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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은혜

목회/목양칼럼 / 2011. 7. 23. 15:00

2011-07-24 목양칼럼

SDC10369

여름이다. 더위에 지치면 입맛이 없기 쉽다.

입맛이 없을 때는 밥상에도 과거로의 회귀(回歸)가 일어난다. 화려한 것보다는 뭔가 복고풍(復古風)의 담백한 음식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그 중의 하나가 깍두기이다.

새로 담근 깍두기가 아니라 잘 익었거나, 혹은 조금 신맛이 나는 깍두기가 좋다. 깍두기를 담글 때에 찹쌀이나 쌀로 풀을 쑤어 넣었다면 나중에 국물이 약간 걸쭉해서 밥을 비비기 좋다.

이 국물을 하얀 쌀밥에 듬뿍 얻는다. 물론 깍두기도 적당히 들어가야 한다. 수저로 밥을 비비기 시작하면, 신맛의 냄새가 코로 들어오면서 벌써 침이 꼴깍 넘어간다. 처음부터 완전하게 비빌 필요도 없다. 먹으면서 천천히 비벼가도 되니까… 당장 밥그릇의 윗부분을 벌겋게 비벼서는 깍두기와 함께 한 입 가득 베어 문다.

깍두기가 좀 매운 맛이 강하다면, 담백한 나물이나 생선 같은 반찬을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그냥 시원한 냉수 한 잔만 있으면 뚝딱 밥 한 그릇을 해치우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밥을 먹는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햄이나 장조림이 맛있지 깍두기에 무슨 찬사를 돌린단 말인가! 깍두기는 그저 촌스런 반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 진가(眞價)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혼자서도 한 끼의 식사를 책임질 수 있는 저력, 그리고 숙성(熟成)의 과정을 통해 오묘하게 입맛을 끄는 매력까지…… 깍두기는 밥상의 지존이다!

사람이 그렇고, 인생이 다 그렇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달콤한 것이 좋지만, 그런 것은 오래 가지를 못한다.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수수한 것이다. 평범해 보이고, 어떨 때는 지루해 보이는 것이 사실은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자극이 곧 충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평생을 그렇게만 살 수 있을까? 인생은 짧지 않고, 신앙은 평생의 문제이다. 결국 우리는 깊은 강을 건너 주님의 나라에 가야 한다. 그리고 이 순례의 길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아주 담백하고 평범해 보이는 원리의 실천이다.

하루에 한 번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기, 그리고 성경을 늘 곁에 두고 묵상하며 살아가기, 주일은 예배에 빠지지 말기(덧붙여 늦지도 말기),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 밥을 먹을 때에는 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이런 것들이 정말 간단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신앙에 있어서도 ‘깍두기’로 돌아가야 한다. 햄과 치즈, 장조림을 내려놓고, 내가 정말 시대와 환경에 상관없이 나를 입맛 돌게 하는 깍두기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여름철 입맛이 없다고 신앙까지 무력해지지는 말자. 계절에 맞는 입맛이 있듯이, 신앙에도 각각의 때에 적당한 은혜가 있기 마련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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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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