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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5  목양칼럼


교황의 방문으로 한국 매스컴이 뜨겁다.

부끄럽다. 짧은 일정 속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위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나의 개신교는 무엇을 했던가?

위로의 자리에 목사님들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젊은 목사님들이 지금도 유족들과 함께 금식하며 최선을 다하시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에는 적어도, 교황과 같은 어른이 없었다. 오히려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유족들을 욕보이는 언행을 일삼아 논란이 일었다. 그것은 신앙의 차원을 떠나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조심해야 할 언행이며, 인격의 차원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무형의 폭력이었다. 


비약된 관점이지만, 나는 교황의 방문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떠오른다. 

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들이 이런 방식을 취한 것에는 정치적 흑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유대인과 하나될 수 없는 입장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만의 독립을 추진했고, 그 결과 유대교로부터 종교적 분리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유대교와 다른 방식으로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종교를 표방해야 했다.

사마리아인의 종교가 갈리면서, 유대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것은 아마도 타종교보다 '이단'에 훨씬 큰 적대감을 느끼는 우리의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의 비유(누가복음10장)에서 이 사마리아인을 '선한 이웃'으로 등장시키셨다. 

예수님의 이 설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마치 '일베(일간베스트)'에서 설교하면서 '전라도 좌빨종북'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을 '선한 이웃'으로 설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논객'이 있었다면, 아마도 예수님의 이 설교를 두고두고 씹었으리라. 

이 설교가 더욱 자극적인 까닭은,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종교적인 부류였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가는 인물로 그려진 것에 있다. 이 정도 설정이라면,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또한 반유대적인 공격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주의자도 아니고 반유대주의자도 아니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예수님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옹호하지도 않으시며, 전제주의나 공산주의를 지향하시지도 않는다. 

정치적 신념과 제도는 역사의 산물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혁된다.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좋아질 때도 있고 나빠질 때도 있다.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비유는 적절하다. 유대주의 역시 한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복음’의 보편적 부르심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임시로 사용하신 포장이다. 그렇다면 알맹이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것을 ‘선량함’이라고 부르셨다.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고 위하여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목사로서,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신학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지성은 개혁신학을 옳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것을 평생 믿고,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교황의 방문 속에서, 나는 예수님의 설교를 다시 듣는다. 

한국 교회에 훌륭한 신학과 성경에 대한 해박한 깨달음은 풍성한데, 실천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렇게 감동적인 책을 저술하고 많은 신자들을 뭉클하게 설교했던 사람들이 과연 예배당 밖의 사건, 상처 받은 세상, 버려진 사람들, 다 죽어가는 강도 만난 자에 대하여는 어떻게 대우했던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제단에서 다 불타기도 전에,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방관하고 자기 발걸음을 바쁘게 가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황을 통해, 어쩌면 한국의 개신교를 꾸짖고 당혹스럽게 만드시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했다. 공자는 함께 길을 걷는 세 사람 중에 한 명은 반드시 나에게 스승이 된다고 하였다. 천주교의 역사에 그야말로 ‘아니올시다’ 이었던 교황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교황은 나름 훌륭하지 않은가! 그 신학과 역사의 색안경을 통해 보기 전에, 그래도 이 정도면 과연 대화하고 선한 경쟁을 해볼만한 빼어난 인물이 아닌가 말이다.

그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인정할 것은 인정한 후에, 지금은 무엇보다 우리 실체의 부재를 따져봐야 할 때가 아닐까? 교황이 문제가 아니라 개신교 교회가 문제다. 한국교회가 문제다. 이것이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교황의 선행을 보며, 누군가는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자기를 위장한다고 하더라.

좋다. 그러는 당신은 누군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훌륭하다. 그럼, 사탄도 광명의 천사를 위장하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니, 당신은 사탄을 흉내내기로 작정이라도 했단 말인가…… 코스플레이도 아니고, 할로윈 분장파티도 아닌데 뭐 하는 짓인가? 그 비방과 모욕, 그 무례함이 과연 옳은 신앙의 뿌리에서 나온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비판만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사람은, 다른 종교의 약점을 잘 물어뜯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믿음을 잘 보여줄 사람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가 직접 몸으로 말해야 할 차례이다. 세상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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