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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초고령사회이다.
노인들이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데,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것이냐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솔직히, 청년들은 자신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서 노인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는 것 같다. 
그 갈등이 의외로 ‘코로나19’ 위기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아래는 3월2일의 글이다. 


비슷한 것으로 더 최근(3월21일)의 페이스북 글이다. 


주목할 것은 ‘좋아요’가 7만이나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는 갈등을 빚었다. 서로 시야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갈등의 수준을 지나 충돌의 지점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은 슬프고 걱정스럽다.

‘고려장’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것은 본래 고려의 풍습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한국의 역사를 비하하기 위하여 날조되었다는 의견은 참고할 만하다. 
가뭄과 기근이 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청년과 아이들을 살리기 위하여 노인들을 산에 버려 희생시켰다는 이야기는 미개하고 끔찍하게 들린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19의 쓰나미에 노인들이 쓸려가서 일본의 청년들이 부담을 좀 벗으면 좋겠다는 주장은, 정확하게 이 ‘고려장’의 구도와 닮아 있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을 과연 ‘부담’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노인문제가 자꾸만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녀가 부모를 방치하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최선을 다하여 섬긴다면, 국가는 불우한 노인들에게 보다 집중하여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가족이 해체되고, 문제가 있는 가정이 아닐지라도 자녀가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노인복지는 더 강화될 필요가 생기고, 이제 보편적으로 모든 노인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슬픈 사실은 거기 드러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이 살다가, 돌아가시면 그제서야 슬픔으로 후회하는, 그리고 묘지를 이쁘게 꾸며서 효도를 못한 자기를 위로하는 어리석은 행태이다. 
20~30대의 청년과 40~50대의 장년은 노인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이를 조금이라도 먹으면, 자기도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돈’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배운다.

그래, 좋다.
아마 바라지 않아도 코로나19는 많은 노인들을 데려갈 것이다. 그들은 더러 먹기만 하고 운동도 할 수 없는 중증의 환자들일 수도 있고, 치매에 걸려 자기 자식도 몰라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 삶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런 노인들에게도 자식과 손자가 있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에게는, 밥만 축내거나 쓸모 없는 노인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이고 ‘할머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기억의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어릴 적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나이가 들어서도 찾게 되고, 어려서 받은 사랑은 나이가 먹어서도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배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지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무가치하다고 다 버리는 사람은 결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가질 수 없으며, 자신의 인간성을 건강하게 보존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제목이 지니는 인상이 깊었다. 그 제목만으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실에서 ‘과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노인을 지우고 우리가 도달하려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청년들의 어깨가 가벼워진 미래? 과연 그것뿐일까? 우리는 노인들과 함께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노인들과 함께 우리의 추억과 성장과 안정감을 다 지우게 되지 않을까?
코로나19라는 전염병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부모도 없는 자식으로 변해가게 하는 ‘돈’의 탐욕이다. 그 저주가 나는 전염병보다 더 정말 무섭다.

P.S. -- 

우리의 노인들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쟁에 부름을 받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들의 구원을 위해 이 쇼파에 앉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 "나는 (인류의) 인간성을 테스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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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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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val Noah Harari: the myth of freedom

- www.theguardian.com


(1)

학자는 오직 진실에만 충실해야 할까요? 설사 그 진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아니면 사회 질서가 유지되도록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나는 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에서 자유주의(liberalism)와 관련해 바로 이런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자유주의에 오류가 있고 이 이론이 인간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는 여전히 오늘날 세계 질서의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특히 종교와 민족 근본주의라는, 훨씬 더 위험하고 해로운 오래된 이념의 공격을 자유주의는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선동가와 독재자들이 자유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내 의도와 무관하게 내 주장을 사용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고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를 감안해 자신을 검열해야 할까요? 자신의 영역 밖에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편협함의 상징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퍼질 때, 우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냉철한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힘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이 자유주의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검열 보다는 자유로운 토론을 택했습니다. 자유주의는 다른 이념보다 더 유연하고 덜 교조적이라는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다른 어떤 이념보다도 비판을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그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허용하는 유일한 이념입니다. 자유주의는 이미 세 번의 큰 위기, 곧 1차 세계대전, 1930년대 파시스트들의 도전, 그리고 1950년에서 70년대까지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을 겪었습니다. 지금 자유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1918년, 1938년, 1968년의 위기가 얼마나 컸는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1968년, 자유민주주의는 거의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내부에서 폭동, 암살, 테러 공격, 그리고 첨예한 이념 갈등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한 날 워싱턴에서 일어난 폭동이나 1968년 5월의 파리, 그리고 1968년 8월 시카고에서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 있었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워싱턴, 파리, 시카고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는 조용했고,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년 뒤 붕괴한 것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였습니다. 1960년대의 혼란을 겪으며 자유민주주의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위기 또한 자유주의가 이겨낼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주의가 겪는 위기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혹은 마치 비가 내린 뒤 여기 저기에서 우는 개구리처럼 전세계 곳곳에 등장한 선동가나 독재자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실험실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인간이 가진 자유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쥐나 원숭이와 달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집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의 감정이나 선택에 궁극적인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자유주의는 투표권자가 최선의 결과를 알고 있으며, 고객은 언제나 옳고,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


하지만 “자유의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기독교 신학이 만든 신화일 뿐입니다. 신학자들은 어떻게 신이 죄인을 벌하고, 성자에게 상을 줄 권리가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발명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신이 우리에게 벌을 주거나 상을 줄 이유가 없을 겁니다. 신학자들은 바로 우리의 선택이 어떤 물리적, 생물학적 속박과 무관한 우리 영혼의 자유에 의한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신이 우리를 벌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에 대해 신학자의 설명과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인간은 분명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의지는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욕망을 가질지 결정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내성적일지 외향적일지, 순할지 까칠할지, 동성애자일지 이성애자일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선택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생물학적, 사회적, 개인적 조건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정할 수 있고, 누구와 결혼할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지 선택할 수 있지만, 이러한 선택은 자신의 유전자, 생화학적 조건, 성별, 가족력, 자신이 속한 문화권 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자신이 어떤 유전자를 가질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날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며,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한 번 기다려봅시다. 그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무엇을 떠올릴지 당신은 선택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할지에 관해 당신이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생각할지, 무엇을 느낄지, 무엇을 원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될 겁니다.


이 “자유의지”는 비록 항상 신화였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 이 신화는 인류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덕분에 사람들은 종교재판관 혹은 신으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믿어졌던 국왕, 또는 KGB나 KKK와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 신화를 유지하는 데는 큰 비용도 들지 않았습니다. 1776년이나 1945년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선택이 생화학, 뇌과학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자유의지”의 결과라 믿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이제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의식을 해킹하는 데 성공하게 될 경우, 가장 조종하기 쉬운 상대는 바로 이 자유의지를 믿는 이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대로 해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바로 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강력한 컴퓨터 성능입니다. 종교재판관이나 KGB는 생물학 지식도,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기업과 정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게 될 것이며, 일단 그들이 인간을 해킹하는 데 성공하게 될 경우 당신의 선택만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 또한 그들의 조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당신을 완벽하게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지 당신 자신보다만 당신을 더 잘 알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기존의 자유주의 이념을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러한 주장을 쉽게 무시하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유전자나 뉴런, 알고리듬보다도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진정한 내가 있으며 따라서 누구도 인간의 정신을 해킹할 수 없습니다. 내 선택은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고, 누구도 내 선택을 예측하거나 조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과학적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믿음을 지닌 당신은 더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말 뿐입니다.


이미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눈에 띄는 기사 제목을 보게 됩니다. “이민자들이 여성을 강간했다.” 당신은 이 기사를 클릭합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이웃은 다른 기사 제목을 보게 됩니다. “트럼프는 이란에 핵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이 기사를 클릭합니다. 이 두 기사는 모두 가짜 뉴스이며 러시아의 트롤, 혹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광고 수익을 올리하는 어느 인터넷 언론이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당신과 당신의 이웃은 그 기사를 자유의지를 따라 클릭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두 사람은 모두 정신을 해킹당한 것입니다.


물론 선전과 조작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선전이 무차별 폭격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정밀한 유도탄처럼 행해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라디오를 통해 연설할 때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출 수 없었고, 따라서 모두가 동의할 최소한의 공통 분모만을 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선전과 조작이 가능해 졌습니다. 알고리듬은 당신이 이민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이웃이 트럼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기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 바로 이 작업, 사람들의 뇌를 해킹해 기사를 클릭하고 광고를 보게 만들며, 물건을 사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물건만이 아니라 정치인과 이념 또한 팔고 있습니다.


이는 시작일 뿐입니다. 아직 해커들이 분석하는 신호와 행동은 바깥 세계의 정보로 당신이 무엇을 사고, 어디를 가고, 어떤 단어를 검색하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몇 년 이내에 생체인식 센서는 해커들이 당신의 내적 세계에 접속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당신의 마음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주의라는 판타지가 애정해 마지 않는, 마음이라는 은유를 가진 심장은 그저 당신의 뇌 활동에 피를 공급하는 근육 펌프로 격하될 것입니다. 해커들은 당신의 심박과 신용카드 사용을 연관지을 것이고, 혈압과 구글 검색 내용의 관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종교재판관이나 KGB가 당신의 기분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생체인식 팔찌를 가질 수 있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자유주의는 억압적인 정부와 편협한 종교로부터 독립적인 개인을 지킬 수 있는 훌륭한 논리와 제도를 만들어냈지만, 개인의 자유라는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곧 “개인”과 “자유” 두 개념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21세를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대 계몽 시대의 유산일 뿐 아니라 기독교의 유산이기도 한 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순진한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은 해킹될 수 있으며 곧 타의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는 새로운 조언이 아닙니다. 고대의 철학자와 성자들은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시대나 부처, 공자의 시대에는 당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충분히 잘 알지 못해도, 여전히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정부와 기업은 당신을 해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 자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게 된다면, 이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어떤 것이든 곧 그것이 제품이든 정치인이든 당신에게 팔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의 약점을 아는 것은 특히 중요합니다. 약점은 그들에게 당신을 해킹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안내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해킹은 코드 상의 오류를 이용해 이루어집니다. 인간에 대한 해킹은 인간이 가진 공포, 혐오, 편견, 그리고 욕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해커들은 공포나 혐오를 그저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면 그 감정을 적절히 자극해 무척 쉽게 이를 더 큰 공포로 키워낼 수 있습니다.


순전한 노력으로 자기자신을 잘 알기 어렵다면, 해커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기술을 이용해 자신을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백신 프로그램이 바이러스를 막아내듯 우리에게도 뇌를 위한 백신 프로그램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당신의 인공지능 비서는 당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 그것이 유쾌한 고양이 비디오든, 짜증나는 트럼프 이야기든간에 – 파악해 당신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막아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정말 조종 가능한 동물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선택과 의견이 우리의 자유의지가 아니라면, 정치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 300년 동안 자유주의자들은 가능한한 많은 개인이 가능한한 자신의 꿈을 추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좇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정치적인 이상으로 삼아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꿈을 이루게 될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순간도 동시에 눈앞에 와 있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꿈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들어준 바로 그 기술에 의해 정부와 기업은 사람들의 꿈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 꿈이 진정한 나 자신의 꿈인지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발견이 인간에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자유를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그 욕망을 실현할 자유를 추구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간에 우리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이 생각과 감정, 욕망이 진정한 자신의 자유의지의 결과라 믿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욕망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주의깊게 지켜보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왜 이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라고 묻게 된다면 어떨까요?


일단 자신의 생각과 욕망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우리는 이에 덜 얽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 보고 자신의 욕망이 새상과 무관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다른 개체와 다른 존재로 생각하게 됩니다. 곧, 자신은 독립된 존재이며 따라서 나머지 세상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될 뿐더러, 자신의 변덕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기게 되어, 자신이 이 우주에서 가능한 모든 욕망 중에 바로 그 욕망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다른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종하고 바꾸도록 노력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덕에 기반해 전쟁을 일으키고, 숲을 태웠으며, 생태계를 파괴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욕망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그 욕망을 덜 추구하게 될 것이며 또한 나머지 세상과 더 연결된 느낌을 가질 수 있게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자유의지” 개념을 버리게될 경우 감정이 없는 존재가 될 것이며, 막다른 골목에 갇혀 멸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유의지” 개념에 대한 포기는 두 가지 반대되는 효과를 불러옵니다. 첫째, 우리를 나머지 세상과 더 강력하게 연결하며, 이웃과 주변 환경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이와 대화할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되며, 이때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말할 기회만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옆으로 제쳐둘 때 우리는 갑자기 다른 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둘째, “자유의지” 신화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심오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욕망에 매달리는 사람은 자신을 더 잘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야, 그저 뇌의 생화학적 변화일 뿐이야!”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됩니다. 이는 모든 인류 각자가 반드시 거쳐야 할, 가장 힘들고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


자유의지에 대한 의심이나 인간 본성에의 탐험은 아주 오래된 주제입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런 주제를 두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이제 모든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철학의 문제였던 것이, 이제 공학과 정치에서 다뤄야 할 실용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철학자들이 자신들이 하던대로 이 문제를 천천히 생각하는 동안 – 그들은 한 주제로 어떤 결론 없이도 3천 년을 논쟁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 공학자들은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급한 이들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인간을 해킹할 수 있게 된 이 시대에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유권자의 선택이 최선이다” 혹은 “고객은 언제나 옳다”와 같은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이 해킹될 수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 당신의 지지가 정부의 조종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 당신의 편도(amygdala)가 푸틴을 위해 일하고 있고 당신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아는 알고리듬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당신이 깨닫게 될 때 당신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흥미로운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대개 이런 질문을 여전히 피하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라는 환상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탐험하기보다 더 오래된 환상이 제공하는 피난처를 찾아 숨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생체공학의 도전에 응전하기보다 자유주의보다도 더 과학적 현실과 거리가 먼 종교적, 민족적 환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적 모델을 찾는 대신 20세기 혹은 더 오래된 사상의 찌꺼기를 다시 모으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억 속 환상에 젖어있는 나라에서는 성경의 진실성이나 민족의 신성함(특히 당신이 나처럼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면)에 대한 논쟁을 보게 됩니다. 학자로써 이는 정말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성경은 볼테르의 시대에나 의미 있는 학문이었고, 민족주의는 20세기 최신 사조였습니다. 하지만 2018년인 지금 이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심각한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인공지능과 셍체공학은 진화 과정 자체를 바꾸고 있으며, 이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십 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천 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두 가지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합니다. 먼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더 인간적인 정부를 가진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일 뿐 아니라, 또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가장 제한을 덜 가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자유주의의 전통적인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21세기의 과학적 진실 및 기술의 진보와 일관성을 지니는 새로운 정치적 시스템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여신 테티스를 두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테티스가 그의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이 내려지자 모두 테티스를 포기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세상을 지배하고 싶었기에 그들과 경쟁하게 될 더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테티스는 인간인 펠레우스 왕과 짝지어졌고, 아킬레스를 낳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손이 더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이 신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권력을 영원히 가지려는 지배자는 자신을 밀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탄생을, 설사 그 아이디어가 자신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해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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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작가 추도사

추도사가 아니고, 노회찬 대표님께 짤막한 편지를 하나 써왔습니다.

써온 대로 읽겠습니다.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는 못 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볼게요

형!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

그리고 가끔씩은 물 맑은 호수로 저와 단둘이 낚시를 가기로 해요.

회찬이 형.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어요.

다음 생은 저도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때는, 만나는 첫 순간부터 형이라고 할게요.

잘 가요, 회찬이 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


■ 영화배우 박중훈씨 추도사

저는 노회찬 의원님을 유권자이자 팬으로 알았습니다. 14년 전 지인의 소개로 알았습니다. 형님, 아우하면서 서로 잘 지냈어요.

평소에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을 잘하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하고, 말잘하는 사람보다는 글 잘쓰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저에게 일러주셨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각 노회찬 의원님을 따르고 형님으로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떠나서 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초지일관 일생을 던져서였습니다. 수년 전 같이 선거운동을 하다 너무 과로하시는 것 같아 ‘형님 좀 쉬시죠, 쉬시고 하시죠’ 했더니 그 와중에도 웃으시면서 ‘아우, 휴대폰 배터리가 다 방전된 다음에 충전하는 걸세. 나는 유권자 여러분에게 내 휴대폰 배터리를 모두 쓰고싶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신 적도 많았지만 누가봐도 되지도 않을, 이기지 않을 선거에서 만나서 말씀 드리면 ‘아우, 나는 초등학교 반장선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진적이 없다네.’ 근데 진 적 많았거든요.

얼마전 가장 최근에 뵌 것이 1월, 지인과 함께 소주 한잔 했습니다. 그때 제가 웃으면서 우스갯소리로 ‘형님 왜이렇게 잘 생기시고 멋있어요’ 했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농담으로 받아주시며 ‘내가 원래 멋있고 잘생겼어’ 하시면서 여유롭게 웃어넘기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것이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렇게 여유롭게 농담을 던지지만, 혼자서 외롭고 힘든시간을 보내셨다 생각하니 마음이 메입니다. 제가 형님에게 문자를 보낸적이 있어요. 길지 않은 문자였는데 ‘형님 오랜만입니다. 전 형님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마지막으로 형님께 한 말씀 드리고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저 중훈이에요. 듣고 계시죠? 이제 겨울에 뜨거운 굴국밥 누구랑 먹습니까? 형님 그리워요. 더 절망스러운건 이 그리움이 점점 더 커질것같아요. 형님 이러시면 안돼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이자리 모든 사람과 함께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 김승하 KTX승무원 해고자 추도사

안녕하십니까 KTX 해고승무원 김승하입니다.

KTX 승무원이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 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상시적으로 필요한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겠다는 공기업의 태도가 12년 동안이나 용인 되어 온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회찬 의원님이 전하시려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육성으로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KTX 승무원의 해고 투쟁, 4526일, 그 시작과 끝에 함께 해주신 저희들에겐 항상 따뜻한 삼촌 같으셨던 분, 노회찬 의원님은 늘 소수 약자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강자와의 싸움에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머와 품위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님은 우리를 지키려고 평생 살아오셨으나, 우리는 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이제 의원님이 남기신 뜻,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모여 펼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

항상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모습 기억하고, 그 뜻 이어가겠습니다.

대신 그곳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 이정미 정의당 대표

사랑하는 당원여러분, 그리고 노회찬 원내대표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 해주신 시민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장례식은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조문객을 맞으면 그들의 신발을 내내 보게 됩니다. 잘 닦여진 구두도 있지만, 낡고 닳은 작업화에, 어떤 이는 절을 할 때 뒤꿈치가 헤어진 양말을 신었습니다. 살아생전 구두 한 켤레로 사시사철을 지내며 낡고 닳은 구두를 신고 다닌 대표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분들이 그저께 멋지고 세련된 구두 한 켤레를 대표님 영전에 놓고 갔습니다. 대표님이 신으시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살아계실 때 저런 구두 한 켤레 못 사드린 게 내내 억이 막혀옵니다.

남녀노소, 직업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와 주셨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삼성반도체 반올림 가족들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정부 관계자와 사법부 여러분, 그리고 많은 정치인들께서도 다른 시민들과 똑같이 순서를 기다려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상임 장례위원장으로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어느 언론에서는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있고, 기업인도 있고, 청소부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노인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고...이런 장례식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장례식장의 모습은 노회찬 원내대표가 평생 꿈꾸던 세상과 닮아있습니다.

노회찬은, 박정희 군부 독재에 맞서 휴학을 주도했던 고교생에서, 노동자 해방 세상을 위해 인천으로 향했던 용접공, 그리고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이 되기까지, 누구나 존엄한 평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우리 사회 약자들의 길벗이었습니다. 격한 정치 현장에서도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견이 다른 이들조차 그의 말이라면 경청했습니다.

이런 노회찬을 보고, 많은 분들이 진보정치의 아이콘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노회찬은 홀로 빛나는 별이 되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켜야할 고단하고 약한 사람들의 곁에 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노회찬은 정치인으로서 사수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으로 저에게 선출직 출마를 권유했고, 진보정치의 매순간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고난도 즐거움도 함께 했습니다. 제가 2년 전 국회의원 당선이 되었을 때 노회찬 원내대표가 전화를 걸어 저에게 했던 첫 마디가 “한번만 하기 없기 입니다”였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말고도 지역구 돌파에 성공할 수 있는 의원이 정의당에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에게 그 바람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미공개 영상에서도, 노회찬은 “10년 안에 정의당 출신 대통령이 반드시 나온다”고 확신해서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사랑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확신입니다. 그에게 정의당은 영혼이었고, 생을 다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결국 그는 정의당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두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우리 당을 미생 정당에서 완생 정당으로 발전시키고, 집권정당의 초석을 쌓겠다고 했던 제 다짐도 이제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안타깝고 원통합니다.

그러나 저는 노회찬의 꿈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노회찬 없는 정의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 누가 노회찬을 대신할 것인지 묻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 누구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 없으므로, 정의당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두배 세배 분발하고, 더 단단해 지고 굳세져야 합니다. 노회찬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 재벌 권력에 맞서는 ‘기백’을 잃지 말고, 일하는 사람들과 약자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투혼’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인간성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웃음’이 돼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찾아주신 국민들께 보답하는 길입니다.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오셔서, 용기를 가져달라,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해 주신 여러분 앞에서 더 이상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정의당은 수천 수만의 노회찬으로 부활하여 반드시 한국 정치를 바꿀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앞으로 ‘노회찬이 없는 국회’는 어떻게 될지도 걱정하십니다.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이 빠짐없이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너무 아깝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저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유권자가 자신의 선택에 미안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노회찬의 뜻을 지지하면서도 노회찬을 찍을 수 없게 만드는 낡은 정치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노회찬 없는 국회’를 계속 견뎌야만 합니다. 죄 없는 시민들이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도록, 노회찬이 헌신했던 약자와 일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젠 정치 제도 개혁에 함께 해 주십시오. 그럴 때 노회찬은 분명히 우리 정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대표님, 대표님. 오늘 한잔해요’, 그러면 ‘아, 좋지, 내가 근처 동네에 진짜 맛있는 집 알고 있는데 거기 예약해둘게요’, 그렇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제게 사라졌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자신은 양복 한 벌을 10년 넘게 입으면서도, 동지들에게 무한히 넓은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당신이 없는 세상이 너무도 황량하게 느껴집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하는 노회찬이여. 이제 영면하소서. 사랑하는 당신의 평생 동지 김지선 옆에는 이제 정의당이 굳건히 있겠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모두는 당신이 가르치고 보여준 대로 정의롭고 평등한 새로운 나라로 나아가겠습니다.


■ 심상정 의원

모두 바쁘실 텐데, 이렇게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우리 대표님과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대표님께서 너무 갑자기 떠나셔서 가시는 길이 무척 외로우실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정말 많은 시민들께서 애도해주시고, 위로해주셔서 우리 대표님께서 가시는 길이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파하실 때 우리 대표님이 계셨으면 유머 한마디로 위로해주셨을 텐데, 제가 그런 재주가 없네요.

여러분께서 많이 사랑하셨던 정말 멋진 우리의 정치 지도자 노회찬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시대의 부름에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셨고, 또 고되고, 고된 진보정치의 길을 앞장서서 헤쳐오신 분입니다.

저희는 늘 대화를 침묵으로 했습니다. 침묵이 믿음이고, 위로고, 이심전심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하면서 기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번뇌의 나날로 날밤을 보냈을 대표님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우리 지선 언니도 엊그제, 저한테 투정을 했습니다. 그이는 당이 99퍼센트고, 여러분이 99퍼센트고 나는 1퍼센트도 아니라고.

그렇게 돌이켜보니까 우리 대표님 만난 지가 3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대표님 용접공 하고 저는 구로동에서 미싱사하고 그렇게 알게 되어서 그 후 민주노동당부터 정의당까지 그 진보정치의 험한 노선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욕도 함께 먹고 칭찬도 함께 받고,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우리 대표님이 “나는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라” 말씀하셨지만, 저는 노회찬 없는 정치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노회찬의 꿈이 제 꿈이고, 우리 정의당의 꿈이고,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라고 저는 믿습니다.

끝까지 우리 대표님하고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 대표님이 이루고자 했던 꿈. 여러분과 제가 꼭 이루겠습니다. 품격 있고 아름다운 정당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큰 사랑 받겠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대표님 기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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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편지>


추도사가 아니고 노회찬 대표님께 짧막한 편지를 하나 써왔습니다. 써온대로 해보겠습니다.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 

‘우리에게 다음 생애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볼게요. 형! 다음 생애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 

그리고 가끔씩은 물 맑은 호수로 저와 단 둘이 낚시를 가기로 해요. 

회찬이 형,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형을 좋아했어요. 

다음 생은 저도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때는 만나는 첫 순간부터 형이라고 할게요. 

잘가요 회찬이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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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 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만에 신도림과 구로 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가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물 세 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그 다섯 분도 역시 마찬가지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 진보정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여러분.

진보정당의 공동 대표로, 이 부족한 사람을 선출해주신 것에 대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락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정의당이 존재하는 그 시각까지, 그리고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동안,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심상정 후보를 앞장세워 진보적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모든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이 진보정의당을 거듭 세우는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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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다츠지(布施辰治;1890-1953)

그는 일제시대의 변호사였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보다 약자의 진실을 크게 보았다.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은, 그가 법조인이라는 지위를 사용하여 수많은 조선인을 위해 일하게 했고,

그의 노력은 역사라는 강물 속에 한 방울의 물이 되었다.

우리는 한 개인이 너무도 작다는 것을 수없이 확인한다. 

그러나 그 개인의 힘이 결국에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믿는다.

후세 다츠지... 그는 <밀정>의 변호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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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언제나 대중의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똑같다. 

때문에 세상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진실을 굳게 잡고 인내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정치가이고, 법조인이고, 언론인이고, 종교인의 사명일 것이다.


일본정부가 전쟁범죄를 은폐축소하고 부정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일본에 이런 언론인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일본에게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불이익을 당했음에도 굳게 감당하는 우에무라 다카시(植村 隆 57) 상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하루속히 이런 분들이 사회적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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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길거리에서, 버스에서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걱정이 앞선다.

청소년 범죄도 점점 악랄하고,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다 그렇고, 세상의 아이들이 전부 그렇게 괴물로 자라가는 것은 아니리라.

한 중학교에서 친구들이 마련한 생일선물...

아이들의 선한 얼굴이 그려지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르고, 

마침내는 그 우정이 부러워 눈물 한 방울 달린다...

그래, 너희들이 돈이 없지 청춘이 없더냐! 

내일은 해가 뜬다, 걱정 말고 가슴을 쫙 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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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의 개발자, 마커스 페르손...

그는 이 게임을 마이크로소프트(MS, MicroSoft)에 팔면서 일시에 거부가 됩니다.

돈이 과연 그의 인생을 충족하게 했을까요?

트위터를 통해 그가 전파한 내면의 이야기를, 잠시 귀 기울여 들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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