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하시모토, 그리고 여자
윤창중, 하시모토, 그리고 여자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에서 사람의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으로부터 3500 여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내용으로는 대단히 파격적이다.
고대사회에서도 간혹 모계사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메이저문화는 남성우월적이었고 이것은 창세기 자체에서도 줄곧 드러나는 특성이다.
심지어 예수님 당대에까지 랍비들은 공적 기도문을 통해, 이방인과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고 남자들에게 가르쳤다. 여자는 깨닫지 못하며, 질투와 탐심이 많고, 아담을 죄로 유혹한 열등한 존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런 인간의 문화를 배격한다. 단지 이 한 구절을 놓고 보기에도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담겨졌다. 남자와 여자는 '사람'이라는 보통 명사 안에서 평등하다. 그것은 남자들이 손으로 가리고 싶었고 가렸던 성경의 선언이다.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국 대통령이 당선의 첫 걸음으로 미국에 달려갔다. 왜 꼭 그렇게 미국이 처음이 되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는 유감스럽다. 마치 명나라의 그늘에 섰던 고려와 청나라의 볼모가 되었던 조선을 보는 것 같다. 미국은 대국이고 우리는 소국이니, 미국에서 인증을 받아야 비로소 한국 대통령이 되는 것인가?
하지만 분단된 현실과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가지는 비애쯤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자. 뽑는 과정에서야 반대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선출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얼굴이고 우리의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누군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대통령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낙점한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서. 이 사람 이전에 방송에 나와 하는 말을 보면, 과연 이 사람이 청와대 대변인 깜인지 아니면 뒷골목 왈패깜인지 혼돈이 생기더라. 그러나 그것도 넘어가자. 사람 속을 누가 다 알겠는가? 열 가지 단점이 있어도 한 가지 장점을 찾아 사용하는 것도 좋은 윗사람의 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다. 이건 왈패도 아니었다. 왈패들도 꺼리고 혐오한다는 협잡꾼이다. 오십이 넘은 남자가 21살 여성에게, 그것도 막강한 권력을 배경으로 성폭력을 행사했다. 그 과정은 심지어 돌아오는 비행기에 마일리지 정립한 것까지 세세히 까발려지는 현실이니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이 인간이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21살 여성을 무능력하고 작은 일을 침소봉대하려는 사람으로 매도했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가 속했던 청와대에 책임을 미루면서까지 자기는 책임감 있고 이성적인 사람인 척을 하려고 했다.
인간아, 인간아... 껍질만 사람의 형상이라고 사람이 아니다. 네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은 과연 어디다 팔았느냐? 네가 알몸으로 호텔에서 문을 열어줄 때에, 네 권력이 하늘을 가려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은 그 순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일본 오사카 시의 시장인 하시모토는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패기 있는 주장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무능력의 늪에 빠진 일본 정치를 구원할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심지어 그를 차기 총리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직 전국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지만 일본 정치인 중에서 그 만큼 영향력을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가 이번에 2차세계대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극단적 발언을 했다. 전쟁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군인들에게는 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위안부 문제를 '필연적인' 전쟁 과정으로 합리화시킨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들이 일본 사창가를 많이 애용해주면 좋겠다는 발언도 했다. 극우의 아이콘이라고는 하지만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다. 당장 극우적 인사들조차 난감한 표정으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좋은 정치인을 가지는 복은 없는가보다.
물론 민족간의 역사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당면한 경제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인권에 대한 문제이다. 만약 인권이 세워지지 않으면, 경제가 발전해도 사람이 부속품으로 전락할 것이며, 국가간의 관계가 증진되어도 그것은 상류층을 위한 치장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 정치도, 경제도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그 기초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가? 외국에서 자랐지만 고국의 대통령이 왔다고 해서 그 도움을 위해 인턴으로 나선 21살의 여성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그녀는 아마도 정치적 인생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는 치한을 만났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이상하고, 비열하고, 최악의 치한을 만났다.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과연 그는 그 권력을 가지고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아마도 국내에서는 훨씬 많은 21살의 여성들이 그의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다.
차라리 종군 위안부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그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은 아는 것이다. 부끄러우니까 가리고 지우려고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위안부가, 성노예가 필연적인 아이템이라니... 그리고 외국 군대에게 자기 나라의 사창가를 애용해 달라니... 이런 사람이 만약 일본의 총리가 된다면, 과연 일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적어도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서 수없이 희생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얽혀 있다. 여자가 희생양이 되는 것이 과연 남자들의 행복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부인이 그렇게 당하는 사회가...
우리는 3500년 전에 성경이 이미 말해준 진리도 아직 수용을 못했다. 그 현실이 참담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계속 떠드는 당사자와 주변인들이 나라를 이끈다고 하는 것이 너무도 유감이다. 정말 말해주고 싶다. 그 입 좀 다물라. 하나도 잘한 일이 없으면서 어떻게 자기가 억울한 사람인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가?
정치가 희망을 주기는커녕 사고나 안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국과 일본에 모두 만연하다.
격랑처럼 흘러가는 현실에서 먹고 살기도 힘들고 빠듯한데, 잘 살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거짓말을 하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자기만 아는 협잡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정체가 밝혀질 때에는 그 배반의 상처는 오래오래 좌절과 무력감으로 남는다.
그래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단호하고 엄중해야 한다. 말에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하고, 다시는 헛소리를 못하게 하든지, 아니면 계속 헛소리를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기필코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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