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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선생의 이야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으로, 이분이야말로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사관(史官)이시다.

이 분의 이야기가 제대로 조명 받았으면 좋겠는데, 친일파의 후예를 자부하는 뉴라이트가 득세하는 세상에서는 요원(遙遠)한 이야기인 것 같다.

부끄럽다. 양심에 부끄럽고, 역사에 부끄럽고, 후손들에게 부끄럽다. 

광복을 맞은지 올해 8월15일이 되면 69주년이다. 

70주년이 가까와지는 이 시점에서도, 일본에 주권을 잃었던 역사의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하고 여전히 역사의 바른 가치를 세우려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피를 흘려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뼈 아프다.

그럼에도 어떠하랴! 

평생을 5평 방안에 자신을 가두고 이 싸움을 홀로 했던 임종국 선생과 같은 분의 눈물이 있는데 어찌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기 아버지조차 친일의 행적에 기록하고, 역사를 정직하게 직면하려고 했던 그 학자의 양심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의 비전이, 이 흔들리는 시대조차 반드시 붙들어 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분의 이야기를 잘 정리한 그림이 있어 보관한다. (뉴스타파와 KBS1의 화면 캡쳐이다.)
조금 길이가 있지만, 꼭 같이 보고 기억했으면 싶다.


임종국 평전 : http://goo.gl/Wm5iRx
위의 책을 저자 정운현씨의 블로그를 통해 볼 수도 있다. : http://goo.gl/slMuRT


-- by mAkaRios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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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얼마 전에는 서울시장 후보가 후보수락 연설을 하면서 눈물을 보인 것이 신문을 장식했다.

평생을 재벌로 살아왔고 이제는 여당의 중진의원이 되어 심지어 '대권' 이야기가 나왔던 분이 '국민은 아직도 미개하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자식의 말을 덮기 위해서 흘렸던 눈물... 그 눈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천 만의 서울시민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한 것일까? 멀고 지난한 권력의 길을 위한 것일까?



여기 다시 한 눈물을 보았다. 팽목항에서 유족들로부터 눈총의 돌팔매를 받아야 했던, 국영방송 KBS의 막내기자... 입사 3년차의 강나루 기자는 말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당당한 국영방송의 기자가 되기까지 나름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도 갖추고 꿈도 부풀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가 안정적 직업으로 기자를 선택했든, 아니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로 기자의 직업을 선택했든... 한 젊은이가 꿈꾸고 생각했던 자리는 결코 지금의 자리는 아니었나보다...

자기 공동체에 대한 모멸감, 자신의 역할에 대한 회의, 무력감... 거대한 구조에 깔린 한 날것(live) 청춘의 신음이 화면 저편에서 흐느끼고 있다. 


나는 세월호의 유족들 만큼이나 저가 불쌍하다. 저 젊은이의 눈물이, 흐느낌이 세월호 속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들으며 죽어간 젊은이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땅의 젊은이에게 과연 꿈의 가능성은 있는가? 사람을 살아있다 느끼게 만드는 가치와 비전의 실현이 과연 우리의 사회에서 가능하냐는 질문 앞에, 우리는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오늘, 차디찬 복도에 앉아 권력의 주구가 되어버린 KBS의 사장에게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을, 아니면 어느 막술집에서 술로 쓰린 가슴을 달래며 세상의 역겨운 냄새를 한탄하고 있을 저 젊은이가 질식하기 전에, 또 하나의 우리 아들, 딸이 거짓과 부정의 파도에 휩쓸려 영영 떠내려가기 전에...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지켜줘야 할 눈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상원본링크 : http://www.newstapa.org/news/?p=11010 (뉴스타파)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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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이 때로는 천 만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수도 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그랬다.

그냥 사고 소식 중에서 희생자를 나타내는 수 백의 숫자 중 하나가 아니라, 그 하나의 숫자가 바로 내 아들이며, 우리의 미래이고, 작은 우주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에 이 글을 내 블로그에 보관하려 한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아이들의 핸드폰에 담겨진 기록들... 그 내용을 담은 한 장면....




그 어머니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나와 희생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내 아들 김동혁에게

사랑하는 내 아들 동혁아. 2년 전 세상에 지치고 힘들어하던 너희 아빠를 통해 너와 네 동생을 만나 단조롭고 조용하던 엄마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어. 외롭고 기댈 가족이 많지 않았던 너에게,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이 생기고, 든든한 형이 생겨서 너는 아주 뿌듯해하며 우리 가족 모두는 표정부터 달라졌었지.

친구도 많이 없어서 집에만 있던 너가, 행복해하는 가족들의 기원 아래 단원고 착한 친구들을 사귀고, 만화 그리기를 하며 친구들과의 시간을 엄마에게 전해줄 때, 아빠는 늘 너를 응원하며 진짜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어. 너랑 함께 먼길 떠난 너의 제일 친한 친구, 순영이, 하용이, 윤수, 종영이, 그리고 그렇게 친하고 싶다고 말했던 외국인 친구 슬라바. 모두 잘 지내니?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에 너가 갈아입을 옷을 걱정하며 진도로 내려갔던 엄마와 아빠. 하지만 3일 밤낮을 기도만 하던 너의 착한 아빠는 이제 더 이상 생존의 희망보다는 너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팽목항과 진도 체육관을 동분서주했었어.

앉아서 기다리기엔 절차와 날씨와 기술로 좋지 않은 구조체계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게 아빠의 마음이었어. 23일 새벽 MP3와 나타난 너의 시신을 보며 엄마와 아빠는 또다시 비통하고, 그 순간에도 널 찾은 것이 아직 찾지 못한 부모님들께 너무 죄송했단다. 너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좋은 추억 만들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돌아오라고 말했던 아빠는 입을 찢고 싶은 분노로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

자는 듯이 이쁜 모습으로 부모님 품에 돌아와줘서 너무 고마워. 내 아들.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니. 구조를 믿고 기다리다 침수됐던 너와 너의 그 많은 친구들에게 엄마가 어떻게 하면 용서를 구할 수 있겠니.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라고 마지막… 영상으로… 남긴 생때같은 내 아들아 너무 고맙다. 너가 내 아들이 되어줘서 그리고 앞으로 평생 단원고 2학년 4반 7번 김동혁의 엄마로 살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용접공으로 20년 넘게 살아온 착한 아빠를 자랑스러워했던 너. 동혁아,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힘을 좀 내줄래. 마지막 한 명까지 친구들 어떤 모습으로든 엄마 아빠한테 돌아올 수 있게 너희들이 좀 도와줘. 

동혁아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세금을 내고 묵묵히 일자리에서 소시민으로 살아왔던 너와 친구들의 엄마 아빠가, 너희들의 희생이 제발 헛되지 않길 강렬히 원하고 있어. 내 동생이. 그리고 이 땅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놓고 여행 다니고, 마음 놓고 내 나라를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길 멀리서 응원해주길 바라. 

내 아들 김동혁, 너가 가장 힘든 시간에, 너와 함께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너가 걱정했던 너의 여동생, 너의 착한 아빠, 꼭 이 새엄마가 지켜줄게. 동혁아 사랑해!


참고 : 경향신문 기사 http://goo.gl/g9zEZ


그 어머니가 어제(5월12일)는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기사바로가기 : http://goo.gl/mrMUpb


오늘로 세월호 참사 27일째입니다. 사흘 뒤면 한 달입니다. 한 달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피해자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똑같이 아파하고 또 슬퍼했는데요. 지난 토요일에는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 촛불추모제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한 어머니의 편지가 참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바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였는데요, 화제가 된 편지를 쓴 당사자, 그 어머니를 오늘 저희가 직접 연결합니다. 단원고 2학년 4반이에요. 고 김동혁 군의 어머니... 어머님, 나와 계십니까? 


◆ ○○○> 네... 


◇ 김현정> 아드님 장례는 언제 치르셨어요? 


◆ ○○○> 23일 날 올라와서 25일 날 치렀습니다. 


◇ 김현정> 사실 동혁 군은 우리 국민들도 많이 압니다. 어떻게 아는고 하니, 침몰 후에 선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몇 개 공개가 됐는데 그 가운데 처음 공개된 15분짜리 동영상이 있어요. 그 동영상에서 카메라에 대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 이 말을 남겼던 아이가 맞죠? 


◆ ○○○> 네, 맞습니다... 


◇ 김현정> 목소리를 듣고 딱 아셨어요, 그때? 


◆ ○○○> 네, 저희는 얼굴이나 이런 게 편집이 안 된 걸 바로 먼저 봤거든요. (동영상을 촬영한) 수현이의 아빠가 보여주셔서. 


◇ 김현정> 동혁이가 엄마, 아빠, 동생 걱정하는 걸 보고는 참 가족을 많이 사랑하는 아이였구나, 생각이 들던데...


◆ ○○○> 네, 중학교 때까지는, 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친구도 별로 거의 없었고 하루 종일 집에서 게임만 하고 그냥 아빠 시키는 것만 하던 그런 애였어요.


◇ 김현정> 중학교 때 어머니를 처음 만난다는 게 무슨 말씀이시죠? 


◆ ○○○> 저희가 재혼 가정이라 중학교 3학년 때 동혁이를 제가 처음 만났습니다. 


◇ 김현정> 그러셨군요. 그러니까 그전에 엄마 없이 지내던 아이, 외톨이로 지내던 쓸쓸한 모습을 가진 아이였어요?


◆ ○○○> 처음 만났을 때는 사실은 냉장고에 있는 물조차도 제대로 못 꺼내는 그냥 생활 자체가 조금 힘들었다고 해야 되나요.


◇ 김현정> 내성적이기도 하고 말수도 적고 어떻게 보면 세상하고 단절된 채 살았던 그런 아이군요?


◆ ○○○> 그때 당시에도 교회 다니고 있었으니까 그냥 주말에는 교회 가고 아니면 집에서 게임하고 그게 전부였던 아이였어요. 저희 애 아빠하고 저하고 의논을 한 끝에 저희가 MP3를 사줬었어요. 


◇ 김현정> 음악 듣는 MP3를.... 


◆ ○○○> 너무 요즘 아이들은 아이돌 그룹이나 이런 걸 많이 아는데 얘는 TV에 나오는 아이돌조차도 관심이 없어서 음악이라도 듣고 사회하고 소통을 하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조금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고, 전에는 노래방 가면 잠만 잤던 애가 노래도 부르기 시작하고... 친구가 많이 생겼었어요, 단원고등학교 들어가가지고. 


◇ 김현정> 그렇군요. 


◆ ○○○> 그런데 그 친구들이 전부 다 1명도 빠짐없이 다 이번에 희생이 되는 바람에... 저희는 너무 힘듭니다 (눈물). 


◇ 김현정> 내성적이고 얌전하고 그래서 그게 부모님들 보기에는 안타까웠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친구도 많아지고 아들이 밝아지고 '아, 보기에 참 좋다, 우리 아이 예쁘게 자라는구나'하고 있을 그 무렵이었군요, 그러니까 그때가?


◆ ○○○> 최고 행복할 때였었어요, 저희가. 


◇ 김현정> 최고 행복할 때? 


◆ ○○○> 네. 저를 만나고 제가 해 준 게 없는데도 그냥 제 생활에 같이 들어와서 있다 보니까 저는 가족들도 많고 사회생활을 제가 하다 보니까 즐거운 일이 많이 있었었어요. 애 아버지도 항상 행복하다는 말을 달고 다녔어요. 우리 이렇게 행복해도 되냐고... 


◇ 김현정> 동혁이가 마지막 동영상에 남긴 걸 보면 ‘엄마, 아빠 사랑해요’ 하고 동생 걱정을 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 특히 여동생하고 각별한 게 있었나 봐요? 


◆ ○○○> 세상에 둘밖에 없었으니까요. 아빠가 저를 만나기 1년 전까지는 주야간을 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밤에 애들 둘만 놔두고. 


◇ 김현정> 야간 근무를 하셨군요.


◆ ○○○> 그러다 보니까 동생을 지키려면 밖을 나가면 안 되니까. 


◇ 김현정> 엄마 없이 아빠랑 혼자 지내는 홀로 지내는 그 6년 동안 밤에, 아버지가 밤에 일 나가시고 나면, 그 밤을 동생과 함께 지내던 게 동혁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동생에 대해서도 각별할 수밖에 없는 거고 마지막 그 동영상에서 챙겼던 게 동생, ‘내 동생 어떡하지’.....그 동생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 ○○○> 처음에는 동생도... 아직까지는 생각이 그렇게 성숙되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 김현정> 몇 살이에요? 


◆ ○○○> 중학교 3학년인데, 오빠가 너무 위해 주다 보니까 온 가족이 다 좋아해 주고 하다 보니까 아직까지 어렸었는데, 며칠 전에 촛불집회를 제가 데리고 가서 그때 오빠 영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용기가 없어서 편지를 읽는다고 해 놓고 '과연 읽는 게 맞을까' 그리고 이 모임 자체가 어떤 사람들은 좌파니 어쩌느니 무슨 정당이니 이렇게 얘기하니까 거기에 대한 우려도 있었어요, 저는 순수한 마음이었는데.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여동생이 ‘엄마, 이런 상황이면 엄마가 올라가서 읽으라고 나는 엄마 응원하고 있다고’. 그래서 읽고 내려와서 동생이랑 많이 울었어요.


(세월호 선실 동영상이) 방송을 타다 보니까 동혁이는 이렇게 온 세상에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엄마를 먼저 불러줬는데 나도 얘기는 해야 동혁이가 듣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편지를 읽게 됐어요. 


◇ 김현정> 그렇군요. 동혁이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을 하면서 그 영상을 남기고 가는 갔는데 나도 동혁이에게 뭔가 좀 남겨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 날 2만 명 사람들 앞에서 어머님이 낭독해 주셨던 그 편지를 지금 조금만 함께 나눌 수 있을까요? 


◆ ○○○> 내 아들 김동혁에게. 사랑하는 내 아들 동혁아! 2년 전 세상에 지치고 힘들어하던 너희 아빠를 통해 너와 네 동생을 만나 단조롭고 조용하던 엄마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어. 외롭고 기댈 가족이 많지 않았던 너에게,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이 생기고, 든든한 형이 생겨서 너는 아주 뿌듯해하며 우리 가족 모두는 표정부터 달라졌었지.


친구도 많이 없어서 집에만 있던 네가, 행복해하는 가족들의 기원 아래 단원고 착한 친구들을 사귀고, 만화 그리기를 하며 친구들과의 수다를 엄마에게 전해 줄 때, 아빠는 늘 너를 응원하며 진짜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어.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라고 마지막 인사를 영상으로 남긴 천사 같은 내 아들아, 너무 고맙다! 네가 내 아들이 되어줘서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을 단원고 2학년 4반 7번 김동혁의 엄마로 살게 해 주어서. 동혁아,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힘을 좀 내줄래. 마지막 1명까지 친구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엄마, 아빠 앞에 돌아와주길 너희들이 좀 도와줘. 


내 아들 동혁아, 네가 가장 힘든 시간에 함께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네가 걱정했던 너의 여동생, 착한 아빠 꼭 새엄마가 지켜줄게. 내 아들, 내 새끼 김동혁. 동혁아, 너무 사랑해...(눈물) 


◇ 김현정> 어머니, 동혁이가 아마 지금 천국에서 거기는 아무 아픔도 고통도 없는 곳이라잖아요. 거기에서 지금 어머니 편지를 듣고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 ○○○> 감사합니다. 


◇ 김현정> 남은 우리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많다는 것, 그걸 위해서라도 어머니 꼭 기운 차려 주시기를 제가 부탁드립니다. 


◆ ○○○>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건강 잘 챙기시고요. 오늘 고맙습니다. 


◆ ○○○>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 김동혁 군의 어머니입니다. 주말, 동혁이에게 쓴 편지로 많은 이들을 울렸던 그분이세요. 어머니,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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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 정의(正義)가 없는 대학(大學)은 대학이 아니기에.>


나는 두산대학 1세대다. 2008년, 두산은 야심차게 중앙대를 인수했다. 명문의 반열에 올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는 중앙대 학생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 기업의 말처럼 나는 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하지만 두산재단과 함께 시작한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박용성 이사장은 대학이 교육이 아닌 산업이라 말했다. 대학도 기업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중앙대라는 이름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5년 만에 그의 말은 실현되었다. 정권에 비판한 교수는 해임되었고, 총장을 비판한 교지는 수거되었다. 회계를 의무적으로 배우면서, 성공한 명사들의 특강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교양 과목은 축소되었고, 이수 학점은 줄어들었다. 학과들은 통폐합되었다. 건물이 지어지고 강의실은 늘어났지만, 강의 당 학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대자보는 금지되었다. 정치적이라고 불허됐고, 입시 행사가 있다고 떼어졌다. 잔디밭에서 진행한 구조조정 토론회는 잔디를 훼손하는 불법 행사로 탄압받았다. 학생회가 진행하는 새터와 농활도 탄압받았으며, 지키는 일이 투쟁이 되었다. 중앙대는 표백되어갔다. 


대학은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학문을 돈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싸웠다. 2010년 고대의 한 학우가 대학을 거부하고 자퇴라는 선택을 했을 때, 나는 무기정학을 받았다. 한강대교 아치위에 올라 기업식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분투한 대가였다. 대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기업을 등에 업은 대학은 괴물이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5차례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3차례의 징계조치를 받았다. 무기정학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자 대신 유기정학 18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유기정학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조조정 토론회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근신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징계이력은 낙인찍기였다. 받았던 장학금은 환수요청을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학교본부는 나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각 과 학생회장들을 징계처분, 학군단과 교환학생 자격박탈, 학생회비 지원중단 등 갖가지 방법으로 협박하였다. 

그렇게 난 블랙리스트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날 종북좌파라 어느 교수는 나를 불구덩이에 타죽으러 가는 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나는 절벽 앞으로, 불구덩이로 내몰렸다.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였을까. 


대학에 더 이상 정의는 없다. 이제 학생회는 대의기구가 아니라 서비스 센터다. 간식은 열심히 나눠주지만, 축제는 화려하게 진행하지만, 학생들의 권리 침해에는 입을 닫았다. 학과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폐과되고, 청소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학생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교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시국선언을 했던 교수들이 학내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탄압의 선봉을 자처하게 된 교수들도 있다. 대학의 본질을 찾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다치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 모두가 비겁했다. 


내가 이 대학에서 배운 것은 정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 거대하고 완고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그저 포기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고민하고, 경쟁을 통한 생존을 요구했다. 그렇게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 난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형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저항을 해보려한다.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중앙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중앙대를 사랑하고, 중앙대가 명문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대학은 대학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진리와 정의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비록 중앙대를 자퇴하지만, 나의 자퇴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대학을 복원하기 위해 모두에게 지금보다 한걸음씩의 용기를 요구하는 재촉이기도 하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중앙대의 교훈이다. 

떠나더라도 이 교훈은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 대학엔 정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중앙대학교 철학과 김 창 인 


2014년 5월 7일에 올라온 글입니다. 

김창인 군의 페이스북 : http://goo.gl/wcSjP5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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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소 문>

먼저 어제(5월 6일) 실종자 구조작업 중 사망하신 고 이광옥 잠수사님의 명복을 기원하며, 그 가족께도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저희는 고 이광옥 잠수사님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지금도 사고해역에서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하고 계시는 잠수사님들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부에 촉구합니다.

1. 정부는 실종자를 조속히 구조해 주십시오. 
사고책임은 선사에 있지만 구조책임과 의무는 정부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구조작업은 지연과 혼선뿐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구조할 수 있었던 탑승자들의 죽음을 방치하였고, 이제는 드문드문 올라오는 시신이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하였습니다. 우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은 이제라도 실종자 구조에 실질적인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고 싶습니다. 단 한명의 실종자 유실도 없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즉시 취해주시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2. 정부는 투명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주십시오. 
현재 검찰이 선사 및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사고원인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고책임이 있는 선사 및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은 당연합니다.
동시에 가장 중요했던 사고 초기 구조작업이 이틀 이상 지연되고 이후 구조작업도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남아있는 우리 자녀들이 똑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첫 과정입니다. 
정부는 검찰의 수사내용을 우리 “가족대책위”에 공개해 주십시오. 해경 또는 검찰이 수거한 우리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대한 수사내용도 공개해 주십시오.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신 국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함께 아파해주신 이유는 이러한 사고가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이 부정과 부패를 방관하고 방조해온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고 느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저희 “가족대책위”는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조속한 실종자 구조를 위해 함께 외쳐 주십시오.
진도에서 외롭게 피눈물 흘리며 바다 밑에 갇혀 있는 아이와 가족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내 아이, 내 가족의 시신이라도 돌려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종자 수가 줄어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론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비록 생존가능성이 거의 없더라도 시신이나마 내 자식이고 내 가족입니다. 장례라도 온전히 치뤄 주고 싶은 게 부모의 애절한 마음입니다.
국민 여러분! 외로움에 치를 떨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더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 한 명의 실종자가 구조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외쳐 주십시오.

2. 투명하고 철저한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행동해 주십시오.
저희 “가족대책위”는 진심으로 검찰의 사고원인 및 무책임한 사고수습에 대한 수사가 투명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대책위”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는 판단이 들면 지체 없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직접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부터 국민여러분들께서 함께 외치고 행동하고 제안도 해주십시오. “내 아이가 안전한 나라”, “단 한 명의 국민도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는 국민 여러분들의 참여 없이는 만들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저희의 목적은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는 사고 후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강력히 비판해왔지만 그것은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이러한 저희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시고 모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및 모든 국민들이 함께 ”안전한 나라“ 건설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4년 5월 7일

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 이 호소문은 A4 / A3 용지로 출력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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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참사로 인하여 거친 언어가 난무합니다.


저질러 놓은 일과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욕이 나오는 현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욕만 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관련된 사람 다 감옥에 넣고, 무능한 공무원과 정치인들 다 옷 벗기고, 그렇게 못할 경우에는 이민이라도 가려고 합니까?

제가 지금 외국에 사는데, 외국이라고 유토피아는 아닙니다. 

어디를 가도 이상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해결해가는 것이 인생이고, 책임입니다. 


그래서 화가 날수록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구체적인 행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 정도 충격을 받았으니 저절로 깨닫고 알아서 바뀌어 주겠지 생각을 하면, 그것보다 오산(誤算)은 없습니다.


어느 중학교의 도덕숙제를 소개합니다. 

조금은 감정의 앙금을 치유하시라고, 기분전환을 위해, 잠깐의 여유를 위하여 같이 나눕니다. 나쁜 놈도 참 많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직 선량함이 더 많다고 믿습니다. 그걸 생각하면서 스스로 좀 위로 받고, 힘을 내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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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쓰촨 대지진 때의 일입니다.

사망과 실종자만 86,000여명을 기록한 대재앙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발생 2시간만에 원자바오 총리는 전용기로 현장에 도착합니다.

그는 직접 폐허 사이를 돌면서 확성기로 구조대원을 격려하고 

피해자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내가 왔다! 총리가 왔다! 조금만 참아라!" 

"울지 마라... 내가, 중국 정부가 너희를 책임질 것이다"

 

이 말이 불안과 공포에 떨던 이재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잔해 속에 들어가길 꺼려하는 인민해방군들에게는, 

그는 또 이렇게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누가 너희를 먹여 살리고 있는지 잊지 마라" 

 

지도자가 재해 현장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이후 원자바오는 중국 인민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은 온 세상과 바꿀 수 없습니다. 

더우기 꽃피우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농부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봄에 뿌릴 씨앗에 손대지 않습니다.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도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기꺼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나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모든 아이들이 조국을 믿고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 헐리웃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위대한 국가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나 군사력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마음에 달렸다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하고, 심지어 헐리웃 영화가

말하고 있습니다.


네, 처음부터 생존자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더 참혹한 일도 요즘은 자주 일어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할 일을 다 한 후에, 사람의 힘이 닿지 않는 저편을 보는 것과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먹먹하게 아이들의 주검을

보는 것은 분명 다른 일입니다.


우리는 죽은 아이들을 살려내라는 말이 아니라,

과연 이것이 대한민국의 전부인가? 과연 이것이 이 나라의 최선인가?

묻고... 대답하며... 자괴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국민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는 경찰과 군대라면,

그리고 공무원과 정치인이라면... 이미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

이익집단이고 착취의 구조물일 뿐입니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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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만화와는 달리,
세월호의 선장은 헬기로 구조된 것이 아니라
유유히 배를 타고 나왔지요.
마치 자신이 승객인것처럼 가장하고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 파렴치한 무책임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역사의 교훈'이 없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무책임한 사람은 나중이라도 명명백백하게 그 사실이 드러나고 수치를 당해야 하는데
우리의 역사는 그걸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시끄러운 당장만 버티고 벗어나면 없던 일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하면서... 책임은 미련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리고
영리한 사람들은 슬쩍 비껴가거나 서로 미루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람마다 공(供)도 있고 과(過)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이 있다고 하여서 그 과가 사라져서는 발전을 할 수 없습니다.
공으로 과를 덮어 용서를 하더라도 실체는 드러내야 하고 
사실은 알려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나쁜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행태입니다.
언론은 본래 사실을 가지고 권력을 비판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이제 그 소리가 시끄럽고 귀찮다 하여서 
전부 재갈 먹여 홍보의 수단으로 바꾸려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실체'는 없고 알리고 싶은 '의도'만 서로 난무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실을 듣지 못하고
진실을 모르니 오해를 하고, 오해가 자라니 결국 분열이 생기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장담하면서
상대방을 천하에 몹쓸 버러지로 여기는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인데, 동포인데, 형제인데 말입니다.


이런 짓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유불리를 떠나 사실에 천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아무리 불리하고 아프더라도, 그 사실을 발판으로 삼아
공동체를 한 걸음 앞으로 나가게 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내 편이라도 무책임한 사람은 버려야 합니다.
그 무책임에 대하여 응당 책임을 지게 하고, 수치를 당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책임하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 다시는 얼굴을 들 수 없게 해야만
비로소 미래에 있을 무책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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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블레이즈델 중령 (군목)

6.25의 참담한 전쟁 속에서 한 사람이 상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고아 1,069명을 제주도로 탈출시켰다.

그는 감찰관의 조사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대답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 세상이 될 때에, 세상은 어둠에 잠긴다.

그 일을 남의 일이라 미루지 말고, 내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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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청년의 사려깊음이 우리에게 역사를 보존해 주었다는 사연 앞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감사와 더불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명하복의 강압적 분위기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이 설 틈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덕수궁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다음에 한국에 갈 때에는 덕수궁에 들려보고 싶습니다. 

--- by mAkaRIos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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