가. 그러니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만 받아들여라. 희망은 없다. 전혀. 조금 선한 것도 쓸모 없다. 무기징역을 받은 죄인에게 식당에서 줄을 잘 선다고 보석을 시켜주지는 않는다. 나의 선함이 내게는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자유를 주지는 못한다.


그러니 이제는 가능성 없는 나를 버리고 예수를 바라보자.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나를 대신하여. 죄 없는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그분이 찔림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다. 이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전혀. 이것은 완전한 구속이다.


조금은 맥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남은 인생을 통해 뭔가를 치열하게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더욱 그렇다. 적어도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몫 따위는 없다. 우리는 이미 얻었고, 완성되었으며, 허락되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 이 십자가를 묵상하는 일과 그 십자가의 은혜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나고, 십자가의 도가 공격 받을 것이며, 십자가는 점점 잊혀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싸움이다. 우리는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레지스탕스가 아니라 해방군의 싸움이다.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따라서 십자가의 해방을 나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선포하는 싸움인 것이다. 그러니 넘어짐은 있어도 패배는 없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영광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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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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