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관련 오정현 목사의 발언을 듣고 / 옥성호
세월호 관련 오정현 목사의 발언을 듣고. – 옥성호
세월호 사건을 겪은 후 한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는줄 알았는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보니 그게 아니라 인간과 짐승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았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내가 지금까지 얻은 답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 자식의 장례식을 치르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자식들을 잃은 유족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몇몇 언론과 네티즌들의 글을 보면 우리 사회가 인간과 짐승으로 나눠져 있다는 한 기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도대체 어쩌다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쓰레기같은 사람들이 지도층에 많이 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럼 똑같은 질문이 다시 생긴다. 왜 우리나라에는 쓰레기들이 유달리 지도층에 많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오정현 목사의 ‘남가주 발언’과 그 발언에 대한 교회의 ‘해명’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조금 방향을 달리해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어떻게 오정현 목사같은 사람이 아직도 저렇게 건재하게 교회의 지도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 그를 옹호하는데 미친 인터넷 상의 익명의 사람들 때문에?
- 그와 이미 공동운명체가 되어 그에게 영혼을 판 몇 명의 장로들 때문에?
-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발바닥을 열심히 핥는 부목사들 때문에?
- 패거리 의식에 젖어 행여 나한테 비슷한 일이 생기면 안되는데…하는 마음으로 그를 돕는 주변의 목사들 때문에?
- 돈에 노예가 된 신학 교수들 때문에?
다 맞다.
하지만 오정현 목사가 오늘도 여전히 오정현 목사로 살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이들 때문이 아니다.
오정현 목사의 힘은 바로 다음에서 나온다.
내가 빠지면 우리 성가대 어떻하라고? 최소한 내 맡은 일은 해야지….라며 열심히 봉사하기 위해 사랑의교회를 다니는 사람
그래도 옥목사님이 시작하시고 내 젊은 시절을 바쳤던 교회인데 어떻게 내가 여기를 떠나….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주일학교에서 우리 자녀들이 그래도 신앙교육은 제대로 받아야지….하면서 자녀를 위해 교회를 떠날 수 없다는 사람들
비록 마음에 안들어도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한 바를 기다리는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
내가 사람보고 교회를 다니나? 하나님을 보고 다니지….라는 순진한 생각에 젖은 사람들
당신들이야말로 당신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이 오정현 목사가 그토록 자랑하는 ‘나를 지지하는 97%, 98%’를 구성하는 핵심이고 오정현 목사의 ‘힘’의 원천이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중립’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한 사회가 타락하고 몰락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중립’의 다수들이다. 선거철이면 중립을 ‘부동층’이라고도 부른다. 부동층은 다른 말로 하면 ‘생각없는 사람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들’ 이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A도 되고 B도 되는 한 마디로 바람에 나는 낙엽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타락한 지도층은 행복할 수 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중립’의 위치를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야말로 작게는 사랑의교회 크게는 이 사회 전체를 타락시키는 주범이다.
‘착한 중립’이 넘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지금 세월호를 통해서 또 변함없이 오늘도 주의 말씀(?)을 전하는 오정현 목사를 통해서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진짜 무서운 사실은 ‘착한 중립’이 넘치는 사회의 비극이 결코 현재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우리의 지금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듯 우리의 미래 또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년, 20년이 지나서도 우리의 자녀들은 여전히 수학여행을 위해 제 2의 세월호를 탈 것이고 제 2의 삼풍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것이며 또 열심히 일해 제 2의 오정현 목사가 있는 교회에서 봉사하며 돈을 갖다 바칠 것이기 때문이다.
오정현 목사나 청와대나 KBS의 사장이나 다 똑같다. …..결국은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누군가는 하나님을 팔고 또 누군가는 나라의 안전과 경제를 팔고 또 누군가는 그럴듯한 뭔가를 팔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언제…..
‘선의의 생각없는 사람들’, 아름다운 ‘중립’을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지금 사랑의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면서 전혀 내적 갈등을 못 느끼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똑바로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바뀌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더 이상 ‘중립’이 아닐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사회가 착한 중립들로 넘치는 한 그들은 언제까지나 안전하다.
말이 나온 김에 김건축의 모델이 된 사람과 관련해 한 마디 해야겠다.
나는 얼마 전 ‘서초교회 잔혹사’라는 책을 썼다. 지금 보니 그 책에 등장하는 김건축 목사를 묘사하면서 그 목사의 모델이 된 오정현 목사를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자책이 든다.
무엇보다 그 책 속의 김건축 목사는 오정현 목사에 비해 설교를 너무 잘한다. 김건축 목사의 설교는 최소한 독창성이 있고 들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김건축 목사에게는 자신만의 ‘호연지기’가 있다. 스스로 치고 나가는 ‘뚝심’과 ‘남자다움’이 있다.
그런데 이번 남가주 발언과 관련해 나온 ‘변명’을 보니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책 속의 김건축 목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차라리 망언을 한 한기총의 그 무슨 목사라는 사람은 당신같은 변명을 할 수 있다.
“사석에서 나온 얘기인데 그게 와전되었다….”라고.
게다가 그 한기총 목사의 얘기는 무슨 녹취록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오정현 목사가 한 말을 놓고 그렇게 해명할 수 있는지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된다.
“사적인 얘기였고 진의가 와전되었다고?”
백 명이 모인 순장반 강의가 ‘사적대화’라고? 목소리가 녹음된 파일이 세상에 돌아다니는데 ‘와전’되었다고?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나는 놀라울 뿐이다. 물론 그게 오정현 목사 스타일의 ‘호연지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도.
동물은 아무데서나 똥오줌을 싸고 성교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들 중의 하나가 수치감의 존재여부이다. 사랑의교회의 변명들을 보면 이들에게 과연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있는지 의아해진다. 그래서 ‘철면피’라는 단어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세월호 관련 오 목사 발언에 대한 변명을 보면서 나는 ‘동물’과 ‘철면피’가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그것도 지도층에 ‘사람’을 더 많이 보기 위해 세월호에서 아이를 잃은 한 엄마의 글을 소개한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착한 중립’은 무책임이고 그것은 범죄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에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랑의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이 그러하다.
원문 : http://goo.gl/c1Y8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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