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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재미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는 선언입니다.


천 년은 장구한 세월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이기도 합니다.
물론 숫자적으로 천 년의 세월도 무척 긴 시간이지만, 이를 넘어서 천 년은 그 이상의 세월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 년은 숫자 천(1000)이 아니라 무수한 세월로 대치될 수도 있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루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하루’라고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시간의 단위는 무척 현실적인 실존의 시간입니다. 즉, 사람의 시간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시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시간이 어떻게 존재했을까요?
네, 천문을 통해 존재했습니다. 보다 쉽게 말하면, 해와 달이 하루를 이루고, 여기에 별자리가 호응하며 일 년과 계절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은 아주 고대로 올라가도 세계의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떠했을까요?
이를테면, 해와 달이 생겨나기 이전에, 별이 탄생하기 이전에 시간은 존재했을까요?


물론 우주적인 발견을 통해, 그 어떤 ‘다른 시계(other clock)’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나타난 것은 반드시 그 기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시간이란, 그 기원의 바탕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존재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보다 근원적인 존재로 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드셨을까요?
네, 창세기의 서술로 보면 이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해와 달과 별의 조화를 통해 일자와 절기를 이루도록 명령하시는 장면이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창조의 시작부터 ‘시간’의 개념이 이미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러한 디자인으로부터 시간이 탄생했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 여러 번 확인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전쟁 중에 정오의 해를 멈추도록 기도했던 사실이나, 히스기야왕이 기도를 통해 해시계의 그림자를 뒤로 물러서게(시간이 꺼꾸로 흐르게) 했다는 기록은, ‘시간’이 곧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으며 순종한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이제 눈치를 채셨습니까?
하나님께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다거나 하루에도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는 단순한 구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간’의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드셨고, 통치하시기 때문에, 그 시간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입니다. 그의 연수는 성경에 969세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창조 과학자들은, 노아 홍수 이전에 주로 사람들이 오래 살았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본래 지구의 성층권에 물이 한 겹을 덮고 있어서 대부분의 자외선과 우주광선을 차단했는데, 노아의 홍수와 함께 하늘의 창문들이 열리면서 이 모든 물이 비로 쏟아져 사라졌고, 그래서 이후로는 자외선과 우주광선이 그대로 지구에 쏟아져 노화가 촉진되고 사람들의 수명이 극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름 설득력도 있고, 과학적이어서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사람들의 수명이 줄어든 이후에도,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 성경에는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80세에 출애굽을 시작했고, 120세가 되도록 건강해서 엄청난 공무를 수행하고 시력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갈렙 역시 80세에 전쟁을 수행할 건강과 체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세월이 빗겨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저 단지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건강한 정도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층권의 물이 사라져서 자외선과 우주광선이 지구에 들어와 수명이 단축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일도 하나님의 결정에서 벗어남이 없습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것이 우연히 대충 만들어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신비한 경륜과 능력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간섭하시고, 마침내 그 끝에 대해서도 결정하시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장수’를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장수는 길게 산다는 뜻 보다는 의미 있게 산다는 뜻이 훨씬 강합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서른 즈음의 나이에 십자가에 죽으셨고, 초대 교회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축복이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달력의 시간으로는 그들의 일생이 짧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이룬 의미의 시간으로 보았을 때에, 그들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진들이 천 년의 세월을 살았던 것보다 훨씬 값진 인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바탕에는, 모든 시간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타이밍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을 압축하셔서 더 치밀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더디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주장인지 알게 됩니다. 더디다, 빠르다는 것은 순전히 자기들의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느리고 빠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적당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시간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복종하는데, 빠르고 더딘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매우 심한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시작하면 처음 몇 개월 안에 결과가 나타나야 하고, 결혼을 하면 초장에 기선을 제압해야 하며, 심지어 사역에 대해서도 어떤 시한 안에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조금 심한 말로 하면, 지금의 시대에는 ‘시간의 노예들’이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어 돌아옵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능히 이루실 것을 사도는 확신합니다.
실체적 기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에, 시간의 개념은 중요하게 거론하지 않는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여기서 시간은 종(slave)일 뿐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120년 동안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들 때에 120년 동안 만들 것을 계획하고 시작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려주신 설계도를 따라, 산 위에 방주를 만들다 보니 세월이 흘러 120년이 지난 것입니다.
노아는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 하루가 모여 120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120년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계획된 타이밍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의 믿음에 있어, 이 시간에 대한 믿음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이제는 시간이 없다!
누가 그럽니까? 죽을 날을 알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설사 내가 다 끝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설사 내가 심기만 하고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인생을 살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결과야 천국에 가서 본다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조급함이 찾아온 것은, 아마도 죽음의 경험 이후였을 것입니다.
창조의 때에는 시간이 내 편이었는데, 죄를 짓고 추방된 이후에는 비로소 시간이 내 편이 아니라 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은 항상 초조하고, 그 초조함 속에서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 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땅을 정복하며 헛된 욕망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땅을 정복하고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영웅이 되어 삶의 모델로 등장하면서, 모든 인간은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신봉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면 시간이 우리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내 아이가 대학을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이, 내 아이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이 살아가는 것이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내 아이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다면, 조금 더디 보여도 결국에는 시간이 내 아이를 섬길 것이며, 마침내 축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판단을 버려야 합니다.
그저 나는 하루에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하루를 천 년의 조각으로 맞추어 가십니다. 그 매일매일의 삶에 중요한 원칙은, 내가 과연 하나님께 순종하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조급하지 마십시오. 조급함은 내 시간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시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시간은 적당합니다. 그야말로 적시(good timing)입니다.
하나님은 버릴 시간을 만드시지 않습니다. 시간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시간을 지배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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