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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5 목양칼럼

 

다른 사람을 향하여 참아주는 것보다 가족을 향하여 인내하는 것이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의외로 밖에서는 친절하다는 평판을 들으면서도 정작 가족에게는 매정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 이중적인 사람일까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친절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의도가 얼마나 행동으로 실천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어떤 의미에서,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보여주는 것은 쉬운 편입니다. 그리 오래 보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가족은 다릅니다. 가족은 간섭의 끝판왕들이죠. 나름 그럴 만한 자격과 권리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선을 넘는 행동들이 자행됩니다. 그런 사람들(가족)을 향하여 '친절'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곧 모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친절이든, 배려이든간에…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가족에게서 시작되고 가족에게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의 분위기에서 살았고, 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대인관계와 사람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래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성장하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교양적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매너'의 기본과 뼈대는 모두 가정에서 만들어집니다. 특별히 식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식구들에게 잘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식구들에게서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사회의 관계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내면적으로는 단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그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의 결핍이 원인입니다. '식구'는 호적에 함께 이름이 쓰인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일체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식구에게 참기 힘들고 식구라서 친절하기 어렵지만, 그러나 식구에게마저 친절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쌓아갈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이것을 주의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아빠니까 무례해도 괜찮고 엄마라서 무시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무르익어 아이들이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풍성하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방을 쓰는 자기 형제에게조차 배려하지 못하면, 앞으로 사회 생활 속에서 만나지는 수많은 무뢰한들을 어떻게 참고 극복하겠습니까? 참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폭발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평온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오묘한 긴장감과 균형이 갖추어질 때에 비로소 가정에서 잡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에는 '관계'라는 어려운 숙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더하기를 못하면 곱하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더하기도 익숙하지 못한 아이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은 원하는 답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결국 아이는 수학의 재미를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식구들과의 관계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해낸다는 것은 과장이요, 억지입니다. 어떻게 대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답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진실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결국 행복할 수 없습니다. 늘상 '인간관계'의 부담 속에서 살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이 사귀고 연대하며 공감하여 누리는 풍성한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절입니다. 가정마다 갇혀서 식구들끼리만 함께 지내면서 나름 스트레스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혼율이 늘었다고 하고, 더러는 가정내 폭력사건까지 생긴다고 듣고 있습니다. 아마 아이들도 스트레스가 많을 것입니다. 부부들도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고, 형제들간의 긴장감도 높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의 실상을 보고, 확인하고, 고쳐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가족이 얼마나 건강한지, 어디가 약점이 있는지, 그리고 이 약점을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한 가지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바탕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때문에 부부가 서로 잘 지내는 것, 형제가 우애 있는 것, 가족이 함께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유산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 어려운 시절이 그런 유산을 잘 갈무리 하는 기회로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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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3 목양칼럼

 

꿈 같은 시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좋은 꿈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곤란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2020년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상이 찾아올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팬더믹)으로 국경은 봉쇄되고 사람들은 집에 갇혔으며, 아이들은 교육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 곤란한 상황이 지나가고 다시 일상의 자유를 맞이할 수 있을지 예상도 쉽게 되지 않는 요즘입니다.
갑자기 닥친 이 시련은, 국가의 리더십을 시험하고, 개인의 성품과 인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적당하게 감추어졌던 우리의 속모양들은, 이제 감출 수 없는 지루함과 두려움, 이기심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유익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세계의 공장들이 멈추어 서자 바다가 살아나고 철새들이 돌아오는 것처럼, 이 코로나19는 식구들이 다 모여 매일 저녁을 먹는 일상을 강제했고, 또한 우리 자신의 실체를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정원사들은 이른 봄에 가지치기를 합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이제 봄기운을 좀 받으려는 나무들에게 가혹한 가위질을 하는 것이 조금은 안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때가 가장 좋은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봄은 정열적인 생명으로 나무를 다시 살려놓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른 봄에는 거침없이 가위질을 해도 무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어려움은 지나갑니다. 사실 모든 어려움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 분명한 원칙 속에 하나님의 자비가 깃들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원칙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려움을 통해 부실한 가지를 잘라내고 자기를 더 건실하게 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부수적인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부수적인 것들을 너무 많이 용납하고 연연하는 동안 우리의 정신은 혼잡해지고 마음은 어수선하게 됩니다. 때문에 가끔은 부수적인 것들에게 선을 그어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확실한 결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꿈처럼 일상이 멈춘 지금이 어쩌면 그렇게 자기를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휴가는 계획을 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닐테니까요. 어쩌면 우리의 평생에 다시는 없을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조용한 사색과 기도와 독서와 글쓰기의 시간을 권합니다. 가족과의 대화는 많이 하시되, 가끔은 그 대화로부터도 좀 떨어진 여러분만의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지나온 여러분의 시간과 앞으로 걸어갈 여러분의 시간을 헤아려 보십시오. 사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그것을 아껴 사용하고 후회 없는 인생이 되도록 세밀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목적이 있는 삶을 희망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산다'는 말의 의미가 묵직하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젊은 시절에 생각했던 거창한 것들보다 훨씬 작고 소소한 것들에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규칙적으로 산책하고, 혈압을 체크하고, 커피를 마시고, 몇 글자의 글을 쓰면서 혼자 생각하고, 지난 사진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짓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리고 다시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를 손질하며 미래를 지긋이 전망하는 것… 그 자체로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대단하고,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의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우리 안에 욕심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욕심은 쓸데 없는 걱정과 염려로 이어지고, 그래서 우리 마음은 쉴 틈이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닌데… 그래서 계획이 없는 인생도 무모하지만, 너무 계획에만 매달리는 인생도 갑갑하고 힘든데… 우리가 덜 중요한 것을 잡고 놓지 못해서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이 됩니다.
답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 대답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그 인생의 결과 또한 각자가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목사로서 저의 역할은, 이런 것들을 제시하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인생의 결정권은, 결국 그 주체로서의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문에 그 결정에 대하여 '권면'은 하겠지만, '주장'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과 같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결정이라도 했을 때에는 그 결과를 책임지고 다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갈 수 있지만,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며 인생을 낭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면 실패도 인생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신중한 것과 우유부단한 것은 다르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신중은 마지막까지 골몰하되 반드시 스스로 결정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스스로 져야 하겠지요. 결정과 책임은 언제나 별도의 내용이 아니라, 하나의 세트메뉴라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은 결정하지 못할뿐 아니라 책임지지도 않는 태도입니다. 어쩌면 책임지지 않기 위하여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이 우유부단의 실체일 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지금은 잘 사용해야 하는 기회입니다. 흔치 않은 시간입니다. 인생에 다시 없을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안전하고, 건강하며,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제가 대답할 내용이 아니라, 여러분이 찾아야 할 여러분만의 숙제입니다. 모쪼록 그 숙제를 잘 하기를 곁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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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9 목양칼럼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상황 중에도 선거를 잘 치루었습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보루입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 기독교로 분류되는 일부 교회가 보여준 행태는 우려를 낳습니다. 오프라인의 부활절 예배를 강행하고 종교탄압을 외치며 여당의 낙선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협박이 그들만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오프라인 예배를 비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각자와 각 교회의 생각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문제로 삼는 것은, 목사가 성도들의 투표를 좌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입니다. 목사의 리더십이 성도들의 모든 결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착각입니다.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세상은 변하고 있고, 목사들의 영향력도 예전만 하지 않습니다. 마치 중세의 시대에는 사제만 성경을 읽을 수 있어 '성경적'이라는 말이 사제들에게 독점되었지만, 종교개혁을 통해 모든 신자들의 가정에 성경책이 보급되면서 비로소 '만인제사장'이라는 인식이 확대된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앙생활에 관심과 열심을 가진 성도들은 이제 웬만한 신학이론들을 거의 이해할 만큼 교양적 수준이 향상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어도, 침묵할 뿐이지 무작정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충분한 근거와 논리를 갖추지 못하면 설득할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에 목사들의 한 마디로 그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일사분란하게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목사 자신만이 아닐까 합니다.
달라진 시대에는 달라진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목사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퇴락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 만큼이나 교회의 패러다임도 변화가 요구되는 요즘이 아닐까 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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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

목회/목양칼럼 / 2020. 4. 12. 08:42

 

2020-04-12 목양칼럼

 

누가 승리합니까? 간절한 사람이 이깁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억울한 과부의 사건을 듣고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재판관을 찾아가 호소하자, 마침내 재판관이 그렇게 말을 했답니다. "내가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지만, 당신은 너무 귀찮아서 억울한 사연을 내가 풀어줄테니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오."

사람은 간절할 때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는 기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포기할 있다면, 이미 간절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간절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지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왜입니까? 이길 때까지 도전할테니까요. 이미 그의 마음에서는 승패가 갈린 것입니다.

코로나19 엄혹한 현실을 지나면서, 내가 인생에서 과연 무엇을 그토록 간절하게 붙잡아 왔던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밋밋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닐까…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간절하면 기도합니다. 간절하면 노력합니다. 간절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간절하면 우리 삶은 느슨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절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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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6 목양칼럼

 

벚나무가 꽃을 떨구며 싱싱한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요즘입니다.

조그만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으로 공원을 누비며 꽃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바람도 느끼고 싶은 봄인데... 이번 봄은 너무도 잔인하게 질병의 공포와 싸우며 보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만 갇혀 지내다보니, 갑자기 <안네의 일기> 생각났습니다.

유태인 소녀, 안네는 13살에 일기장을 선물받게 됩니다.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소녀의 소소한 일상을 적어나갔습니다. 유태인 가족에게 나치 독일의 강제징용 출석요구서가 날아오게 되고, 그때부터 가족은 은신처에 숨어 답답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가족은 194484일에 나치의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보내졌고, 안네는 다음해에 15살의 나이로 그곳에서 병사했습니다.

안네의 일기장은 후에 발견되어 2009년에 유네스코에 의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일기장에 안네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자기 안에 숨어 있는 행복을 다시 끌어내기 위하여 노력하세요. 그리고 주변에 아직 남아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다면 행복은 당신의 곁으로 다시 찾아와 줄겁니다."

 

 

우울함과 고통 속에서 용기를 가지려고 싸웠던 사람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13살의 소녀도 희망을 잡고 노력하다가 별이 되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정도로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엄살 부리지 말고, 일기장에 다짐이라도 적으면서 힘을 내어 봅시다.
우리가 다시 용기를 가지면, 안네의 글처럼, 행복은 다시 우리들 곁으로 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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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목양칼럼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구별이 없습니다. 있는 것은 복종할 것이고, 없는 것은 창조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지경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이성은 이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작고 초라하며 보잘 것 없습니다.
온 세상이 코로나19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백, 수 천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너무 간절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온 세상이 멈추고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이제 각자의 집에서, 자기의 나라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언제 다시 자유로운 여행과 만남을 계속할 수 있을지 갈망하고 있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인하여 인간의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스스로 위대해진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내포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께서 이 질병의 치료제도 허락해 주시기를… 그래서 다시 부모와 자식이 만나고, 국경이 열리며, 예배가 계속되고, 삶의 소소한 일상과 행복들이 우리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다짐합니다. 이제 다시 은혜로운 일상을 찾는다면, 그것들에 대하여 더욱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길 것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무엇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지렁이 같은 야곱이며,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며, 들판을 맴도는 아침의 안개일 뿐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교만을 치유해 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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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5 목양칼럼

 

역시나 위기는 본질을 드러냅니다.
본래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말로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자 여실히 그 진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진심은 본인도 모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은밀하고, 또한 남도 속이지만 자신도 속일 수 있을 만큼 교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고 어려운 때에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이 결국에는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과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흡족한 감동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실히 평소와 다른 모습에 실망하거나 당황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깨끗이 닦였던 거울도 잠시 방치하면 무수한 손자국이 생기고 알 수 없는 얼룩에 흐릿해지잖아요. 우리 마음도 닦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여 실망스런 모습이 있더라도, 아직 주저앉지 마십시오. 내가 내 마음을 살피고 닦지 못했구나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보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나누고, 더 중요하고 급한 것부터 먼저 실천하고, 의미 있는 일을 앞에 두고, 사람을 귀히 여기면 됩니다. 그러면 다시 마음이 맑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날마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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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 목양칼럼

 

한겨레에서 출판된 김선주의 책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싫든 좋든 떠나야 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모든 크고 작은 이별의 시간과 장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별의 타이밍을 놓치고 허망한 미련을 두어 좋은 추억까지 다 지긋지긋한 원망으로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간혹 생깁니다.
추호(秋毫)의 실수도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독한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혜를 얻어야 하고, 그렇게 얻게 된 지혜가 바로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이 한 문장이 아닐까 합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작가의 말처럼, 선택이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가서 북받치는 감정으로 충동적인 이별을 선언하기 보다는, 미리 예감하고 감정을 준비하고 절제된 언어와 방법으로 이별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이별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헤어져도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와 나의 시간이 얽혀 만들어진 기억은 영원히 내 안에 고스란히 남겨질 흔적이라는 점에서... 이별에 예의를 갖추는 것은 내게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이별 후에 뒤돌아 욕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초라하고 누추하다는 사실을 과연 모르는 것일까요?
그들도 누군가를 통해 이별을 겪다보면 결국은 알게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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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 목양칼럼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온 마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면 좋은 것입니까?”
좋지 않다.”
그러면 온 마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좋은 것입니까?”
그것도 좋지 않다.”
그리고 잠시 후에 공자는 이렇게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너는 마을의 착한 사람들은 좋아하고 악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댓글로 먹고 살기도 하고, 악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악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요즘 새롭게 생겨난 부류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며 살아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칭찬과 욕을 함께 먹으며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외부의 목소리에 너무 흔들리고 낙심하는 연약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왜 그렇게 평화가 깨뜨려지고 불안에 떨게 되었을까요?
내면의 질서와 마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기 전에,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하고, 그 고요함 속에서만 들리는 창조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경건이라 하고, 이러한 경건을 통해 쌓이는 내면의 힘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흔들 수 없는 내면의 단단함을 신앙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질서와 영성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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