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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09 내 인생의 비타민
  2. 2015.08.09 문제도 이땅에, 해답도 이땅에

 

2015-08-08 목양칼럼

 

한국에서 지인을 통해 비타민을 소개 받았다. 예전에도 간혹 비타민C를 먹기는 했었는데, 일일 권장량에 해당하는 1000mg에 해당하는 알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커피믹스와 같은 막대봉지에 들어 있고 '아스코르빈산'이라는 낯선 이름이다. 후에 인터넷을 통해 알아 보았더니, 이것이 99.9%의 비타민C 화합물이고, 특별히 영국산을 알아준다고 한다. 한 봉지가 3g인데, 이 양이면 약 3000mg에 해당한다고 한다.

과도하면 소변으로 다 배출되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단다. 몸의 독소를 해독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비타민이 필요하고, 특별히 피로감을 줄여주는 것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고용량의 비타민을 상복하는 것을 비타민요법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은, 이 비타민을 먹으면서 피로감이 정말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가벼워졌고, 잠을 줄이고도 덜 피곤하게 되었다. 효과를 보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더 챙겨먹게 된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뭔가 덜 건강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한국 속담에 "맛을 봐야 맛을 안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의 반복 같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과 같이 직접적 경험이 곧 확실한 지식의 습득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무리 설명하면 무엇하겠는가? 직접 먹고, 맛을 보고, 효과를 봐야 비로소 사람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게는 비타민 만큼이나 너무 확실한 신앙의 경험들이 적지 않다. 어려서부터 신앙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라오며 본 것이 그러하고, 일찍 목사가 되어 만나고, 듣고, 경험한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내게는 너무 좋은데, 이걸 도대체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하지가 않다.

하기사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건 목사의 잔소리나 설교일 뿐이다. 신앙은 본인이 먹어봐야 비로소 세상의 피로가 풀리고, 사는 맛을 안다. 진리의 힘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자의 행복을 알게 된다.

제발 말로만 듣지 마시라. 여러분의 것으로 실천하고, 꿀꺽 삼켜 그 맛을 보시라.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여러분의 삶으로 경험해 보시라. 이거 정말 좋다. 비타민보다 좋다. 아니,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좋다.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초보다 좋다. 확실히 좋다.

이 복음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목적이다. 나는 이것을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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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8 목양칼럼


지난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건축가 정기용씨는, 유언과 같이 이런 말씀을 남겼다.

"문제도 이땅에 있고, 그 해답도 이땅과 이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의 건축으로는 기적의 도서관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가 유명하다.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설계함에 있어 항상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배려의 마음과 사색이 곳곳에 스며 있는 건물을 지으려 했다고 평한다.

콘크리트는 본래 차가운 것이다. 꽃과 나무를 밀어내고 그 위에 군림하는 콘크리트는, 인간의 문명을 잘 상징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콘크리트는 인간을 품지 못한다. 인간의 정서를 단절시키고 고독하게 만든다. 그 피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하여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것이 건축가의 숙제다.

사람들은 오랜 서구 건축의 역사를 숭상하고 외국의 건축가를 찬양한다. 그러나 나는 정기용씨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남의 땅에 사는 사람이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마치 나무에게 본토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가 숨 쉬고 살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땅을 아는 사람이 가장 그 땅에 적합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도 그렇지 않을까? 신앙의 진리를 토착화 하는 것은 분명히 부작용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래 진리를 지식과 학문의 테두리에 가두어 정의하는 일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신학이든, 어떤 교리이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없다. 다만 그 특별한 시대와 장소에서 적절하게 사용되었기에, 오늘 우리가 그것을 존중하고 숙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의 문제도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해답을 찾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소의 부작용과 오류가 두려워서 옛것만을 고집하고 그 경계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히려 고립을 낳고 시대의 현실을 포기하는 폐해가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많다.

욕을 먹지 않고 성취를 이루는 것이 어디 가능하겠는가! 

남의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진리의 본질을 끈질기게 붙잡고 진보해 나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인류의 발전이든, 신학의 발전이든... 결국에는 같은 원리, 같은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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