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치(人治)의 시대를 기다리며
오늘 노회찬 의원이 대법원의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렸는데, 그 사실이 폭로되었다. 하지만 정보보안을 이유로 국회의원만 그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민의 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노회찬 의원은 그 명단을 공익을 위해 공개했다.
그런데 이상한 재판이 진행된다. 떡값을 준 삼성도 무죄, 떡값을 받은 검사도 무죄… 하지만 그 명단을 공개한 국회의원과 그것을 보도한 언론인은 유죄.
이 비상식적이 판결이 오늘,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까지 받았고, 그래서 노회찬 의원은 국회에서 쫓겨나야 했던 것이다. 참 몰상식의 시대라고 탄식하게 된다. 정녕 부끄러움도 모르나?
중용(中庸)에 애공문정(哀公問政)이라는 대목이 있다.
공자가 70세쯤 되어 노(魯)나라에 돌아왔을 때, 당시의 군주가 애공이었다.
애공은 10대에 치세를 시작하여 이미 10년쯤 나라를 다스렸고, 이제 20대에 들어선 청년이었다. 애공에게 있어 공자는 스승이었고 국부(國父)였다.
예를 다한 물음은 이것이다.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바르게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구하였던 솔로몬의 기도가 생각나는 물음이다. 청년이 허튼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군주(君主)이면서도 학생(學生)의 자세를 가졌으니 애공은 좋은 군주요, 애공과 같은 군주를 둔 노나라는 참 복된 나라임에 틀림 없다.
늙은 공자는 그 평생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한 마디로 이렇게 대답했다.
文, 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 則其政擧, 其人亡, 則其政息
문, 무지정, 포재방책, 기인존, 즉기정거, 기인망, 즉기정식
“문, 무왕의 바른 정치는 이미 책에 널려 있습니다. 그 사람[其人]이 있으면 정치는 일어나게 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정치는 탄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기인(其人)은 중용의 덕을 구현한 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정치는 사람의 문제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이 가르침을 가리켜 인치(人治)의 표방이라고 말한다.
서양이 역사를 통해 표방하고 발전시킨 것이 법과 제도를 통한 통치[=법치(法治)]라면, 동양은 그 법과 제도의 위에 ‘사람’을 두고 바르게 정치할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해 고심했던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 사람(其人)’을 향한 애타는 목마름을 품게 한다.
수많은 노동자와 시골 촌부들이 거탑에, 종탑에, 크레인에 올라가 매서운 겨울을 나고 있다. 가진 자들의 탐욕은 도를 넘어서,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을 궁지(窮地)와 사지(死地)로 몰고 있으며, 그럼에도 일말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공영방송의 사장은 파렴치한 사생활과 공금횡령이 명백한데도 여전히 버티고 있으며, 헌법재판소의 소장으로 내정되었던 사람 역시 공금을 내 주머니 돈처럼 여기던 과거가 들통나도 버티다가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새 정부의 총리후보도 지명되자마자 검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민족의 존립이 극한 위기에 처했는데도, 대통령은 그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과 부인에게 스스로 훈장을 수여하는 그 짓을 꼭 그날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그리고 다음날, 사저문제로 대통령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이 돌아가게 했던 청와대의 가신들이 법원에서 유죄를 판결 받았다. 이게 그들이 받을 판결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받을 판결인가? 이런 판결을 받으면서도 자신에게 ‘훈장’을 운운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는가?
삼성과 그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수많은 검사들을 무혐의로 처리했던 사람은 새로운 정부의 법무부장관으로 간택되어 임명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법원은 일관되게 시민적 정서와 상반되는 판결로 법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
제도는 민주주의요 법은 그대로지만, 우리는 마치 꿈 속과 같은 상황을 보고 있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이 없으면 정치는 탄식으로 변하게 된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큰 울림으로 이 현실에 살아나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렇게 안 해도 이미 충분히 누리며 살아갈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 탐욕의 정점을 향해 치달아, 사회의 기초를 흔들고 모두와 함께 망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질주하는 이 시대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 시대의 심판을 결정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마저 마음에 든다.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그 직책의 이름 이전에 사람다운 사람이어야 한다. 목사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먼저 되지 못하면 결과는 참혹하다. 그들이 어떤 거창한 비전을 들고 나오든지 간에, 그 열매는 ‘탄식’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뿐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위해 가슴 치며 울 뿐이다. 간절한 소망 가슴에 품고서 ‘사람다운 그 사람(其人)’을 기다릴 뿐이다.
부디, 너무 늦지 말기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내 조국 대한민국에 그 아름다운 사람, 요셉 같은 사람, 다윗 같은 사람이 제발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새벽을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연하건데,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죄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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