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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를 내부적으로 결속시키기 위하여 세상과 구별되는 울타리를 세워왔습니다.

그 울타리는 세속의 물결이 교회를 흔드는 것을 어느 정도 방어하였지만, 아울러 교회가 세상과 단절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울타리의 보호를 받는 동안, 단기적으로 교회는 더 세상에 대하여 면역을 얻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더라도 교회 내부에서 서로 격려하고 함께 하며 '핍박'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월의 나이테 속에서 교회는 점점 귀머거리가 되어 갔습니다. 귀를 닫고 자기들끼리만 살아가는 섬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세상을 잃고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는데, 그 말을 도대체 알아 듣지 못합니다. 

정당하지 못한 핍박과 정당한 비판의 경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모든 세상의 소리를 신앙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나오는 사탄의 말로 폄하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고 내지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교회가 개척의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성장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래도 목회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잘만 하더라!"는 말을 한다면, 나는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장사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우리는 한 교회를 성장시켜 세상의 명성을 얻으려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일꾼으로, 영적 추수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설사 내가 감당하는 전투에서 다소 이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시대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편이 실패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고민의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말미에서, 인도네시아 지역의 여러 섬들은 국지적 전투가 한창이었습니다. 더러는 주민이 살지 않는 무인도까지 일본군과 미군은 죽고 죽이는 치열한 희생 속에서 공방전을 계속 했습니다. 

미국의 전면적인 공세 속에서 본국과 연락이 두절된 일본군은 자체적으로 전쟁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보급 없이도 군수품을 조달하고, 내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전투를 감당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섬을 점령하거나 원주민을 포로로 잡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고보니, 이미 전쟁은 끝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했고, 일본의 군대는 해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침마다 일본의 천황이 있을 곳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자기들의 계급을 유지하며 그들만의 전쟁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저는 일부의 교회가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가득찬 예배당과 매주 걷어지는 연보, 돌아가는 조직, 계속되는 행사 속에서 세상을 보지도, 전체적인 교회와 자기들을 연결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매도 당하고 영적 전쟁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마치 나치의 선전영화처럼 자기들끼리 감동적인 영상을 찍고, 간증을 인쇄하고, 모임을 계속하면서 이러한 현실이 자기들의 교회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한 교회의 각 지체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몸이 수난을 겪는데 팔이 계속해서 즐겁기만 할 수 없고, 다리가 잘려 나가는데 입이 노래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시대의 변화는 각 교회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안깐힘을 써서 막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 교회'라는 연대감을 가지고 이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주시하며 싸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세웠던 담장을 이제는 스스로 허물면서 말입니다. 

과거에 교회가 어리던 시절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런 담장이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교회가 성장해서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만 한다면 교회는 소외되고 부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 미래를 예고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미 울타리의 해체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교회에서 사람들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즉각적인 결집와 해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곧 현대인의 특징이 될 것이고,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성도를 한 교회에 묶어두고 한 사람의 설교로만 양육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자기 교회의 담임 목사로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드라마를 보듯이 기독교방송을 보고, 어떤 설교자나 선교사의 팬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 성경을 해독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신학을 배우고 있으며, 종종 해외에 선교지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는 결국 개별적인 교회의 울타리를 해체할 것입니다. 울타리가 없는 새로운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존속할지, 과연 그 복음의 건전성을 여전히 지킬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회의 주권이 그리스도께 있으며, 때문에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합당한 은혜를 주셔서, 결국 교회를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가장 저항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목사'입니다.

목사들은 아직도 '담임목사'의 영향력이 자기 교우들에게 절대적이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 사람들을 자기 곁에만 묶어두려는 욕심도 보입니다. 

무너지는 울타리를 계속 보수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저항하려는 사람들도 역시 대부분 목사들입니다. 

이분들은 그것이 경건과 신앙의 보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결코 그런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자기 교회가 작다고 합시다. 그래서 보호와 특혜가 필요하다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교회는 하나입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자신이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어려운 목회를 하고 있더라도, 그 교회가 속한 시대, 곧 지금의 시기는 이미 교회가 장성한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소수의 신자들과 작은 장소를 사용한다고 하여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자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설교를 듣고, 신앙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빗겨갈 수 있겠습니까?

결국 목사는 더이상 어떤 개인적인 의도의 담장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담장 없는 교회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더이상 주석집에 나온 설교를 대충 짜집기해서 자기 설교로 삼는 스타일은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다운 목소리를 갖지 못한다면, 그런 목사는 점점 더 고립되거나 엄청나게 비교 당할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목사가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에, 그 목사를 중심하는 하는 교회 공동체도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수평이동에 대하여 말들이 많지만, 앞으로는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심지어 예배당을 찾아다니는 수평이동이 아니라, 이제는 간단한 클릭과 터치로 수평 이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변화에 저항하기 위하여 오프라인의 모임을 더 강화하고 지역사회와 연결된 활동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개교회의 노력은, 거대한 시대적 변화을 역행할 수는 없습니다.

문명은 더 빠른 교통과 더 폭넓은 정보망을 확충하고 있습니다. 아랍의 독재자들조차 소셜 네트워크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자기들의 고립된 세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교회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니 막을 수 없다면 그에 맞는 대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을 계속 써 볼 생각입니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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