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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4 소통하는 사람이 되려면
  2. 2013.03.10 귀 뚫린 종의 사명




2013-11-24 목양칼럼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간단하고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일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럴 수가 없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됩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에 스스로 묶인 사람들은, 이런 차이를 넘어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지닌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날 때까지 늘 비판과 불평을 멈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만 옳고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너무하거나 모자란 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고독감이 찾아옵니다.

이런 사람에게도 물론 친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친구가 아니라 그의 친구일 뿐입니다. 그가 포용력이 있고 친화력이 깊어 나와 친구가 된 것이지 내가 잘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묶인 사람들은 이 점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항상 우주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 제일 중요한 역량은 ‘공감’입니다. 

공감이 있어야 소통이 일어납니다. 소통이 되어야 비로소 사귀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감이란, 상대방의 기분과 느낌, 더 나아가서는 그 가치관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텔레파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과 관찰이 근간이 되고, 그 위에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깊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말하는 동안, 상대방의 눈빛을 살피고 그 기분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눈치만 없는 것이 아니라 배려심도 없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가 한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실례가 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대범한 것이 아니라 사려 깊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태도들이 지나친 고뇌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들을 다 불편하게 해놓고 자기 뱃속만 편한 ‘아이’가 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적당한 선을 배워가게 되고, 그 배움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사귀는 자기만의 길을 여는 것입니다.

사람을 조심해서 다루십시오. 자기가 괜찮다고 그도 괜찮을 것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언제나 되도록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노력하십시오. 그 노력 만큼 바로 여러분의 능력이 자라날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복된 이유입니다...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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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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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0 목양칼럼 :: 


교회 직분의 가장 근간이 되는 ‘집사’라는 말은 히랍어 ‘디아코노스’에서 왔습니다.

그 어원의 의미는 ‘봉사하다, 섬기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몸을 써서 누군가를 수종드는 사람으로 종을 뜻하지만, 단순한 종이 아니라 주인이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종을 뜻합니다. 때문에 그 섬김 또한 강제적인 노역이 아니라, 바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는 ‘귀 뚫린 종’이라는 특별한 종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에서는, 본래 희년이 오면 모든 종들이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은 주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주어진 자유의 기회를 반납하고 계속 종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그럴 경우, 주인은 종을 데려다가 그 집 문이나 문설주에 세우고 귀를 뚫어 ‘귀 뚫린 종’으로 삼습니다. (출21:6. 신15:17)

아시겠지만, 히브리인들은 신명기 6장의 말씀을 따라 문과 문설주에 하나님의 말씀인 ‘레마’를 기록한 주머니를 달고 출입할 때마다 경배를 드렸습니다. 때문에 그 문이나 문설주에 종을 세워 ‘귀를 뚫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엄숙한 맹세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름은 ‘종’이로되 주인의 아들(가족)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러한 종은 실제로 주인과 한 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땅 위에서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종을 부리고 주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러한 주인의 권력은 종이라는 약자에게는 늘 버거운 멍에가 됩니다. 때문에 종은 주인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주종(主從)의 신분제도가 해소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얼마나 많이 분노하거나, 불평하거나, 미워합니까?

그런데 이 주인은 얼마나 지혜롭고 덕스러웠으면, 종이 영원히 상전으로 모시기를 원하겠습니까? 그 주인은 분명히 자신의 권력을 다 사용하지 않고 믿음으로 절제하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귀 뚫린 종’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한 재산의 증식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기쁨이요, 명예입니다. 사람들이 그 집을 드나들 때마다 문과 문설주에 생겨 있는 못자국을 보면서 이 사실을 기념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던 ‘레마’의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하나로 그 문에, 문설주에 기념되었던 것입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교회의 직분자들은, 마땅히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직분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평범해 보이는 의무야말로, 사실은 성경에서 가장 무겁고 하나님께서 매우 가치 있게 여기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마땅히 사람을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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