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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17 뿌리
- 2013.03.17 그리스도 안의 생명
- 2012.11.25 지혜의 외침, 복음 (예배실황)
- 2012.11.25 지혜의 외침, 복음 (원고)
- 2012.07.15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스도 안의 생명
2013-03-17 주일오전예배설교
제목 : 그리스도 안의 생명
성경 : 요한복음 15장1절~6절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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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외침, 복음 (예배실황)
2012-11-25 주일예배
제목 : 지혜의 외침, 복음
잠언 8:1~11
8: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8:2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8:3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8: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8: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8:6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8: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8: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8: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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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외침, 복음 (원고)
잠언 8:1~11
8: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8:2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8:3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8: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8: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8:6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8: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8: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8: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잠언8장’의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보통 지혜라고 하면,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시험을 잘 보는 어린 아이를 가리켜, 혹은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해내는 전문적인 지식의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지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잠언, 지혜의 말
잠언은 본래 ‘지혜로운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혜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혜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상식의 수준에서 성경을 보면, 성경이 반쪽만 보이고, 심지어는 반쪽조차도 아주 안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대하는 좋은 태도는, 나의 선입견을 모두 버리고 온전히 성경적 관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소위 요즘 유행어로,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지혜란 무엇인가?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지혜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들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더라도, 돈이 나오거나,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거나, 당장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실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예배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시면 감사하고,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조금 싫으시겠지만, 그러나 이것이 성경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 성공, 명예, 승리는 모두 우리가 가지는 신앙과 예배의 목적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생명을 위한 책
그렇다면 예배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20:30~31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 예배가 가능합니다. 만약 성경이 없다면, 기독교는 모든 이방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있는 종교심에 의지하여 막연하게 창조주를 찾는 ‘짐작의 행위’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시로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이 우리가 제대로 믿는지 확인해 줍니다. 이 성경이 우리의 신앙을 인도합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이 무엇을 위해 쓰였습니까?
바로 생명입니다. 요한복음뿐 아니라, 모든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그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 곧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믿으십니까?
어제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크게 웃었습니다.
아이들 엄마가 무슨 이야기 끝에, 너는 아직 중학생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더니 찬혁이가 발끈했습니다. 엄마는 맨날 그런 식으로 말하며 자기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반은 장난이었지만, 반은 진심이 담긴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낮에 어떤 일을 하는데, 핸드폰에 있는 노래를 7~80곡 정도 들을 만큼 시간이 오래 걸려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즉각적으로 찬혁이가 “삼칠의 이십팔, 이백팔십 분을 한 거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노래 한 곡이 3분 정도 되니까, 7~80곡을 들으면 그 정도의 시간이 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 때, 준혁이가 웃었습니다. “야, 임마 삼칠이면 이십일이지, 왜 이십팔이냐?”
순간 모두 큰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거들면서 말했습니다. “괜찮아. 아직 중학교도 졸업 못해서 그런거니까, 많이 배운 우리가 이해해야지. 찬혁아, 괜찮아!”
엄마가 7~80곡이라고 하니까 머리로는 80곡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70곡을 대입하여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엄마가 찬혁이 편을 들었습니다.
“찬혁아, 솔직히 나이 들면 구구단 쓸 일 별로 없다. 몰라도 괜찮아!”
어떻습니까? 여러분 요즘 살면서 구구단 사용하십니까?
쓰더라도 아주 가끔이지요. 실제로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몇 년을 사시는 분도 많아서, 이 시간에 구구단을 게임으로 하면 아주 많이 재미 있을 겁니다.
지식과 지혜에는 근본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이 있습니다. 주변적인 것도 없으면 불편합니다. 그러나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지혜는 그것이 없으면 죽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 그 자체를 위해 필수적인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구구단 몰라도 살고, 영어 못해도 살고, 심지어 자기 이름을 몰라도 살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고 그분을 경외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다’라는 성경의 가르침의 의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근본적인 지혜이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이가 영어를 좀 잘 하면 지혜가 많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더 잘하기 위해서 비싼 학원을 보내고, 심지어 영어를 쓰는 나라로 여행이나 연수를 보내기도 합니다.
아직 자녀가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게 투자하지 않는 대신에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렇게 합니다. 비싼 영어교재를 사고, 학원을 수강하고, 원어민 강사와 마주하여 영어를 배우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예배는 매일 지각입니다. 설교 시간에는 졸기 일쑤입니다. 소설은 손에서 놓지를 않으면서 성경은 읽는 법이 없습니다. 아내와 오붓하게 분위기를 잡을 줄은 알지만, 하나님과 오붓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일은 생각도 못합니다. 취미와 접대를 위해 돈을 쓸 때에는 아낌 없는 손이, 하나님께 연보를 드릴 때에는 항상 적은 액수의 지폐를 찾습니다.
이런 행동을 일삼으며,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말씀을 드리는 바와 같이, 신앙은 취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말로 바꾸어,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것은 부수적인 지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지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잃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에 대한 우리 인생의 대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8장은 처음부터 이 구원의 지혜를 의인화 시켜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8: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8:2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8:3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8: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8: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8:6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8: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8: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8: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절박한 지혜의 외침
지혜가 이처럼 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좀 더 성공하고 잘 살기 위한 수단 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선택하는 절박한 결정입니다. 때문에 지혜는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고 죽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 저 편에서 큰 덤프 트럭이 달려 오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천천히 느릿느릿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앞에서 점잔을 부리며 천천히, 예의 바르게 말해야 합니까?
그 순간에는 존댓말도 필요 없습니다. “비켜! 위험해!” 있는 힘껏 배에서 나오는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요? 경박한 사람이라 그렇습니까? 아니죠, 지금 이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잠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요한복음 7:37~39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는 이 복음의 절박함을 다시 마음에 인식해야 합니다.
천국은 죽어봐야 아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죽고,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한 평생을 살았다면, 거지 나사로와 같이 비참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영원한 안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경외하지도 않고 산다면, 우리에게 기다리는 것은 불신에 대한 무서운 심판뿐입니다. 설사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돈을 많이 벌고, 나름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 다음은 비참한 후회를 하며 영원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에 대하여 날마다 각성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 정말 그분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가? 예배를 귀히 여기고, 성경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가? 교회를 사랑하는가? 주의 종과 그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가?
그 반성이 없고, 회개가 없고, 날마다 성장하는 모습과 새로운 각오가 없다면, 그가 사회로부터 어떤 평판을 받고, 주변에서 무엇이라 칭찬을 듣든지 간에, 그는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은보다 귀하고, 진주보다 비싼 이 복음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해야 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예배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충성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열심을 가지고 성경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봐야 할 때
오늘, 우리는 이제 2012년도를 한 달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마땅히 일년을 돌이켜 생각할 때입니다. 잘한 것은 격려하고, 못한 것은 반성하여 각오를 가져야 새해를 맞을 수 있습니다. 달력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의 옷을 새롭게 갈아 입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 앞에서 자기를 돌아봅시다. 외치는 복음의 지혜 앞에서,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지 되돌아 봅시다.
집사가 되고서도 오래도록, 아직도 술을 끊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는 빠지지 않으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않는 일을 몰래 계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면서도 축복을 달라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의 구원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그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구원의 복음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지혜의 음성을 듣고 바로 이 거룩한 고민을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멘!
** 이 설교의 PDF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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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12-07-15 목양칼럼
영웅의 시대는 갔다. 전장의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용감하게 선두를 달리는 용장(勇將)의 기백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일수록 비겁한 시대가 되었다.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돌격'을 외치는 그런 사람들의 시대 말이다.
작년3월, 후쿠시마의 원전이 쓰나미의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졌다. 처음에 그것은 수많은 피해지의 무너진 건물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원전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다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방송했고, 그것은 또 다른 재난의 시작이었다. 연이어 방사능 누출이 매일 신기록을 쏟아냈다. 인근지역의 소개(疏開)가 시작되었고, 소방헬기가 바닷물을 퍼서 원전 위에 쏟아 붓는 사상 최악의 대응이 전세계에 중계되었다.
가슴이 떨렸다. 원전사고가 빨리 수습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거기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던 것이다. 동경전력의 안일한 태도가 매일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그것은 원전정책을 결정하고 그 혜택으로 막대한 부를 누렸던 사람들의 몫이지 당시 그곳에서 반강제로 발이 묶여 있는 사원들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나라의 위기를 위해 가족과 눈물로 이별을 하고 동경에서 후쿠시마까지 달려갔던 소방특공대원들의 모습은 실로 장엄했다. 그들이 목숨을 이 위기를 모면하는 값으로 내놓아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감동만 해도 되는 일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목숨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게 될까 봐 다른 이의 위기를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외면은 결국 자기의 위기를 앞당긴다.
한 때 나치의 지지자였던 마르틴 니묄러라는 목사가 있다. 그는 나중에 나치의 반대운동에 나섰고 <그들이 왔다>는 아주 유명한 시를 남겼다. 이 시에서 '그들'은 나치이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의 '그들'이기도 하다.
"맨 먼저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지만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지만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지만 /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신교 기독교인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부른다. 이 말은 '항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왕이, 귀족이, 그리고 심지어 종교의 사제가 불의(不義)로 하나님을 사칭할 때에, 오직 손에 성경을 들고 진리를 위해 항의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항의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을 거룩한 희생으로 받고 하늘의 보상을 믿으며 죽어갔기에 시대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일본의 원전은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걸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설사 다시 후쿠시마의 원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결코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도장을 찍고, 누군가를 그곳에 보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이름이 다음에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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