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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정책이 어떻게 수립되는가라는 질문은 세계적 차원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몇 가지 힌트를 제공하겠다. 미국을 살펴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글로벌 차원에서 중요성이나 영향력으로 볼 때 미국은 유일한 위상을 가진 존재다. 둘째, 미국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열린 사회이기 때문에 내부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 즉 미국 국민에게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여기서 거론하는 정책구성에 대한 원칙은 다른 강대국에도 적용된다.


학계 연구, 정부 공식 발언, 공적 토론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표준 버전(received standard vers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에 따르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안보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1945년 이후 현재까지 가장 중요한 존재는 러시아였다.


이 독트린을 평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첫 질문은 이것이다. 러시아가 의미하던 위협이 1989년에 사라졌을 때 무슨 일이 뒤를 이었나? 답은 별다를 것 없이 모든 게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속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곧장 파나마를 침범하고 그 과정에서 대략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낳으면서 미국에 유리한 정권을 세웠다. 미국의 지배적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는 흔히 있던 일이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의 중대 외교정책 행위가 러시아의 위험과 무관한 상황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대신 조금만 살펴보면 단번에 무너질 핑계, 즉 침략에 관한 거짓 이유를 잇따라 만들었다. 미디어는 파나마를 격파한 미국의 성과를 열심히 찬양했다. 침입을 하게 된 구실이 엉터리라는 점, 파나마 침범이 국제법 위반행위라는 점, 또 특히 남미국가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이를 아주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한 채 말이다. 또 UN안전보장이사의 만장일치 결의도 무시됐다. 미국은 파나마 침공 시 미군이 저지른 범행에 대한 규탄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늘 반복되는 일이며 또 늘 잊혀지는 일이다.


엘살바도르에서 러시아 국경까지


조지 H.W. 부시 정권은 전세계적 경제붕괴에 대응해 새로운 국가안보정책과 그에 따른 국방부 예산을 제시했다. 예전과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이번엔 새로운 구실이 따랐다. 세계 모든 나라를 합친 군사력을 버금가는 최첨단 군사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라는 주장이었다. 그 이유가 흥미로운데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비에트 연방에 대응한 조치가 아니라 점점 더 섬세하고 정교해지는 '제3세계'의 최첨단 기술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제력 높은 지성인들은 적절한 침묵을 지켰다. 왜냐하면 그 터무니없음에 놀라 쓰러져버리는 행동이 적절치 않게 받아들여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획은 미국이 '방위산업기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일반적으로 첨단산업이라는 완곡어법으로 돌려 말하곤 하는데, 이 첨단산업은 연구개발 차원에서 국가의 광범위한 개입에 의존한다. 즉 펜타곤의 보호 아래 연명하는 미국 '자유 시장경제'의 일부인 것이다.


새로운 계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중동국가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워싱턴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그러나 '크렘린을 탓할 수 없는' 중대사건에 대비해 군사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0년간의 거짓말이 조용히 걷히고 그때까지 진짜 걱정은 러시아가 아니라 '과격한 민족주의'라고 불리는, 즉 미국의 통제가 불가능한 개별적 민족주의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순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끝나자 중요한 사건들이 곧장 이어졌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 중 한 곳은 미국의 군사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엘살바도르였다. 엘살바도르는 또한 최악의 인권상황을 가진 나라였다.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사실 사이에는 익숙하고 친밀한 연관성이 깔려있다.


엘살바도르의 사령부는 아트라켈 여단을 예수회 대학에 침투시켜 그 시절 라틴 아메리카의 최고 지성인으로 주목 받던 교수 6명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모두 교수 겸 신부였는데 이그나시오 엘라큐리아 총장도 함께 살해됐다. 또 그 참사를 목격한 가정부와 딸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아트라켈 여단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포트브래그의 존 F 케네디 특별전투센터에서 주최하는 고급 훈련을 마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또 그들은 이미 엘셀바도르 내에서 수천명의 희생자를 낳은 미국 주도의 대테러 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이 대테러 작전은 미국이 진행하는 중미 지역 작전의 일부로 통상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미국과 동맹국에게 다 잊힌 사건인데, 이 또한 통상적이다. 그러나 제대로 주시할 의지가 있다면, 실제로 세상을 조금만 더 조심스럽게 살핀다면 정책을 좌우하는 다양한 요인에 대해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다음엔 유럽에서 일어났다. 소비에트 연방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독일 통일과 통일된 나라의 나토 가입, 즉 소비에트 체제에 적대적 군사단체에 들어가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현대 역사에서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양보를 한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보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인 제임스 베이커는 나토가 "1인치도 더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즉, 동독으로 말이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나토는 동독 내부에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격분한 고르바초프가 항의하자 워싱턴은 그 이야기는 신사협정, 즉 구두 계약이었기에 유의미하지 않다고 답했다.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다면, 누구 탓을 하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는 일이었으며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나토 확장 또한 늘 있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한 술 더 떠서 클린턴 대통령은 나토를 러시아 국경까지 밀고 들어갔다. 오늘날 존재하는 국제적 위기는 바로 이런 정책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곤 약탈


또 다른 증거는 비밀 해제된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국가정책의 동기를 살필 수 있는 기밀서류 말이다. 내용은 복잡하지만 지속해서 나타나는 몇 가지 맥락이 지배적 역할을 한다. 그 중 하나는 1945년에 멕시코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나온 미국의 선언이었다. 워싱턴은 경제 민족주의를 퇴치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 경제 헌장'이라는 것을 강요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미국은 예외라는 것이었다. 엄청난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미국은 경제 민족주의를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에게 미국이 강요한 경제 민족주의 타파는 사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대부분의 정책과 상충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외무부 고위 관료는 "라틴 아메리카의 신민족주의 철학은 더 폭넓은 부의 분배를 통해 전체 인구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또 미국의 한 정책분석가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자원 개발에 따른 첫번째 수혜자는 바로 국민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워싱턴은 당연히 '첫 번째 수혜자'는 미국 투자자들이고 라틴아메리카의 역할은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정부가 이후에 입증했듯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의 국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도한 산업개발"을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미국 기업들이 더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 저품질 철강사업을 개발할 수 있지만 그게 "과도"해져서 미국기업과 경쟁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미국의 우려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연했다. 미국이 지배해야 할 글로벌 체제가 독자 개발을 주장하는 민심에 힘입은 "과격한 민족주의 정권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우려는 1953년과 1954년 이란과 과테말라의 정부와 수많은 다른 정권을 전복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란과 관련해 가장 큰 걱정은 이란의 독립이 당시 영국 식민지배 문제로 혼란에 빠진 이집트에 미칠 영향이었다. 과테말라의 경우 새로 탄생한 민주 체제가 다수 민중에게 힘을 실어주고 미국 기업의 현지 자산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워싱턴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인 것은 미국이 세운 인근 독재 정권 국가들이 겪을 불안이었다.


두 상황이 낳은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953년 이후 미국은 이란 국민을 계속 괴롭혀왔다. 또 과테말라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최악의 공포 체제로 남아있다. 그 옛날 레이건 대통령과 미국 고위간부들이 뒷받침한 군사작전 때문에 지금도 산악지대에 사는 마야족들이 거의 집단학살에 가까운 위험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다. 과테말라의 옥스팸 대표가 최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차원에서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됐다. 인권운동가를 겨냥한 공격이 지난해에만 300% 늘었다. 민간 부문과 군부 사이의 조직적인 계획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부를 제압한 이 두 세력은 체제 유지와 자원 채취 경제모델을 지향하면서 광산업, 아프리카 야자, 사탕수수 농장 같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냈다. 게다가 이런 조치를 반대하는 사회적 움직임 자체를 불법화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회운동 리더들이 수감됐고 다수가 살해됐다."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이런 정보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외무부 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이 직면한 딜레마를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체제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대중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고 "미국에선 불가능한 민중의 단합을 이룰 수 있다. 늘 부자의 재산을 약탈하고 싶어하는 빈곤층에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부자가 빈곤층을 약탈해야 한다는 독트린을 따르는 미국은 빈곤층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쿠바의 사례


미국 외교정책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한 예가 1959년에 독립을 성취했을 때의 쿠바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쿠바를 겨냥한 군사공격이 시작됐다. 얼마 후 아이젠하워 정부는 비밀리에 정권을 교체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고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 많은 관심을 가진 그는 취임 후 곧바로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를 대표로 하는 연구기관을 조성했다. 그리고 슐레진저는 새 대통령에게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슐레진저는 독립국이 된 쿠바가 의미하는 위협이란 "카스트로식 주권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라틴 아메리카 대중에게 아주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토지와 국가 자산의 분배가 유산계급에 매우 유리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쿠바의 사례는 빈곤층 등 버림받은 사회계층에게 큰 자극이 됐고 그들은 이제 일정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고 싶어 한다." 늘 미국이 직면하는 딜레마였다.


CIA도 "카스트로주의의 과도한 영향력은 쿠바의 힘과 무관하다. 카스트로의 그림자가 길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기존 정권과 맞서고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동요가 생길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라틴 아메리카에 만연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즉 쿠바 모델이 다른 국가들에 좋은 사례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케네디는 쿠바를 향한 러시아의 지원이 개발전략의 '모델'이 될 가능성, 즉 소련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미국 외무부 산하 전략정책위원회는 또 이렇게 경고했다. "카스트로의 존재에서 오는 가장 큰 위험은... 그의 정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라틴 아메리카에 퍼져있는 좌파 세력에게 주는 의미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카스트로는 반미의 성공 사례를 대표한다. 이는 우리가 거의 150년에 걸쳐 유지해 온 정책을 부정하는 것이다" 1823년에 공표된 먼로 독트린을 뜻하는 것이다.


이 독트린이 나온 것은 쿠바를 손에 넣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는데 그때는 불행하게도 영국 제국이라는 상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로 독트린과 미국 영토 확장론의 창시자격인 전략가 존 퀸시 애덤스는 쿠바가 언젠가는 꼭 미국의 관리하에 들어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미국의 "정치적 중력의 힘"에 끌려서 말이다. 그는 미국의 힘은 증가하고 영국의 힘은 감소할 것이라고 믿었다.


1898년이 되자 애덤스의 예견은 적중했다. 미국은 섬을 독립시킨다는 구실로 쿠바를 침입했다. 실제로는 미국의 행위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막고 오히려 쿠바를 "식민지"나 다름없는 형태로 추락시켰다고 역사학자 어니스트 매이와 필립 젤리카우는 말한다. 그리고 1959년에 독립선언을 할 때까지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됐다. 그 후 쿠바는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적 압박을 받아왔으며 테러 행위의 표적이 돼왔다. 러시아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러시아의 잠재 위험에 대한 방비라는 구실로 실행됐다. 침범의 합당성에 대한 토론은 대체로 빈약했고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이 이론이 정확한지 알아 보려면 러시아의 위험 가능성에 대한 작은 우려라도 생겼을 때 미국의 반응을 보면 된다. 1992년 대통령이 된 클린턴을 포함한 진보적 민주당 인사들은 보수파의 대표인 부시보다 더 쿠바정권을 몰아세움으로써 정권을 쟁취했다. 적어도 액면대로라면 이런 상황은 미국의 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기존 독트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영향은 미미했다.


민족주의 바이러스


헨리 키신저의 말을 빌리면 독립적 민족주의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병균" 같다. 이 말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빗댄 것인데 여기서 병균이란 의회를 통해 사회주의 정치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이런 병균의 위험을 막는 방법은 병균을 제거하고 폭압적인 안보통치로 감염 가능성을 예방하는 것이다. 칠레에서 그렇게 했듯이 말이다. 이런 개념은 세계 어디서나 만연하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이런 이유로 1950년대 베트남 민족주의를 반대하면서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를 탈환하려는 노력을 지지했다. 베트남의 민족주의가 인근 국가들, 특히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로 퍼질까 우려한 것이다. 일본이 산업과 상업의 중심으로 아시아권 신체제를 형성하는 것도 우려했다. 즉 일본이 아시아 학자 존 다워(John Dower)가 이야기한 '슈퍼 도미노'를 이루게 될 가능성을 견제한 것이다. 그런 전개는 미국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궁극적으로는 진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인데, 특히 195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치료방법은 명확했고 대체로 효과가 있었다. 베트남이란 나라는 쑥대밭이 됐고 '병균'을 전염되지 않게 관리할 수 있는 군사독재 정권 국가들에 포위됐다.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역임했던 맥조지 번디는 은퇴 후 베트남 전쟁을 1965년에 끝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즉, CIA가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모택동과 비교한 수하르토 독재 정권을 설립한 후 곧바로 동남아에서 빠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엄청난 피바다'를 일으킨 장본인인 수하르토를 미국이나 서방국가의 언론은 오히려 반겼는데, 그 이유는 전염병의 위험이 제거되고 서방국들은 인도네시아의 자원을 착취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번디가 나중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 순간 이후 전쟁은 불필요했다.


이 즈음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제거하든지 적어도 더는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약화될 정도로 미국은 민족주의 세력을 제압했다. 1960년대에 시작한 라틴 아메리카를 겨냥한 탄압은 그 대륙의 폭력적인 역사를 감안한다 해도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잘 알고 있듯이 1980년대 레이건 정권하에 이런 정책이 중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중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독특한 관계는 이스라엘이 세속적 아랍 민족주의의 주축인 이집트를 공격한 1967년에 성립됐다. 이 작전은 그때 예멘에서 이집트와 맞서고 있던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극심한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이자 와하비즘을 가장 열심히 전파하는 국가이다. 이 시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의 영국처럼 미국도 독립과 전염을 초래할 수 있는 세속적 민족주의보다 극심한 원리주의 이슬람 체제를 지지하는 성향이 높다는 것이다.


비밀의 가치


훨씬 더 많은 예가 있다. 중요한 것은 기록된 역사의 증거물만 보더라도 기존의 독트린이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안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정책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일반적으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독트린을 평가할 때 '안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하나의 답은 국력을 위한 안보이다. 여러 사례가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예를 보자. 지난 5월에 미국은 시리아의 전쟁범죄에 관한 UN 안보리의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결의를 지지하겠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예외를 주장했다. 즉, 이스라엘의 범행은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또 불필요하게도 스스로에 대한 그러니까 워싱턴에 대한 예외도 고집했다. 이것이 불필요한 이유는 미국은 국제형법제도에서 스스로 면책을 행사하는 독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침범법'으로 유럽에 알려진 법이 있다. 미국 국회가 실제로 입법한 그 법 조항에 따르면 헤이그 재판 피고가 미국 국민일 경우 미국 대통령은 무력으로라도 그를 구출할 권리를 행사해도 된다. 국력을 위한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럼 누구를 상대로 한 안보인가? 미국 정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기록 보관소를 많이 뒤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진짜 보안 때문에 기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기밀은 국민을 암흑에 쌓이게 하는데 이용된다. 저명한 진보 학자이자 정부 고문을 역임한 하버드대 교수 새뮤얼 헌팅턴이 명쾌하게 설명했다. "미국 국가체제를 설계한 이들의 과제는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어둠에 가려진 힘은 강력하게 유지될 수 있지만, 햇빛에 노출되면 그 힘이 증발된다."


1981년 냉전이 다시 뜨거워질 무렵 그는 이렇게 적었다. "군사적 중재행위 또는 작전은 소비에트 연방을 대적하기 위한 것이라는 허위를 명분으로 삼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이후 계속 이런 방법으로 행동해 왔다." 이 간단명료한 진실은 거의 인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현재까지 지속되는 그 영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국가 권력은 내부의 적, 즉 국민으로부터 보호 받는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국민은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한다. 현재 사례로는 오바마 정권의 전방위적 감시 프로그램의 헌법 훼손을 들 수 있다. 이는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거의 모든 국가가 안보라는 말로 스스로의 행위를 변명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감시프로그램을 폭로하자 간부들은 그 프로그램이 54건의 테러행위를 예방했다고 주장했다. 질문이 계속되자 그 수는 열댓개로 줄었다. 그런데 정부 위원회가 이후에 파악한 바로는 단 한 건의 테러 예방 사례가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 소말리아에 8,500달러를 보내는 것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헌법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의 법도 마음대로 위반해 얻은 총 수확이 바로 이것이다.


영국의 반응이 재밌다. 가디언에 따르면 2007년 영국 정부는 워싱턴의 초대형 첩보조직이 "수사망을 통해 영국 국민의 이메일, 팩스 번호, 휴대전화 번호, IP주소를 수집하고 분석"해도 된다고 동의했다. 영국 정부가 생각하는 자국민의 프라이버시 권리가 워싱턴의 요구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민간 기업체의 안전 보장이다. 그 예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환태평양과 환대서양 무역협정이 있다. 이 협정들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비밀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상세한 협상 조약들을 직접 준비하고 있는 수백 명의 기업체 변호사들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몇 건의 누설을 생각해 보면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NAFTA 등과 마찬가지로 이 협약들은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투자자 권리협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지지층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안보가 중요한 것이다.


인간 문명의 마지막 세기?


너무나도 많은 사례가 더 있다. 자유사회에서라면 초등교육에 포함해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명백한 사실들 말이다.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권력을 지키고 민간 기업체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방침이 정책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물론 그런 과정이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특히 요즘 흥미 있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건 위 두 가지 부분이 대립할 때 발생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같은 정책 형성은 위에 제시한 '표준 버전'과 상당히 상충한다.


그럼 질문을 하나 해보자. 그럼 국민의 안보는? 국민에 대한 걱정은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부분적 요소밖에 안 된다. 현재 두드러진 두 가지 사례를 보자. 지구 온난화와 핵무기.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 두 문제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막대한 재앙이다. 그런데 국가 정책을 살펴보면 이 두 위험요소를 더 극심하게 하는 방향으로 틀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국가와 민간 기업체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보자. '향후 100년간의 에너지 자유'를 외치는 미국은 '다음 세기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되는 것을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현재의 정책이 지속되면 인류의 마지막 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이런 사례는 안보에 대한 정부의 관점을 명백하게 나타내 준다. 적어도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또 현재 앵글로-아메리칸 자본주의의 도덕성을 보여준다. 즉 당장 누릴 수 있는 이익에 비하면 우리 후손의 운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계산 말이다.


이런 결론은 선전 체계를 보면 확실해진다. 대형 에너지 산업체들과 다양한 기업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홍보캠페인은 지구 온난화가 사실이 아니거나 적어도 인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캠페인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 미국은 다른 여러 국가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약하다. 특히 부자와 기업 부강을 최고로 여기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반대는 글로벌 평균보다 훨씬 낮다.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실린 흥미로운 글에 따르면, 이런 결과는 미디어의 '공평함과 균형 보도 방침'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런 방침 하에서는 만약 어떤 언론이 과학자 97%가 동의하는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도 반대 입장을 가진 에너지 기업의 의견도 함께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도 방침이 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푸틴의 크림반도 침략을 규탄하는 논평을 어느 언론이 실었다고, 미국이 100년 전에 쿠바의 주요 항만을 포함한 남동 지역을 점령하고 쿠바 독립 이후 그 지역을 되돌려 달라는 쿠바의 요청을 계속 무시한 행위에 비해 이번 러시아의 침범은 더 합리성이 높다는 기사를 실어줘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다른 경우들도 마찬가지다. 즉 미디어의 공평함과 균형 보도 방침은 힘을 가진 일부를 위해서는 적용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무시된다.


핵무기에 대한 이제까지의 기록은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초기부터 국민의 안전은 논의 거리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아직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많은 사례를 여기서 다 나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핵무기로 무장했던 전략 공군 사령부의 지휘관이었던 리 버틀러 장군의 비통한 말을 빌려보자. 그는 이제까지 핵 재난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재능과 재수와 신의 개입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마지막 요소가 가장 크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책 전문가들이 종말을 자초하는 룰렛게임을 하는 동안 신의 개입만을 계속 바라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바로 환경파괴와 핵전쟁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존재의 유지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험은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이 이유 하나만으로라도 이념적인 구름을 걷어버리고 정직하게 현실감각을 갖고 정책 형성과정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어떻게 그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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