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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천 어린이집 CCTV 영상이 충격을 주네요.
아이를 한 펀치로 날려버리는 보육교사라니... 만화 캐릭터도 아니고. 어떻게 어린 아이를 상대로 그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건지? 그 정신세계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가진 악함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우리에게도 아래와 같은 광고판이 필요한 걸까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탄성을 지르다가도, 이런 광고판이 필요해진 세상에 산다는 것이 슬퍼지는 오후입니다. 참말로...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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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원세훈 전(前) 국정원장에 대하여 선거법위반에 대한 무죄판결이 났다.
대한민국 사법부에게는 수치스러운 판결이다. 
판결문은 법의 적용에 대한 논리가 그 생명인데,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확실하지만 선거개입은 입증될 수 없기에 무죄라는 것은 그야말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법원 내부의 비판이 당연히 나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는 12일 오전 7시께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이를 '지록위마'라고 꼬집었다.

개인적으로 보관하기 위하여 이 글을 블로그에 담아 놓는다.


법치주의는 죽었다

수원지법 성남지법


부장판사 김 동 진


판사와 검사의 책무는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은 정권은 때때로 힘에 의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추구한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국가의 핵심기능을 좌지우지하고,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마음 내키는 대로 통치를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아무리 다수결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정신의 한 축인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유린하는 것이다.


헌법이 판사와 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서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하라”고 하는 준엄한 책무를 양 어깨에 지운 것은, 판사와 검사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지 아니한 채 묵묵히 ‘정의실현(正義實現)’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전제돼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판사와 검사에게 ‘신뢰(信賴)’를 부여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들의 심연(深淵)에 있는 출세욕, 재물욕, 공명심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심(私心)을 떨쳐 버려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2013년 9월부터 올해의 이 순간까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 정권은 ‘법치정치’가 아니라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한 소수의 양심적인 검사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관하여 의연하게 꿋꿋한 수사를 진행하였던 전임 검찰총장은 사생활의 스캔들이 꼬투리가 되어 정권에 의하여 축출되었다. 2013년 9월부터 10월까지 검사들을 비롯한 모든 법조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밝히려고 했던 검사들은 모두 쫓겨났고, 오히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덮으려는 입장의 공안부 소속 검사들이 국정원 댓글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이 한 편의 ‘쇼(show)’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각종 언론은 이런 상황을 옹호하면서 나팔수 역할을 하였다. 내가 바라본 2013년의 가을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기 시작한 암울한 시기였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다. 당연히 구조됐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었다. 인명구조를 담당한 해경의 대응에 직무유기적인 형사책임의 요소가 있었으므로, 마땅히 그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언론보도가 이루어져야 했고, 또한 검찰이 선장과 선원 등을 수사함에 있어서도 해경의 구조 담당자들을 아울러 수사했어야 했다.


그런데 법치주의 정신에 입각해 보면 당연히 진행돼야 할 이러한 과정들이 정권에 의하여 차단이 되었고, 국민들은 현 정권이 뭔가를 은폐한다는 의혹을 품은 가운데 사태가 커지는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에서 현 정권이 승리하면서 이런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아직도 민간기구(특별조사위원회)에게 수사권과 공소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어제 국정원 댓글 판결을 선고하였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개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개입’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공직선거에 관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위법적인 개입행위에 관하여 말로는 엄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동기참작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슬쩍 집행유예로 끝내 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판결문을 찾아 출력한 다음 퇴근시간 이후에 사무실에서 정독을 하였다. 판결문은 204쪽에 걸친 장문(長文)인데, 주로 개별적인 증거들의 취사선택에 관하여 장황하게 적혀 있고, 행위책임을 강조한다는 원론적인 선언이 군데군데 눈에 띄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선거개입의 목적』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공직선거법위반죄를 무죄로 선고하였다.


판결문을 모두 읽은 후에, 나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1) 2012년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인데, 원세훈 국정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도대체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가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일까? ... 이것은 궤변이다!


(2) 판결문의 표현을 떠나서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독백을 할 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까?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니...』 허허~~ 헛웃음이 나온다.


(3) 재판장은 판결의 결론을 왜 이렇게 내렸을까? 국정원법위반죄가 유죄임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으니, 실질적인 처벌은 없는 셈이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에 국정원장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리고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 것인가? 이 판결은 ‘정의(正意)’를 위한 판결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이 가득한 판결일까? ...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다시 돌아와서, 판사님들과 법원 가족들에게 고사 성어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국의 고사 성어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시황이 죽은 후 환관 조고는 권력을 잡고서 허수아비 왕 호해에게 사슴(鹿)을 바치면서 "말(馬)입니다."라고 말했다. 왕인 호해는 "왜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합니까?"라고 말하며 신하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대부분의 신하들이 조고의 편을 들면서 "말이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단지, 몇 명의 신하들만이 "말이 아니라 사슴입니다."라고 진실을 말했는데, 환관 조고는 나중에 진실을 말했던 그 신하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한 마디로 말하겠다. 나는 어제 있었던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선거에 대하여 불법적인 개입행위를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自明)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 담당 재판부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2013년에 형사정책연구원이 성인남녀 17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3%가 “돈과 권력이 많으면 법을 위반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법(法)”을 꼽은 응답자는 43%로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3년 전에 전국의 성인남녀 2937명을 대상으로 한 법률소비자연맹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2%가 “법을 지키면 손해”라고 대답해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4. 3. 26.자 세계일보 참조).


사법부가 국민들의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의 판결』을 할 때마다, 국민들은 절망한다. 지인들은 나에게 말하기를 “제발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국민들은 더 큰 “뭔가”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제발 상식과 순리가 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논어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신뢰가 없는 곳에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 여당/야당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 누군가 “편 가르기” 풍조에 입각하여 나를 향하여 “좌익판사”라고 매도한다면, 그러한 편견은 정중히 사양하겠다. 나는 판사로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몰락에 관하여 말하고자 할 뿐이다. ... 법치주의 수호는 판사에게 주어진 헌법상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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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8일째 노숙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와,

.

양친 부모를 잃은 사람도, 남편을 잃은 사람도, 부인을 잃은 사람도 이르는 단어가 있지만 자식을 먼저 앞세운 사람을 일컫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 말조차 생기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걸 말로 형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새끼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 소나 아빠 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막 끊어질듯 웁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기억에는, 새끼 소를 팔았던 우리 삼손이, 동네 아저씨가 이렇게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더 정성껏 소죽을 끓였고,

영문도 몰랐던 동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그 소 앞에 가서 지푸라기라도 들고 뭐 먹이려고 했고,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고, 그 소 눈 오래 바라보면서 오래 어루만졌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새끼 왜 우냐고 말하는 이웃은 본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도 공감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을까? 왜 이 문제가 좌우 이념과 정치의 문제가 되었을까? 상식이 무너지더니, 이젠 도리(道理)마저 무너지고 있다.

동영상 : http://youtu.be/fZHn8-buqc4 (6분)


오디오 : http://youtu.be/Fzwig5Rvcps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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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는 게편인가?



김동호 목사님이 일본요한교회의 김규동 목사의 회개를 언급했다.
금요철야에 무릎 꿇고 앉아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장문의 글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대단히 격앙된 논조로 '회개'를 환영했다.
그런데 이런 '퍼포먼스'가 과연 회개일까? 아니면 사건을 무마하고 없던 일로 돌리기 위한 작업일까?

김동호 목사님 글에서도 언급했다. 
이 사건을 죽기살기로 방어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요한 교회에서 나왔다고. 그리고 오히려 상대방을 공격할 힘도 목사에게 있었다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대단하다는건가? 다행이라는건가?)

요한교회의 일탈은 이미 동경에서는 오래 묵은 문제였다.
단순히 노방전도의 강제성 때문만이 아니다. 대학 유학을 위해 온 청년들을 '사역'이라는 울타리로 가두어서 학업을 포기하고 '사역자'로 남게 하는 것이 그 교회의 전략이었다. 
심지어 사역자로 지목된 사람은 결혼도 함부로 못한다. 목사가 인정해주는 사람과만 사귈 수 있다. 안 그럴 경우, 교회에서 사역을 내려놓고 왕따를 당한다. 일종의 근신처분이다.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 순장이 찾아와서 월급의 십일조를 강제하기도 한다. 
이런 강제성이 먹혀들었던 이유는, 외국이라는 환경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학생이 언어도 서툴고, 환경도 낯설다. 더구나 일본은 유학생의 아르바이트가 허용되는 얼마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부유한 유학생이 아니라 정말 가난한 유학생이 많다. 그런 아이들이 유학 초기의 긴장 상태 속에서 거의 반항도 못하고 붙잡혔던 곳이 요한교회였다.

과거로만 한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 요한교회는 여행사를 운영하여 교인들의 항공권을 거래하고, 일본어학교를 통해 유학비자를 해결해 주고, 기숙사를 만들어서 학생들을 단속하고 있다. 심지어 핸드폰 개통이나 한국의 070 전화 판매도 교회의 인프라를 통해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인들의 숫자(규모)를 가지고 감당하는 일이다.

김동호 목사님이 코스타 강사로 어떤 교제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관계가 점잖은 것이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유학생 사회에서는, 이미 10년이 넘도록 요한교회의 횡포와 무성한 이탈의 소문으로 시끄러워 왔다.
심지어 한국에서 유학원이 유학생을 모집하여 동경으로 보낼 때는, "요한(요도바시)교회를 조심하라. 거기 걸리면 유학생활이 끝장난다."라는 경고를 했다고 할 정도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 코스타의 주최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규모와 동원하는 인력의 힘이었다. 건전한 신학이나, 교회의 신앙적인 색깔은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애큐매니칼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기독교가 미미한 일본에서 분리가 아니라 연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얼마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요한교회를 끌어 안았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이 넘은 관계 속에서도 '문제'를 전혀 몰랐다니... 이건 놀라운 맹신이 아닌가! 
이제라도 무시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반성해야 할 코스타의 목사가, 아직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은, 아직도 무시무시한 힘과 권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다른 목사의 눈물 한 방울에 이토록 호응하는 것은 당혹스럽다.
그렇다면 그 여성 사역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하며 흘렸던 눈물의 값은 어디 있나? 그 눈물을 너무 헐값으로 퉁치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요한교회의 문제는, 신학의 부재와 신앙의 탈이성, 그리고 교우들을 목사의 홍위병으로 훈련했다는 것, 목사가 과도한 권력을 독점하는 점, 교회의 비지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점... 등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그 열매로 나타난 성추행 사건을 우발적인 일탈로 보려는 관점이 우려스럽다.
제대로 된 회개를 보여주기를 나 또한 바란다. 그리고 기도하겠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갈 길이 멀고, 드러난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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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재합의를 거부하며 

대통령과 국회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가족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실종자 10명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 하고 있고,

유민이 아빠는 사십일 가까이 죽음의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 가족들 보고 정치의 한가운데에서 흥정을 하라고 강요합니다.


우리는 지치고 고통스러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약 130일을 버텨왔습니다.

우리 아이들, 우리 가족들은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야 했습니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앞으로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청와대 국회 광화문 등지에서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쳤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곳곳을 돌며 400만의 서명을 모아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입법 청원하였습니다. 


5월 16일 청와대에서 우리 가족들을 만나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국회에서 애끓는 유족 여러분들의 마음이 잘 반영이 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고, 5월 19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눈물로써 했던 대통령의 약속을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조사에서 요청된 자료의 5% 미만 만을 공개하고, 청와대가 재난컨트롤타워는 아니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대통령을 만나고자 하는 가족들의 절규에 답하지 않고 청와대 2000미터 밖에서 가족들을 가로막음으로써 답했습니다. 


4월 29일 본회의 결의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통해 사고의 원인과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또한 정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된 불법 행위이자 전원과 직무를 태만히 한 공직자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촉구"하였던 국회의 약속을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참사 초기 그 어떠한 적극적인 역할도 전혀 하지 않았던 국회는 즉각적인 진도 방문, 관련 모든 증인의 채택, 가족들과의 협의체 구성 등 가족들과의 거의 모든 약속을 어기고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이끌었고, 4.16 참사 특별법안 논의에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국민의 생명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는 것으로 답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세월호 피로감'을 이야기하며 이제 그만 죽은 넋들을 놔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지치고 힘든 우리들은 여기서 주저앉는 것이 죽은 넋들을 두 번 죽이고,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죽음들에 눈 감는 것임을 압니다. 


어떤 분들은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월호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민생고, 생계고에 시달려왔고 시달리고 있는 우리들은 세월호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만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들이 '시체 장사'를 하고 있다느니 몇십억을 받았다느니하며 마타도 어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배보상 측면에서는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근거없이 돈 이야기를 꺼내는 분들은  진상규명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국회가 그 동안 '세월호 피로감', 경제 활성화, 무리한 배보상 이야기를 퍼뜨리는 데 앞장서거나 우리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에 침묵하여 왔음을. 


우리는 단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4.16 참사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고 국민의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나라가 건설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책임 있는 모든 사람과 기관이 조사되어야 하고, 관련 있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며,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독립성, 전문성, 강제적 권한, 다양한 조사 방법,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갖춘 위원회가 필요하고 강제적 권한의 핵심은 기소권과 수사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앞으로 유사한 참사를 예방하고, 설사 참사가 발생하더라도 국민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길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과 야당, 정부의 주장 혹은 우리 특별법안에 대한 비난들 속에서 더 철저한 진상규명은 어떻게 가능한지, 국민을 더 살릴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특별법안의 상당 부분을 후퇴시킨 후 이제 와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다는 잘 이해하기도 힘든 정치기술적 언어에 답하라고, 동의하라고 강요합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비겁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가족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답해야 할 사람은 우리들이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 국회와 정부입니다. 


하나. 대통령과 청와대는 가족들을 직접 만나 지난 3개월 동안 대통령의 약속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답해야 합니다. 만약 지켜지지 않았다면 사과와 함께 즉각적인 약속 이행에 나서야 합니다. 


둘. 국회는, 여당과 야당은 함께 본인들의 논의와 합의가 가족들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하여 왔는지를 밝히고, 본인들의 논의와 합의 내용이 가족들의 특별법안에 비해 어떻게 더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셋. 국정조사 과정 등에서 수차례 약속했던 여당, 야당, 4.16 참사 피해 가족들간의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3자 협의체를 즉각 구성, 가동하고, 국정조사, 특별법 제정, 특별법상  4.16참사 특별위원회 구성 및 운영, 진상조사, 수사와 기소 등의 전반적인 활동에서 긴밀하게 협력하여야 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다림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2014년 8월 20일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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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 저희의 이 글을 꼭 읽어주십시오.


‘세월’은 한국말로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배가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가족들 시간은 흐르지 못하고 멈추었습니다.


글을 쓰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죽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부모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한 숨을 쉴 때마다 “보고 싶다” 한탄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자식은 이름밖에 부를 수 없습니다. 딱 한번만이라도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바닷물에 불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시신이 상할까봐 제대로 안아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실종되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10명이 됩니다. 우리는 죽은 아이라도 찾았지만 그들은 DNA확인이 아니고서는 알아볼 수도 없게 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 4명이 배를 탔다가, 엄마는 시신으로 돌아오고, 아빠와 7살 아들은 아직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해, 5살 딸만 살아남은 가족도 있습니다. 5살 딸은 “엄마 아빠, 오빠가 나만 두고 이사 갔다”고 울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이었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화재 현장에 직접 달려가 구조 활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소방차보다 먼저 달려가 법원이 판결 내렸을 때도 어영부영 넘어간 정부와 검찰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화재의 숨은 원인이 드러났고 피의자들은 호된 심판을 받아야 했다 들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참사 이후 진도 팽목항과 안산에서 매일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수 백 명 신부님 수녀님이 광화문 광장에서 가족들과 시민들과 함께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노력이 쓸모 없도록 한국 정부와 수사기관, 사법기관과 국회, 심지어 언론은 가족들 요구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우리 요구는 단순합니다. 가족들이 죽어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왜 위험한 배를 바다에 띄웠는지,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왜 방송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고, 해양경찰들이 제대로 구조도 하지 않는데 대대적인 구조작업 중이라 거짓 방송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진실을 밝혀주겠다 했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가족을 무시합니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더니 청와대 가는 길을 경찰이 막습니다. 두려운 것이 있나 봅니다.


대통령은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행적이 불분명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 가족들이 죽어가던…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은 그조차 알려 하지 말라 합니다.


참사를 조사하는 책임 여당 국회의원은 가족을 모욕하는 문자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항의하는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러 크게 다치고 있습니다. 사고에는 무능했던 정부와 여당, 공권력은 우리 가족들을 괴롭히기만 할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온통 거짓말과 기만으로 일관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가족들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기소권, 수사권이 있는 조사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은 돈을 달라는 것도, 특혜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부정부패의 원인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죽어간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여 참사의 원인이 된 부정부패가 바로잡혀 다시는 우리처럼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 이가 없도록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 해에도 몇 개씩 벌어지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그걸 잘 아는 국민들이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에서 힘없는 국민들만이 우리에게 ‘국가’였습니다.


죽은 아이들 중에는 교황님을 존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다 생을 마감한 이태석 신부님처럼 되고 싶다고 한 박성호가 그 아이입니다. 성인 집안의 김웅기도 예비사제였습니다. 장준형 학생도 사제의 꿈을 꾸었습니다.


외동아들이었던 최성호, 엄마가 새로운 직장을 잡도록 같이 공부하자고 했던 건호도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이혼 이후 두 딸을 어렵게 키우던 유민아빠는 유민이를 잃고서 30일 넘는 단식으로 온 몸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없는 보석 같은 내 아이들, 눈앞에서 잃어버린 아이들, 교황님 우리 가족의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왜 죽었는지는 밝혀야 죽어서라도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겠습니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데,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 그런지 꿈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보고 싶어서 아이들이 입던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다니지만 그마저도 다 낡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존한 아이들은 자기들이 친구를 두고 왔다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생활했던 교실에 찾아와 책상 줄을 맞추고,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같은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세월호 이후 멈춘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 하루하루가 죽음 같은 고통이고 뼈가 아프고 심장이 녹습니다.


저희는 우리 아이들이 다시는 못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말라 기도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하고 살려내지 못해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우리 자신들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망가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과 싸우려고 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만이 아닌 안전한 나라를 위한 국민 모두의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교황님. 진실을 찾는 길만이 저희들에게 멈춘 시간이 흐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죽어간 아이들이 좋은 곳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도록 살펴주십시오. 저희가 이 모든 부정부패와 냉담한 현실 속에서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세월호 가족 일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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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종의 청와대 연설문 ] 



대통령님,

존경하는 정부 공직자들과 외교관 여러분,

친애하는 벗들이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어서, 또 무엇보다 한국의 국민들과 그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 민족의 유산은 오랜 세월 폭력과 박해와 전쟁의 시련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대낮의 열기와 한밤의 어둠은, 정의와 평화와 일치를 향한 불멸의 희망을 품고 있는 아침의 고요함에 언제나 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희망은 얼마나 위대한 선물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이 목표들을, 한국 국민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세계를 위해, 결코 좌절하지 말고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통령님과 정부 요인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외교관 여러분에게, 국가 공직자들과 군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저의 방한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금방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의 한국 방문은 제6차 아시아 청년 대회를 계기로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 대회는 이 광대한 아시아 대륙에서 모인 가톨릭 청년들이 그들의 공통 신앙을 경축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또한 이번 방한 중에 그리스도 신앙을 위하여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품에 올릴 것입니다. 이 두 행사는 서로를 보완합니다. 한국의 문화는 연장자들의 고유한 품위와 지혜를 잘 이해하며, 사회 안에서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우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한 선조들을 공경합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른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사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은 선조들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젊은이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젊은이들은 과거의 전통과 유산을 물려받아 현재의 도전들에 적용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청년 대회와 같이 젊은이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는, 우리 모두가 그들의 희망과 관심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다음 세대에 얼마나 잘 전해 주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세상과 사회를 그들에게 물려주려고 준비하고 있는지 성찰하라는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평화라는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찰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부재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이 땅 한국에서는, 이러한 호소가 더욱 절실하게 들릴 것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화해와 안정을 위하여 기울여 온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할 뿐입니다. 그러한 노력만이 지속적인 평화로 가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입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특별히 여러분 중에서 인내를 요구하는 외교 활동에 종사하여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더 큰 도전입니다. 이는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입니다.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 참조)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정의는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의 토대를 건설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합니다. 우리 모두 평화 건설에 헌신하며,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우리의 결의를 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국가와 정치의 지도자로서 궁극적으로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더 나은 세상, 더 평화로운 세상, 정의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점점 더 세계화되는 세상 안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요한 사회 문제들이 있고,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 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이 나라가 앞장서 주기를 바랍니다. 연대의 세계화는 모든 인류 가족의 전인적인 발전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5년 전에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하시면서, "한국의 미래는 이 국민들 가운데 현명하고 덕망 있고 영적으로 깊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다."(1989년 10월 8일)는 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면서, 오늘 저는 한국 가톨릭 공동체가 이 나라의 삶에 온전히 참여하기를 계속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이바지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려는 정신이 자라나게 하여, 새로운 세대의 국민을 양성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고 자신의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전망으로 국가가 당면한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기꺼이 이바지할 준비를 갖출 것입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의 환영과 환대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특별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위대한 보화인 연장자들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우리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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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시스대학 인문과정,

인간에게 올바른 지식을 주면 그 삶은 변한다. 그래서 철학자는 '네 자신을 알라!'고 일갈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 지식의 선량함이 의심 받고 있다.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악랄하고 교활해진 시대... 어쩌면 지식의 순화는, 높은 지능의 집단이 아니라 바로 이런 선생님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 찾아가 뵙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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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해외직구시 주의!!! 고객을 호구로 보는 외환카드

해외결제 취소시 외환카드가 수수료 먹튀

"신청하지 않으면 돌려주지 않는다"

 

다년간 해외직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일이 많았지만 이렇게 얼척없기는 처음임.

 

결론부터 말해서, 외환카드 고객상담센터 김성은 대리/주임에 의하면

 

외환카드는 해외 승인 건에 대한 취소처리는 무.조.건.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고객 통장으로 해당금액을 환급 후 카드사에서 청구하는 시스템

당일취소건 뭐건 얄짤 없음.

 

해외 결제시 1~1.5%의 카드 이용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카드사에서 통장으로 환급해 주는 금액은 수수료를 제외한 원금뿐

 

 

  

글쓴이의 경우 수수료에 환율 차액해서 대략 1만5000원 정도를 외환카드에 떼임.

 

3 그렇다면 수수료 차익 발생분은?

이의신청하는 고객에 한해서만 되돌려주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외환카드에서 이득으로 취함

 

 

※동일한 건에서 삼성카드의 처리

- 해당 해외 승인 내역은 익월 청구 건이었으므로 전표 취소 처리,

수수료/환율에 따른 차액 발생 없음

(단, 당월 청구 건이라면 통장 환급 후 청구. 이게 누가봐도 상식적인 프로세스 아님?)

 

 


 

사건의 발단은 7월17일 저녁 해외 사이트에서 결제한 2건의 결제 취소였음.

갖고 싶던 제품이 세일가에 떠서 친구와 하나씩 사게 되었음.

글쓴이가 미리 다 결제하기로 했고 1건은 삼성으로 1건은 외환으로 처리함.

18일 새벽 2시22분 경, 재고가 없어 주문 및 결제 취소 처리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음.

잘 처리될 걸로 생각하고 있었음. 얼마나 간단함? 그냥 결제 취소일 뿐인데.

 

그.런.데. 24일 목요일 체크카드 결제문자의 통장잔액이 이상하게 늘어나 있는 거임.

계좌 거래 내역을 조회해봄. '외환환급대금' 명목으로 140여 만원이 들어와 있었음.

무슨 환급인가 하여 외환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카드이용내역을 조회해봄.

 

 

 

나에게 청구할 금액과 환금한 금액이 10.76달러 차이가 남을 발견.

기분이 요상해서 같은 건을 결제하고 똑같이 취소처리된 삼성카드도 조회를 해봄.

깔끔 떨어지게, 상식적으로 전표취소 처리가 되어 있었음.

업무시간이 끝난 뒤였으므로 익일에 상담원과 통화해보기로 하고 일단 퇴근.

 

25일 오전 9시40분 경 외환카드 상담원과 연결 시도.

 

<1번 상담원과의 통화 대강>

나: 17일 해외결제취소 건에 문의사항이 있다. 왜 통장으로 환급처리가 되었는가?

상담원1: 해외결제취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a전표 취소 b통장환급 후 청구. 고객님의 경우 통장환급 후 청구로 진행되었다.

나: a, b의 방법을 누가 선택해 결정하는 거냐?

상담원: 잘 모르겠다. 확인해보겠다.

나: 좋다, 그럼 환급금과 청구액의 금액차이는 왜 나느냐?

상담원1: 잘 모르겠다. 청구금액에 이의가 있을 경우 이의신청을 하면 된다. 이의신청 원하느냐?

나: 일단 이의신청해달라. 그리고 결제취소방법에 대한 건은 알아보고 연락달라.

 

오전 10시20분 경 다른 상담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옴.

 

<2번 상담원과의 통화 대강>

상담원2: 해외결제취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a전표 취소 b통장환급 후 청구. 고객님의 경우 통장환급 후 청구로 진행되었다.

나: 그럼 a, b의 방법 중 외환카드에서 임의로 결정해서 환급처리한 거냐?

상담원2: 맞다

나: 사이트 확인해보니 전표 미매입 상태인데, 전표취소가 가능한데 왜 통장환급했나?

상담원2: 사이트 상에는 그렇게 나와있지만, 고객님의 경우 '별건매입'으로 가맹점(파페치) 측에서 매입처리를 빠르게 진행하여

카드 한도액에 잡히게 되었고 할 수 없이 통장환급하게 된 것이다.

나: 그럼 금액차이는 왜 나느냐?

상담원2: 날짜에 따른 환율변동 때문인데... 이의신청을 하면 되고...

나: 내가 왜 카드취소 하나 가지고 아침내내 전화통 붙들고 이의신청하고 번거롭게 이래야 하나?

외환카드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다. 상담원 당신은 해외결제취소 업무 담당자도 아니고 권한도 없으니 본사 담당자 연결해라.

상담원2: 그럼 다른 상담원을 연결...

나: 됐고 본사 직원 바꿔라.

상담원2: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다.

 

글쓴이는 2번 상담원과의 통화 후 사실 확인을 위해 삼성카드 상담원에게 전화를 검.

 

<삼성카드 상담원과 통화 대강>

나: 17일 해외결제취소 건에 문의사항이 있다. 이 건이 '별건매입' 처리되었다고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전표취소 처리가 되었는가?

삼성상담원: 고객님의 카드대금 결제일자가 내일(25일)이므로 7월 청구 건이면 통장환급 후 청구 방식으로 진행이 되지만

8월 청구 건이기 때문에 전표취소 처리가 되었다.

나: 그렇다면 카드 결제 취소에 어떤 제약사항이 있는가? 얼마의 시일이 지난 후에는 전표취소가 안 되고 통장환급 방식으로만 해야한다거나..

삼성상담원: 그런 제약은 없다. 가맹점측에서 요청하면 카드사는 언제든지 전표취소 처리할 수 있다.

 

오전 11시28분 경 3번 상담원(김성은 대리/주임) 전화 옴.

 

<외환카드 고객상담센터 김성은 대리/주임과 통화 대강>

김성은 주임: 안녕하십니까. 외환카드 고객상담센터 김성은 대리 블라블라블라.

고객님이 문의하신 부분에 대하여 안내드리자면 블라블라블라.

나:  해외결제취소 a, b의 방법 중 외환카드에서 임의로 결정해서 환급처리한 거라는데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하느냐?

나는 전표취소 방법으로 진행하길 원한다.

김성은 주임: 그건 우리 직원이 잘못 이야기한 거다.

담당자와 통화하여 확인했는데 외환카드에서는 해외결제 건에 관하여 전표취소처리는 하지 않고 있다.

고객님이 원하는 사항은 반영이 어렵다.

나: 말이 되냐?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무조건 통장환급이냐?

김성은 주임: 확인했다. 맞다.

나: 그렇다면 그런 사항이 카드 약관에 나타나 있느냐?

김성은 주임: 없다.

나: 홈페이지에 따로 공고된 사항은 있느냐?

김성은 주임: 없다.

나: 그럼 내가 뭘 근거로 수긍할 수 있느냐? 업무 프로세스나 메뉴얼이 있을 거 아니냐? 이해가 안 간다. 7월 청구 건도 아니고 8월 청구 건을 왜 이런식으로 처리하나?

내가 카드깡하는 것도 아니고 매우 불쾌하고 짜증스럽다.

김성은 주임: 있으나 '내부용'이라 확인시켜줄 수 없다.

나: 그럼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믿고 수긍하느냐? 다른 카드로 같은 가맹점에서 같은 금액으로 같은 날짜에 똑같이 취소했는데 전표취소처리 되었다.

김성은 주임: 그건 다른 카드사고, 고객님은 외환카드 고객이니까 외환카드의 시스템을 따라주셔야한다.

나: 됐다, 상담원 말고 본사 담당자 연결해라. 해외결제 건 취소한 직원이 있을 거 아니냐?

김성은 주임: 시스템으로 전산상 처리되는 거기 때문에 담당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담당자랑 통화로 확인했다더니? 앞뒤가 맞지 않는 주먹구구식 고객 응대)

 

나: 그럼 금액차이는 왜 나냐?

김성은 주임: 환율변동에 따라서 일부 금액 차이가 날 수 있다. 고객님의 경우 매출전표는 7/18에, 취소전표는 7/21에 접수되었다.

나: 웃기지 마라. 청구 금액이랑 환급금액이 10달러가 넘게 나는데, 이건 뭐냐?

김성은 주임: 그건 카드사 이용 수수료고 이의신청을 통해서 환급받을 수 있다.

나: 그럼 이의신청 안 하는 사람은 못 돌려 받는 거냐?

김성은 주임: 그렇다.

나: 외환카드는 그런 식으로 수수료 장사하려고 일괄적으로 통장환급처리 하나?

김성은 주임: ...

나: 그럼, 외환카드는 해외결제 건에 대한 취소는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무조건 통장환급 방식으로 처리되고

환급시 발생하는 수수료 차액은 고객이 이의신청하지 않는 한 지급하지 않으며

지급되지 않은 수수료 차액은 외환카드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맞느냐?

김성은 주임: 맞다.

나: 이름이랑 소속 부서 다시 확인하겠다.

김성은 주임: 외환카드 고객상담센터 김성은 대리다.

 

 해외결제취소 방법에 대한 안내도 직원마다 답변이 다 다름. 뭐가 이따위임? 

1번 상담원 / a전표취소 b통장환급의 두 가지가 있는데 누가 결정하는지 모름

2번 상담원 / a, b 중 선택인데 외환카드가 임의로 처리함

3번 상담원-김성은 대리 / 앞에 직원들이 잘못 말한 거임. b밖에 없음

 

외환카드를 매우 불신하게 된 글쓴이는 김성은 대리와의 통화종료 후 삼성카드에 매출전표와 취소전표 매입 날짜 확인을 요청함.

 

 

 

 

매출전표 취소전표 모두 21일에 접수되었다는 답변을 받음.

 

참고로 글쓴이가 가맹점(파페치)로부터 취소 메일을 받은 시간은 아래와 같음.

두 건의 주문 취소와 환불 처리가 동시에 진행되었음.

그런데 어찌하여 카드사마다 이렇게 취소 처리에 큰 차이가 나는지 의문임. 

 

 

 

일반인이 생각했을 때 '외환'은 '삼성''국민''신한''현대' 카드보다 외국환의 환율에 더 민감하고 전문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

'한국외환은행법을 기초로 세워진 외환관리 전문 금융업체'인 '외환外換'은행 산하 외환카드 아니겠음? (분사가 진행 중이지만) 직원들이 외국환 시세에 더 전문적일 거라는 기대감을 갖는 게 지나친 거임?

그런 기대감을 이용하여 해외결제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이따위 환차익 및 수수료 장사나 해먹으려는 심보라니 너무 괘씸함.

 

심지어 1978년 국내 은행으로는 최초로 신용카드(비자카드) 업무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카드 업무 처리가 이따위임? 회사가 체계도 없고 업무 매뉴얼도 없고 해당 업무 담당자도 없대고 외환카드 쓰니까 외환카드를 따르라며 될대로 되라식으로 뻗대고.

 

글쓴이가 같은 날짜에 같은 금액으로 같은 가맹점에서 다른 카드로 결제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갔을 거고, 그러면 외환은행은 가만히 앉아서 환급되지 않은 수수료를 떼어 먹는 거임.

심지어 저 금액에 대한 이의 신청은, 약관을 확인해보니 14일 이내에 한 것만 유효함.

본래 글쓴이가 7월17일에 결제한 건은 8월25일에 청구되는 것이었고, 그때 가서 청구서 확인해봐야 내 돈은 이미 외환카드가 먹고 게임 끝.

 

연회비 받아 쳐먹으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은 안 하고, 고객 돈 떼어먹을 궁리나 하는 외환카드는 각성하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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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pann.nate.com/talk/32360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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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의사(醫師, doctor)


흔히 히포크라테스를 의사들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약 460~370년에 그리스에 살았던 히포크라테스에 대하여 많이 알려진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철학과 마술에서 의학을 분류하여 자신의 학파를 만들었으며, 지금까지도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남겼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그는 의사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가지는 의미는, 의사가 의료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단순한 장사꾼이나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특별한' 조력자라고 그 정체성을 정의 내린 것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의사는 아무리 환자가 원하더라도, 아무리 큰 보상이 약속되었더라도 환자의 심신에 독이 되는 것을 주지 않으며, 상해를 입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거니와 의사들은, 이 선서 앞에 부끄러웠다. 얼마나 많은 권력자들이 의사의 손에 의하여 독살 되었는지 역사책을 살펴보라. 

그리고 지금도 의사들은 싸우고 있다. 더 유명하고, 더 부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했던 선서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될 것인지... 이 시대와 사회는 의사들에게 싸움을 강요하고 있으며, 때문에 의사들이 자신들의 선서를 계승하고 지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환자가 원해도 환자에게 독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 그렇다면 의사는 무엇을 돕고 조력하는 것인가? 

의사가 독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당연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분명 가볍지 않은 의미가 숨어 있다.

물론 환자가 병을 낫기 원할 때, 의사는 환자를 돕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병이 불가항력적이라거나, 혹은 너무 고통이 크다거나, 혹은 심각한 장애를 주어서 환자에게 더이상 그런 장애를 가지고 살고 싶지 않게 만든다면,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요즘 사회적 고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안락사'의 문제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근본적으로 이런 의사의 역할, 곧 '죽음'의 편안한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는 '환자'의 조력자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런 경우도 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의 경우, 이 정신적 고통은 끝없이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나머지, 환자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시도한다. 정말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질병에 고통하는 환자의 의지는 존중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무시되어야 하는가? 의사는 환자를 돕는 사람인가? 환자의 의지에 반하는 의사의 행위가 정말 환자를 돕는 것인가?


깊이 생각하면, 의사는 환자의 의지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돕는 사람이다. 

스스로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그것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의사는 '생명' 자체를 숭고하게 여기고 그 생명이 존속하려는 의지를 돕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조차, 몸은 살려고 한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고 하여서, 몸에 벤 상처가 방치되는 것이 아니다. 몸은 필사적으로 피를 멈추게 하고, 찢어진 상처를 회복하려고 한다. 전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말이다. 

의사는 이런 몸의 기능, 그 본질적인 생명의 의지를 알고, 믿고, 조력하는 것이다. 때문에 의사는 때로 환자의 의지와 충돌을 하면서까지, 심지어 사회적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생명 자체를 지키려고 한다.

연쇄살인마도 응급실에 실려오면 의사는 최선을 다해 그를 치료한다. 아무리 불법한 사람이라도, 의사는 환자의 신상과 관련된 비밀을 유지하고 누설하지 않는다. 내적 갈등이 수반되겠지만,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숙명이다.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놓고 그것을 위해 자기를 던질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기술자일 뿐이지 '의사'는 아닌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의사'는 특별하다. 존경 받아 마땅하다. 굳이 직업 소명설을 불러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직업이 '성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기독교적 가치관에 있어, '생명'은 곧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은총을 받들고 섬기는 것이 어찌 성직이 아니겠는가!

다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시대에 과연 '의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건강한 전통이 세워지고 있는가에 대하여는 우려가 많다. 많은 자들이 각기 제 길로 갔다. 과도한 명성과 지나친 부를 좇아, 심지어는 권력을 얻기 위해 '생명'에 대한 본래의 각오를 버렸다.

흰 가운은 작업복이 아니다. 그것은 무균의 각오이다. 환자를 위해 결백한 자기를 유지하고 관리하겠다는 다짐이 그 복식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어찌 현미경에 보이는 세균만 무섭겠는가?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탐욕의 세균과 바이러스는 더 끔찍한 재앙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의사가 금력의 앞잡이가 되고 권력의 시종이 될 때에, 그야말로 시대는 암담하다. 그것은 약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며 근본적인 신뢰가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다운 의사들을 존경한다. 더불어 변절하는 의사들에게 부탁한다. 그러지 마시라. 제발 '생명'의 수호자와 조력자로 남아 주시라. 그대들의 성역을 배반하지 마시라. 배 고프다고 환자의 등을 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양아치나 할 일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그대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 의사가 아니던가!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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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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