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9 목양칼럼
요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안철수씨의 경험담이다.
대학시절 가난한 동네로 의료봉사를 나갔다. 열심히 진료했지만 환자들이 잘 낫지를 않아서 아직은 미숙한 학생들이 진료를 해서 그런 줄로 알았단다. 그런데 어느 날, 진료소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알약으로 공기놀이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의료봉사 차원에서 약을 공짜로 나누어주니 환자들이 약을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니 병도 낫지를 않았던 것이다.
결국 100원이라도 약값을 받았다. 그랬더니 자기 돈으로 산 약이라고 귀히 여기고 약을 복용했다. 얼마 후에는 환자들이 다 상태가 좋아져서 진료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고, 심지어는 두 세 시간씩 버스를 타고서 진료를 받기 위해 오는 환자들도 생겼다는 것이다.
공짜는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그 말이 하루 종일 마음을 눌렀다.
왜냐하면 내가 전하는 복음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죄’라는 지독한 질병에 빠진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께서 처방하신 생명의 약이다. 그런데 그 값이 너무 귀해서 사람이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공짜’로 나누어 주시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셨다. 그래서 복음을 은혜(=공짜)라고 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 약을 무시한다. 값진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알약으로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복음을 하찮게 여기고 당연시 한다.
세상에 당연한 은혜는 없다. 모든 은혜는 누군가의 희생과 선의가 담겨 있는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소홀하게 대우하는 사람은 부당하며 무례한 사람이고, 그런 자에게서 은혜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안철수씨는 그 은혜의 소중함을 알게 하기 위하여 100원의 상징적인 가격을 정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음에는 이런 설득이 불가능하다. 복음이 곧 은혜여야 한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너무 확고하셔서 인간적인 조작이 불허되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복음이 푸대접을 받더라도 복음을 통해 생명이 살아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끈기 있게 싸우도록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명령하셨다.
그런데 좌우를 살피면, 돌팔이 약장사들이 난장(亂場)을 벌인다.
목사에게 무조건 순종이라는 약값, 예배당 건축이라는 약값, 심지어는 나름대로 도덕적 삶의 규범들을 복음의 약값으로 둔갑시켜 팔아먹으니 오히려 공짜(=은혜)였을 때보다 장사도 더 잘 되고, 사람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 허탈한 현실을 뭐라 말해야 좋을까? 먹고 나으니(과연?) 다행인가? 아니면 결국에는 모두 불법을 행한 사람들이라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까 걱정해 주어야 할까?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 정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은혜는 값이 없는 것이지 값이 싼(저렴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 복음은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칙(rule)대로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복음은 엄격하다. 때문에 복음을 복음답게 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치열한 고민 속에 살수밖에 없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