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여기가 네 자리다
세우신 곳에서
춥고 외롭고 떨리는 밤을
무수히 맞았어도
어둠은 아직 그대로
바람은 내 곁을 휘돌아만 갑니다
멀리 보이는 광장에는
무수한 빛이 마주 서 도열하고
외롭지도 춥지도
않을 것만 같은데
나는 왜 이런 곳에 세우사
이렇게 청승맞게 하셨습니까
내 곁에도 사람들을
떠들고 뛰어 놀 아이들을
무수한 그림자를
푸른 잎사귀의 가로수를
허락해 주옵소서
목 놓아 울며 원했던 것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새벽이 찬란하게 밝아오면
내 초라한 몸둥이는
오히려 긴 그림자를 흔들며
꺼져 갑니다
나를 세우신 자리에서
내게 부탁하신 인내를 배우고
당신 때문이라고
내가 살아 빛났던 순간이
기둥 같은 당신 때문이라고
마지막 말을 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광장보다는 어두운 이곳에
당신이 염려하고
안스럽게 사랑하는 이들이
몇몇 있다는 것을
그들을 위해 나를 세우신
그 가슴 뻐근한 사랑을
이제는 같이 앓고 있습니다
하여, 원망은 없습니다
남겨진 소원이 있습니다
그 찬란한 새벽을 기다리며
내 불안한 빛을 꺼뜨리지 않는 일
다시는 부러워하지도
내 어둠에 갇혀 절망하지도
않는 일
당신이 붙여주신 이름답게
빛다운 빛으로
살아남아서 내 섬기는 그들의
앞길을 어둠 없이 밝히는 일
그것만이 이 밤에도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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