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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

이 영화를 이제서야 봤다.

일단, 이 영화는 가공이다. 결정적으로 주인공 김내경이 가공의 인물이고, 그의 처남이나 아들, 혹은 한양에서 관상카페 겸 기생집을 운영하는 연홍이 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나 사건은 사실이다. 바로  계유정란(癸酉靖亂). 때문에 이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 곧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반목, 그리고 불안했던 문종과 불운했던 단종은 모두 사실의 인물이다. 그 사실의 역사에 '관상'이라는 옷을 입힌 것이다. 


일단 연기자들의 연기가 볼만했다. 스토리도 나름 괜찮고, 연출도 훌륭했다. 몇몇 장면은 공감의 먹먹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깊이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 후감 ]

조선시대가 유교적 바탕을 강조한 나머지 모든 사술을 금지하였지만, 사람의 바탕에는 완전히 몰아낼 수 없는 종교적 갈망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때문에 손금이니, 관상이니 하는 것은 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심지어 어떤 막연한 '믿음'을 유발해온 것이다.

감춰진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고 심지어 미래를 알고자 하는 이런 욕망은, '관상'이라는 영화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인기)의 기초이기도 하다. 결국 근거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믿고 싶어지는, 그 어떤 미지의 지식을 사람들은 수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일게다.


기실, 관상의 정점은 '눈'이다. 얼굴이 천 냥이면, 눈이 구 백 냥쯤 된다. 옛부터 눈은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는 창(窓)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은 성경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6:22, 개정)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이 구절의 평행구절을 이루는 누가복음의 말씀은, 좀 더 깊은 사유를 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관상학적으로도 ^^)


(눅 11:34~36, 개정)

(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마음의 빛이 눈으로 드러나서 몸을 밝게 한다는 생각은, 관상에서도 그대로 차용되는 교훈이다. 역시 예수님은 대단하시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관상가 중의 한 분으로도 봐드려야 할까? ㅎㅎ


유교의 기본골격을 이루는 책을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 한다.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하고,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한다.

그 중에서 토정비결이나 기타 역술의 바탕이 되는 책이 바로 역경(易經)이다. 이는 다른 이름으로 주역(周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름부터가 기묘하다. 왜냐하면 '역(易)'은 본래 바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한자를 '이(易)'라고 발음하고 '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우주의 원리 속에서 인간의 운명과 미래를 보고자 했던 학문의 결말은, "쉽게 바뀐다"인 것이다.

이를 한국어로 담으면, '아리송하다' 쯤이 될 것이다. 역경보다 '아리송경' 좋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큰 흐름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연구하여 개인의 삶을 분류하고 예고하고 조언하기 위한 것이 결국은 손금이니, 관상이니 하는 지식의 정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인류의 도덕적 교훈에서 아주 기본적인 원점으로 회귀된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선하고 아름답게 쓰는 것으로 사람의 꼴이 변하고 미래가 좋게 개척된다는 것이다.

'큰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처럼, 사람이 사모하고 진심으로 원할 때에, 결국 그 마음은 꼴을 결정한다. 

이걸 반대로 여겨, 꼴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운명론적 관점으로 받을 때에, 관상은 미신이다. 그러나 그 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관상은 교훈이다. 

도덕적 동기의 한 측면이며, 자기를 스스로 밝게 해야 하는 사람의 의무에 있어 관상이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관상'이라는 영화로 돌아가 보자.

호랑이상으로 나오는 김종서의 상이 좋은가? 이리상으로 나오는 수양대군의 상이 좋은가? 

마지막에서 김내경은 한명회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한다. 반역의 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의 큰 흐름은 얼굴의 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꼴이 역사의 큰 흐름에 쓰임 받을 뿐이다. 때문에 좋고 나쁜 관상이 아니라, 좋고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며, 더 깊이는 좋고 나쁜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내경은 한명회에게 안 좋은 끝을 예고한다. 한명회는 그 예고와 달리 편안히 죽었다...

그러나 사후에 마침내 '부관참시'를 당했다. 

김내경이 말한 것이 과연 관상일까? 아니면 계유정란을 통해 수없이 많은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것에 대한 경고일까?

전자로 보면 김내경은 점쟁이고, 후자로 보면 김내경은 철학자이다.

누구를 믿을 것인지는... 각자의 결정이다. 



[ 후기 ]

영화, 관상이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란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07208

누가 배역을 맡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배역이 좋았기 때문에 부담 좀 되겠다. 드라마 속에는 좀 더 자질구레한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가겠지만, 과연 영화 이상의 다른 덩어리가 들어갈 수 있을까? 다소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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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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