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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8 목양칼럼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벌써 뉘엿뉘엿 해가 담장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투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9회말의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경기는 맥없이 끝날 것만 같았다. 전광판의 숫자는3:0이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난 8회의 이닝 동안 상대팀은 단 하나의 안타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투수는 완봉승을 노리고 있었다.

절묘하게도 마침 타순은 3번부터 시작되었다. 타자는 투수의 첫 공을 노렸다. 투수 옆을 스치는 직선의 타구가 원 바운드로 날아갔다. 잘 하면 빠질 수도 있는 공이었지만 유격수는 노련했다. 몸을 날려 그 공을 잡은 것도 모자라 거의 동시에 역동작으로 1루에 송구했고, 공은 정확하게 첫 타자를 아웃 시켰다. 투수의 눈이 승리의 확신으로 빛났다.

감독은 4번 타자를 거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하라는 싸인을 냈고, 배터리는 캐치볼처럼 4개의 볼을 주고 받으며 감독의 명령을 수행했다. 불안감은 전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타자가 들어섰다. 그는 5번이지만 오늘은 그의 방망이가 볼에 스치지도 못했다. 투수는 자신감이 넘쳤고 얼굴에 약간의 비웃음마저 감돌았다. 역시나 2개의 연속 스트라이크가 들어왔다. 타자는 타석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바튼 기침을 했다. 영리한 투수는 바깥으로 깊게 빠지는 유인구를 던졌다. 어이 없게도 타자의 손이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끌려나갔다. 타자는 속았다는 느낌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눈 감은 방망이에 볼이 걸렸다. 어설프게 맞은 공은 내야에서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켰다. 내야수들이 재빠르게 공을 처리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타자와 주자 모두 세이프가 되고 말았다.

6번 타자가 들어섰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까? 운동장은 숨죽여 타자와 투수에게 집중했다. 투수는 주의 깊게 공을 던졌고 타자 역시 몇 개의 볼을 파울로 커트하며 투수와 겨루었다. 어느새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이제 승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투수는 최대한으로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했다. 타자가 움찔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심판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포볼이었다. 타자가 1루로 걸어가는 동안 투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심판을 응시했다.

화가 났던 것일까? 투수는 7번 타자를 강속구로 몰아 부쳤다. 4개의 공이 지나도록 방망이를 흔들지 못하던 타자는 5번째 공을 향해 힘껏 스윙을 했다. 그러나 공은 높이 내야 위로 뜨고 말았다. 3루수가 약간 자리를 움직여 공을 잡았다. 마침내 9회말 투 아웃이 된 것이다.

감독은 이상하게도 대타를 세우지 않았다. 8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오늘 경기뿐만이 아니라 최근의 10여 경기에서 전혀 안타를 치지 못하고 있었다. 본래 5번이었던 그의 타석이 8번까지 밀린 것은, 부진에 부진을 거듭한 결과였다. 관중은 야유했다. 투수와 포수 역시 가벼운 웃음을 교환하며 빨리 경기를 끝내자는 모종의 싸인을 주고 받았다.

투수는 처음부터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낙차가 크면서도 빠른 스플리터(Splitter)였다. 공은 살아있는 뱀처럼 파고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타자의 허리가 부드럽게 돌았다. 팔과 다리의 근육들이 힘줄을 돋으며 제대로 힘을 실어낸 한 방이었다. 공은 직선으로 정확하게 운동장의 한 가운데를 뻗어나가 전광판의 상단을 때렸다. 홈런이었다… 9회말 투 아웃, 그리고 그 시즌에 가장 부진했던 선수의 팔에서 나온, 역전의 홈런이 운동장을 뒤집어 버렸다…

야구는 바로 이런 맛으로 즐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9회말 투 아웃,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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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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