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이름의 선물
2012-06-24 목양칼럼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자주 아프셨다.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며 그 머리에 젖은 물수건을 갈아드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철부지 간호가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인생의 풍파를 견디게 하는 큰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결혼 한 이후로 줄곧, 아내는 좌골신경통에 시달렸다. 오른편과 달리 왼편의 몸이 늘 저리고, 쑤시고, 결리고, 아파했다. 그 아픈 부위를 두드리고 주무르며 십구 년을 살았다.
누군가를 간호하는 것이 나의 운명일까? 그러고보니 내게는 항상 아픈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왔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와 격려로 희망을 주면서 정작 내게 있는 아픔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일이 좋지만은 않다. 궁시렁거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대단히 소모적인 일이다.
때로는 나도 정서적으로 바닥이 날 때가 있고 내 몸이 아플 때도 있으니 불평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요즘 내 몸이 아프다. 어깨, 특히 오른 쪽 어깨가 심하게 근육이 뭉치면서 묵직한 느낌과 두통, 어깨 결림, 팔의 저림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때에는 그 기분 나쁜 느낌이 거슬려서 잠을 설치고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무르는 사람이 주무름을 당하는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을. 주무르는 사람도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겠지만, 정작 아픈 사람은 낮도 밤도 편할 날이 없더라. 그래서 병(病)은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라 하지 않나.
남의 하소연을 귀찮아 하지 말아라. 고통하는 사람을 위해 손을 내어주는 것을 힘들다고 하지 말아라. 오죽하면 그러겠냐? 오죽하면 말이라도 그렇게 실컷 하려고 하고, 손이라도 그렇게 빌려달라 청하겠냐...
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감각의 병을 간혹 본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너무 건강해도 오히려 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삶에 도무지 걱정도 없고 고통도 없을 때에 사람은 오히려 고립되는 경우가 많더라.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통로를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관점에 갇혀서 남이 아프다고 울 때에, "왜 아픈데? 어디가 아픈데? 아프면 약 먹어!" 같은 쓸모 없는 말만 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약함이 곧 강함이라. 약함을 오히려 자랑하자'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고통을 가르치신다. 고통은 겸손함을 배우는 기회이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고통을 통해 내 안의 이기적인 담이 허물어지고 비로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게 되며,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픔을 통해서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우리의 자아가 문제이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는데도 그 기회를 불평만 하다가 날려버리는 미련함이 우리를 정말 아프게 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만나는 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그러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흔한 신유의 은사가 왜 신앙의 거인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을까? 왜 바울 같은 사람은 평생을 육체의 가시에 시달리며 살았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니까. 그냥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유가 있어서 주신 은혜니까. 우리도 그걸 깨닫고 살았으면 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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