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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21 소망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다
  2. 2013.02.27 아들아 고맙다!
  3. 2013.01.18 찬혁이 고등학교 원서를 쓰다
  4. 2012.09.30 한가위의 묵상

 

2020-03-21 목양칼럼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구별이 없습니다. 있는 것은 복종할 것이고, 없는 것은 창조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지경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이성은 이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작고 초라하며 보잘 것 없습니다.
온 세상이 코로나19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백, 수 천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너무 간절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온 세상이 멈추고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이제 각자의 집에서, 자기의 나라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언제 다시 자유로운 여행과 만남을 계속할 수 있을지 갈망하고 있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인하여 인간의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스스로 위대해진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내포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께서 이 질병의 치료제도 허락해 주시기를… 그래서 다시 부모와 자식이 만나고, 국경이 열리며, 예배가 계속되고, 삶의 소소한 일상과 행복들이 우리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다짐합니다. 이제 다시 은혜로운 일상을 찾는다면, 그것들에 대하여 더욱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길 것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무엇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지렁이 같은 야곱이며,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며, 들판을 맴도는 아침의 안개일 뿐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교만을 치유해 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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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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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3일)에 둘째 찬혁이가 고등학교 입시를 봤다.
바짝 공부를 한 것은, 아마도 두 세 달 되는 것 같다. 
과년도 문제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출력해서 집에서 모의고사를 봤는데, 그 모은 양이 A4 1박스쯤 되는 것 같다.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주일학교 이후로는 개척교회 예배를 같이 드렸다.
첫째 준혁이는 그래도 좀 주일학교의 혜택을 누렸지만, 둘째 찬혁이는 거의 주일학교를 누리지 못했다.
어른들도 힘들어 하는, 1시간짜리 설교를 매주 들으며, 그래도 아빠에게 예배 드리는 태도가 정숙하지 못하다고 늘상 야단을 들을 때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참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내게 그런 말을 한다. 
"학원 한 번 안 가고 이 정도 학교에 들어가면 내가 꽤 괜찮은 놈인거죠?"
그래. 그 말이 참 맞다.


아무 예고도, 준비도 없이... 한 걸음에 결정했던 일본행.
그 시절에는 내 눈에 교회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속에라도 뛰어들면,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충만해 있었으니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리숙한 믿음을 주님께서 은혜로 받아 주신 것이.
하지만 지금은, 내게 자녀를 주신 것도 '목사'라는 이름 만큼이나 소중한 사명이라고 깨닫고 있다.


큰 아이는 4학년을 마치고, 작은 아이는 2학년을 마치고 일본에 왔다.
내가 먼저 일본에 와 있는 동안, 우리는 6개월을 떨어져 있었는데, 그 동안 엄마가 아이들에게 히라가나를 가르쳤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일본 초등학교에 갔을 때에, 아이들은 자기 이름도 겨우 쓰는 수준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 어린 것들이 그 막막한 세상에 던져졌을 때...
그러나 아이들에게 해줄 것이 없었다. 
우리 부부 모두 일본어에 벙어리요 귀머거리였고, 아이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도 전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왕복 1시간의 거리인 교회에 차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로 다녔고, 아이들은 다시 주말에도 구약소에 있는 볼란티어 일본어 수업을 듣기 위해 40분을 왕복했다. 
이제 갓 3학년에 들어섰던 둘째가, 자전거를 비틀거리며 찻길을 달릴 때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한숨과 함께 기도가 절로 나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떠밀리며.. 그렇게 세월이 지났다.


목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더라.
오히려 가족들이 더 힘들더라. 선교지에 나오면, 설음도 많더라. 내 새끼 배불리 먹이는 욕심 부리고, 내 식구 따뜻하게 하는 욕심 품고서는 갈 수 없는게 이 길이더라... 참 많이 울고, 참 많이 배웠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덧, 큰 아들은 대학을 목전에 두고 있고, 작은 아들은 고등학생이 된다.
아직 합격통지가 날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기까지 온 것도 참 귀하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실패와 역경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역경을 지나온 사람에게 역경은, 넘어갈 길에 불과할 뿐이다. 오르지 못할 산은 없고, 지나지 못할 바다는 없으니까...
나는 내 아들이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키워주신 그 떳떳한 자부심이, 자기 긍정이, 자기에 대한 신뢰가 다른 무엇보다 더 귀한 재산이요, 보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일이 발표일이다. 아마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나는 그냥 감사하다. 그 무수한 비틀거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가, 아이들의 마음을 키워주신 사랑이, 그리고 한 사람으로 따뜻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목메이게 감사하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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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둘째 찬혁이의 원서를 썼다.

벌써 이렇게 의젓하게 자랐다. 일본에 처음 데려온 것이 2006년4월18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마냥 어리기만 했는데... 그 시절의 사진을 찾아봤다.




갑자기 목이 메인다. 세월이 그저 흐른 것은 아니었구나.

학원 한 번 보낸 적이 없이 지냈다. 공부 하라고 채근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서 곧잘 성적을 받아 오더니, 형이 다니는 제법 좋은 학교에 원서를 쓰게 되었다. 

늠름하게 자라준 아들이 고맙고, 그렇게 자라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붙들어 주신 나의 하나님이 감사하기만 하다. 

"아들,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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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30 목양칼럼

한국의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를 지킵니다만, 그 시기가 미국의 절기에 맞춘 것이라 한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자 한다면 늦은 가을, 혹은 겨울의 문턱에 위치하는 추수감사절을 한국의 명절인 추석과 동기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추수감사절을 조금씩 당기는 추세입니다. 

교회가 이런 절기를 기념하는 것은, 그 날에 얽매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의 의미를 기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날짜를 지키느냐 하는 것보다 그 날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이냐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위는 풍성한 열매를 통해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시 돌아보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생활을 점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열매를 얻습니다. 비록 농사를 짓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농부가 수고를 통해 곡식과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현대인은 그것을 금전으로 대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노동의 결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거둔 결실이 결코 노동만의 결과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농사를 지어도 이 논과 저 논의 소출이 다릅니다. 사람의 노동도 이와 같아서, 같은 수준의 수고를 하지만 얻는 소득은 천차만별(千差萬別)입니다. 심지어 수고만 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일어납니다.

물론 수고한 대로 적당히 거두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는 그 당연한 원리가 적용되지 못하여서 사람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억울한 원성이 쌓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가 수고하고 거둔 것은, 당연하면서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땀 흘린 노동의 대가이지만 동시에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서는 선한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소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고 설교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얻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눔을 실천한다면 하나님께 반드시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얻은 것을 내 것으로만 여기고 이기적으로 산다면 하나님도 그에게 엄격한 정의를 찾으실 것입니다.

감사하고 있습니까?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나눔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득이 결코 전부 나의 것만이 아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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