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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박범신
출판 : 문학동네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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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복잡하다. 그래서 지식인도 복잡하다.
이적요는 ‘고요함’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사용하는 일흔의 유명 시인이다.
서지우는 이적요의 제자이며, 실제로는 이적요의 글로 나이 마흔 무렵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은교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이적요의 집을 드나들게 되었던 동네 소녀(처녀)이다.

이 중에서 둘이 죽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서지우와 지병으로 죽은 이적요.
이들이 남긴 노트가 공개를 앞두고 변호사에게 읽혀진다. 그것이 이 책의 스토리이다.

책은 혼돈스럽다. 다수의 시가 삽입되고, 감정을 묘사하는 섬세한 표현들이 얽혀간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혼돈스러운 것은 심상(心狀)이다.

소설은 지식인의 감정 속에서 타부(Taboo)를 건드린다.
사랑, 시기, 살인,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지루한 변명들. 
문학의 껍질 속에서 마치 모든 현실이 몽환적인 느낌으로만 다가오지만, 그러나 그 관능적인 언어들의 이면을 들추면 치열한 존재의 속살이 드러난다.

나도 글을 쓰지만, 글은 관념이다.
그 여실한 한계를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다. 결국 글로 표현되는 세상이란 글을 읽는 자의 주관과 경험에 기댈 뿐이다. 이런 생각을 나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글은 공허하고 고독하다.

작가는 이 책을 왜 썼을까? 
문학과 문학계에 대한 비아냥, 아니면 점점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이면에서 어느 봄날 은교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살인의 충동을 가졌기 때문일까?
갑자기 서재에 앉아 글을 쓰는 작가와 작가의 글이 오버랩되곤 했다, 글을 읽는 중간중간에.

여름 하늘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燈籠). 새벽에야 책을 덮었더니 입안이 텁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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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진명
출판 : 새움 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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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소설이다. 이미 [고구려] 3권을 통해 북방의 고대사에 대한 깊은 갈증을 고백한 작가 김진명은, 이제 고조선 이전의 뿌리를 찾아 여행을 한다.

그가 서두에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조선의 말에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했을까? 실록에 따르면, 분명히 삼한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의문이 생긴다. 압록강 이남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조선에서 어떻게 백제와 가야에 병합되었다는 남부의 마한, 진한, 변한을 계승한다는 말인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듯, 조선이 고조선을 계승했듯, 대한제국은 무언가 그럴듯한 시조를 찾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작가 김진명은 식민지사관에 도전하며, 삼한이 결코 한반도 남부의 나라가 아니라, 실제로 고조선의 유민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음을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의 한후[韓侯]를 한(韓)나라의 왕이라고 해설하며, 중국의 학자였던 왕부의 책에 나온 구절을 함께 제시한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고조선의 5천년이 아니라, 그보다 3천년이나 더 멀리 가는 8천년의 역사를 가지게 된다.

소설 속의 자료와 역사의 실제를 증명하는 실험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 때문에 김진명은 이 소설을 통해,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역사학 강의를 모든 한국인들에게 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왜 자신들이 한국인(韓國人)이라고 불려지는지 그 의미를 알 필요가 있을테니까...

재미 있을뿐 아니라, 가슴이 뛰는 소설이었다. 허망하게 남대문이 불타고, 오랜 식민지사관의 교육에 자기 나라 역사조차 헷갈리고 오해하는 현실의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뿌리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위로와 긍지가 마음을 흔들었다. 

더운 여름을 잊게 할만한 한 권의 책을 찾는다면, 그리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손에 잡을만 하다. 일단 잡으면 쉬이 놓지 못하겠지만, 놓았을 때에는 또한 많은 여운이 남을 것이다. 역사란 항상 그런 대상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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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국내도서>소설
저자 :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 / 강명순역
출판 : 열린책들 200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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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도 프랑스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쥐스킨트는 독일 사람이었다. 솔직히 그 점이 놀라웠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지었을 때, 독일어의 특성상 나올 수 없는 문학작품이 나왔다는 평론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독일 작가로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별로 없다. 무식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독일 작가의 훌륭한 작품이 드문 것이 사실이다.
쥐스킨트의 이 책은 놀랍다. 치밀한 구성, 사실적 표현, 심리의 묘사, 발군의 상상력까지... 하나의 작품이 뛰어난 수작이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대부분의 것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더우기 그것을 자기만의 역사 속에서, 자기만의 인물을 통해 창조해내는 능력은 읽는 독자를 황홀하게 한다.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무척 오래 되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이 1991년이라고 하니 당연하다. 아마도 2000년 정도에 한국어판이 나온 것 같다. 서재와 서점에서 흔히 눈에 띄면서도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다. 표지를 보면 추리수설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고 붙어 있다. 추리소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호하는 장르도 아니어서 늘 손이 다른 책에 먼저 갔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더스킨 호프만이 출연하는 영호고 개봉했다. 역시 이 영화조차 보지 못했다. 일상에 밀려 감상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책을 잡았다. 그것도 책이 없어서 컴퓨터 화면의 e-BOOK으로 읽었다. 하지만 흡인력이 발군이다. 눈을 옮길 수 없었고, 만 하루만에 다 읽어야 했다. 쥐스킨트의 글은 거의 파괴적이다. 정말 매력적인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르누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사이코패스이다. 감정적 동요가 전혀 없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간단히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괴물... 더구나 냄새에 대한 그의 특이한 기질은 그를 향수의 오타쿠로, 그리고 다시 마스터로 발전시켜 간다. 사람에게 능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좋은 사람의 능력은 아름답다. 그러나 나쁜 사람의 능력은 공포스럽다. 그르누이는 파리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난 곰팡이 같은 존재이다. 그가 더 열망하고 성취해 갈수록 누군가는 불행에 빠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다소 억지스럽고, 야만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쥐스킨트가 묘사하는 현실감에 푹 빠졌다가 이것이 픽션이며, 상상이라는 자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찾아 볼 생각이다. 그리고 책도 새로 구입했다. 가끔 이 매력적인 책을 꺼내서 다시 읽으며 냄새에 취할 것이다. 점점 전자책을 중심으로 세상이 변해 가겠지만, 아직은 종이냄새와 잉크 냄새가 나는 책이 나는 좋다. 그래도 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내가 읽었던 그르누이의 음험한 눈빛이 어느 그늘에선가 지켜보며 슬그머니 웃어줄 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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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소설
저자 : 히라노 게이치로 / 양윤옥역
출판 : 문학동네 199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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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이 독자를 빨아들인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전형적이라는 느낌이다. 번역된 책이라 그런지 고급 무협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
구성과 이야기는 매력적이지만, 이를테면 문학적인 내공을 읽을 수는 없다.
유럽의 작가들은 글에서 자유로움과 상상력의 힘이 느껴지고, 한국의 작가들에게서는 현실감과 감성이 여운을 남긴다.
일본의 작가들은 조밀함과 조금은 우울함, 내성적인 감성이 나름 그 특성이라고 읽는다.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인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마치 하나의 애니메이션이나, 기묘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의 내용은 되도록 배제한다. 읽을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할까...

그래도 일단 손에 잡으면 단숨에 읽혀지는 흡인력을 가졌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가볍다고 해야할까... 뭔가를 깊이 생각하며 음미해야 하기 보다는 그저 빨리 결말에 이르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막상 결말을 만나면 허전한 이야기... 그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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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훈
출판 : 문학동네 200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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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주(古今注; 진(晉)나라 최표)에, 조선의 진졸(津卒) 곽리자고(霍里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백수광부;白首狂夫)이 머리를 풀고 술병을 든 채 어지럽게 물을 건너려 하고, 아내는 뒤따라가며 말렸다. 그러나 남자는 끝내 물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 아내는 공후를 뜯으면서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가 너무나 애절했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도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와 아내인 여옥(麗玉)에게 그가 본 광경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여옥이 슬퍼하며 공후(箜篌)를 안고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사람이 모두 슬퍼했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麗容)에게 가르쳐 주고 널리 퍼지게 하였으니, 이를 일컬어 ‘공후인’이라 하였다.

-해동역사-

公無渡河 (공무도하)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임이 그래도 물을 건너시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당내공하)    앞으로 임을 어이할거나.

공무도하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서정시이다. 아마도 고조선 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수광부(白首狂夫)가 강을 향해 달려간다. 그의 아내는 물가에서 그 장면을 보며 구슬프게 만류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남편은 곧 물결에 휘말려 사라진다. 그리고, 아내의 노래는 강변에서 애처로운 통곡이 된다... 그리고 아내도 강에 뛰어들어 하나가 된다.
단조로운 것조차 오랜 세월은 상상과 창작의 동기를 이룬다. 백수광부는 왜 강의 건너편으로 가려고 했을까? 머리가 희도록 나이를 먹은 그에게 안전한 이편이 아니라, 위험한 저편의 무엇이 그리도 절실했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문정수라는 사회부 신문기자이다. 소설가 김훈이 젊은 시절을 신문기자로 살았기 때문에, 더없이 작가 자신을 잘 투영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고향처럼, 어머니처럼 그를 품어주는 노목희라는 여인이 있다. 이 둘이 결국에는 공무도하의 남편과 아내의 구도를 이룬다. 
그리고 소설의 시작부터 이어지는 물난리, 폭우 속의 사건들과 갯벌을 간척하여 육지를 만들면서 하나의 어촌이 분해되고, 진화하는 것으로 묘사된 고향, 해망은 모두 물의 이미지로 본래의 시와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마치 신문을 읽는 것처럼 지금을 묘사한다. 소설의 모든 사건들은 허구이면서도 현실이다. 그런데 묘하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던지는 언어들이 너무도 높고 깊다. 특별히 지적으로 묘사된 누구만이 아니라, 소설의 모든 인물들이 진중하게 입을 열고 닫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말이 결국 작가의 말이고, 작가의 말은 백수광부의 말이다.
공무도하가의 강 건너편이 피상의 세계라면, 어쩌면 작가는 소설을 통해 너무도 현실적이지만 그곳에서 치열하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모습을 창작함으로써 바로 그 피상의 세계를 그려내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작가 김훈이 그리는 피상의 세계는 완전한 무균실의 세계가 아니라, 무좀이 꾸물거리고, 발냄새와 몸냄새가 세상의 냄새와 섞이는 곳이며, 그 고통과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아내는 곳이다.
언어가 조밀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감에 치여 결말은 조금 허전하다. 글을 읽고나니 어떤 느낌이 향기처럼 오래 남았다. 

소설가 또한 사람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가 보는 세상을 향한 시선도 변해간다. 이 소설은 그래서 미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문학이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강 건너의 무엇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신문기사와 다를 바가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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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로맹 가리(Romain Gary) / 이주희역
출판 : 문학동네 201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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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의 책은 처음인것 같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은가?

책의 제목은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주인공의 애완동물인 비단뱀이다. 이미터 이십센티짜리 이 뱀을 주인공은 아프리카여행에서 데려왔다. 이 뱀은 주인공이 맺어지기를 원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고리이며, 동시에 파리에서 살아가는 모든 외로운 이들을 만족할 만큼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상징적 존재이다. 주인공의 심리는 병적일 정도로 고독하며, 그의 관점은 산만하면서도 독특하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작가는 그 산만함을 비단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뱀이 그리는 흔적처럼 뱀의 이야기는 지그재그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쿠쟁은 소심하며, 비겁하고, 그러면서도 열렬하다. 그가 존중하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여 사용하는 '창녀'라는 단어가 마침내 그의 '사랑'과 일치되는 것은 이 산만한 이야기가 그려내는 가장 그로칼랭다운 해피엔딩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작가는 지독했다. 책장과 책장, 심지어 말의 장난들 속에서도 외로움은 풍겨났다. 책을 빨리 읽어내고 덮고 싶을 만큼...
가뜩이나 외로움을 느끼던 때에 왜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어느새 그 지독한 외로움이 위안이 되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었을까... 쿠쟁의 외로움을 읽으며 그래도 나는 이 동경의 대도시 속에서 덜 외로운 쪽에 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경험이었다...
책을 덮고 저자에 대하여 살피니, 로맹가리는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멈칫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생각했다. 이 단절된 세상의 외로움이 주는 고통에 의한 타살... 비단뱀이라도 목에 칭칭 감고 잠들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허전함의 통증...
책 속에서 주인공 쿠쟁은 사람들로부터 '그로칼랭'이라고 불리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그로칼랭(비단뱀)과 자신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김춘수의 시처럼, 누군가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우리는 결국 그것의 존재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결국 진짜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의문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내가 나에 대하여 가지는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산 비단뱀에게 처음부터 이름이 있었을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로칼랭'은 비단뱀의 이름이며 동시에 쿠쟁의 이름이다.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이름 말이다. 대도시 파리, 천만 명의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에 떨었던 쿠쟁은 결국 '열렬한 포옹'을 갈망했고, 아무리 소심하고 나약해도 결코 살아가는 동안 그것을 한 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쿠쟁은 결국 작가 로맹가리의 그림자이다... 

이 책이 나처럼 당신에게도 외로움의 탈출구, 혹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로맹가리의 마지막처럼 권총이라도 자기 머리에 들이대고 싶은 충동을 가져올지도 역시 모르겠다. 이 책은 외로움처럼 허전하다. 그러나 가끔은 몸에 나쁜 줄 알면서도 불량식품을 먹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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