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노스텔지어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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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복잡하다. 그래서 지식인도 복잡하다.
이적요는 ‘고요함’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사용하는 일흔의 유명 시인이다.
서지우는 이적요의 제자이며, 실제로는 이적요의 글로 나이 마흔 무렵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은교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이적요의 집을 드나들게 되었던 동네 소녀(처녀)이다.
이 중에서 둘이 죽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서지우와 지병으로 죽은 이적요.
이들이 남긴 노트가 공개를 앞두고 변호사에게 읽혀진다. 그것이 이 책의 스토리이다.
책은 혼돈스럽다. 다수의 시가 삽입되고, 감정을 묘사하는 섬세한 표현들이 얽혀간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혼돈스러운 것은 심상(心狀)이다.
소설은 지식인의 감정 속에서 타부(Taboo)를 건드린다.
사랑, 시기, 살인,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지루한 변명들.
문학의 껍질 속에서 마치 모든 현실이 몽환적인 느낌으로만 다가오지만, 그러나 그 관능적인 언어들의 이면을 들추면 치열한 존재의 속살이 드러난다.
나도 글을 쓰지만, 글은 관념이다.
그 여실한 한계를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다. 결국 글로 표현되는 세상이란 글을 읽는 자의 주관과 경험에 기댈 뿐이다. 이런 생각을 나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글은 공허하고 고독하다.
작가는 이 책을 왜 썼을까?
문학과 문학계에 대한 비아냥, 아니면 점점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이면에서 어느 봄날 은교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살인의 충동을 가졌기 때문일까?
갑자기 서재에 앉아 글을 쓰는 작가와 작가의 글이 오버랩되곤 했다, 글을 읽는 중간중간에.
여름 하늘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燈籠). 새벽에야 책을 덮었더니 입안이 텁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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