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을 하지 말라고?
2014-07-19 돈 걱정을 하지 말라고?
목회를 성역(聖役, 거룩한 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목사는 늘 서재에 앉아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고, 항상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생각만 하면서 살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목사도 사람이고 화장실에 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비약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아직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가끔은 스스로도 그렇게 믿는 목사들, 혹은 목사 후보생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답이 없다. 너무 신령하고 거룩해서 감히 다가가기 힘든 아우라가 발산되는데, 마치 십계명을 받을 때의 시내산과 같아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역자로 25년, 목사로 10년을 지내면서 돈 걱정을 내려놓은 적이 별로 없다.
오래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혼하고 처음 받은 월급이 전도사로서 40만원이었다. 아내는 자기가 받던 용돈보다 적은 나의 월급을 손에 받아 들고서는 그야말로 할 말을 잃었다.
그 때부터 시작된 '돈'과의 싸움은 지금까지 내 삶의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내게는, 매달 생활비는 물론 이국땅에서 감당해야 하는 야칭(임대료)과 공과금도 쉬운 적이 없었다.
돈은 만만하지 않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자연의 생산물은 태어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죽고 썩어서 순환하는데, 그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이 '돈'의 등장이다. 결국 돈은 탐욕을 낳고, 탐욕은 경제적 불평등을 극대화시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라는 것은, 몰염치의 결실을 의미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에게 미안함을 갖고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잔혹한 방법을 동원하여 적게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부요함을 계속 늘려가려 하는 경향성이 사회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돈은 양심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때문에 돈과 관련해서 양심을 지키고 실천하는 문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자기 점검과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 하겠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돈이 '목사'라고 봐주겠는가!
목사는 쌀이 떨어지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나? 목사는 교회 야칭(임대료)를 몇 달 밀려도 기도의 힘으로 간과(passover)되는가?
좋다, 목사야 운명처럼 그런 가난을 받아들이며 산다고 치자. 그 가족도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교회 중에서, 돈의 고민을 완전히 벗어던진 교회는 아직 보지 못했다.
작은 교회는 나처럼 '생활'과 '생존'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더 '큰 돈'의 무게에 눌려 목사와 교우들이 '함께' 고민하는 것이 현실이더라.
돈은 결국 싸움의 대상인 것 같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혹은 돈이 완전히 사라지는 또 다른 세상이 도래하기까지는, 그저 그 돈과 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경쟁하며 부침(浮寖)을 반복하는 과정을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이상 돈에 대한 갈망, 염려, 애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그것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과 싸우는 과정이 나름 귀한 것이다. 그리고 돈의 세상에서 돈을 이기는 법을 듣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교우들의 마음이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동전 하나를 연보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감탄하셨다.
그 동전이 그 여자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얼마나 가난한 형편이며, 얼마나 큰 믿음인가!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보라. 가난하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수입이 없는 것이다. 돈 벌기가 힘든 부류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과부의 동전은 어디서 나왔을까? 길에서 주웠을까? 그래도 좋았겠지만, 예수님의 감탄은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그 동전 속에서 상상하게 한다.
동전 하나를 벌어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과부는 무엇을 했을까? 그 동전에 스며 있는 눈물과 한숨과 설움과 아픔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돈을 색깔과 숫자로만 본다면, 돈처럼 허무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돈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돈이야말로 사람에게 도풀갱어와 같은 자기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돈이 걱정이다. 돈에 돌아버릴까 걱정이다. 나의 교우들이 양심을 팔아 돈을 벌까 걱정이다. 내가 양손에 받아 봉헌하는 헌금주머니에 피도 눈물도 없는 돈이 섞여 들어올까봐 걱정이다. 돈이 교회에서 하나님 자리를 차지할까봐 걱정이다. 돈이 사람을 핍박할까봐 걱정이다. 목회를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돈에 의존하여 하는 목사가 될까봐 걱정이다. 돈 때문에는 우는데 사람 때문에는 울지 못하는 목사가 될까봐 걱정이다. 돈의 전염병에 걸려 만족을 모르는 우리가 될까봐 걱정이다...
돈과 무관한 목회는 이상이다. 결국 교회도 돈과 겨루지 않을 수 없다. 돈의 배후에는 욕망이 있고, 욕망의 배후에는 죄가 있다. 신앙은 이 본질을 캐고 끊어내야 한다. 그것이 목회이고, 그것이 교회의 능력이다.
점점 극단적인 자본주의에 물들어, 내가 번 돈은 완전히 나를 위해서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괴물들'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교회는 돈과 돈을 버는 방법과 돈에 관계된 사람들을 위해 고민해야만 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돈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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