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친남'을 아십니까?
[ 와친남을 아십니까? ]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다.
이 녀석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잘 생기기까지 했다.
그래서 엄친아 때문에 세상의 아들들은 힘들고 불행하다.
그런데 요즘 엄친아를 추월하는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와친남'이다.
이게 뭐냐고? ㅋㅋ 시대에 뒤떨어지셨군. 이것도 모르다니...
'와친남'는 '와이프 친구 남편'의 줄임말이다.
이 사람은 돈도 잘 벌고, 가사노동도 잘 도와주며, 성격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기고, 심지어 몸매가 섹시하기까지 하다.
엄친아가 그래도 미성년의 불완전체라면, 와친남은 그야말로 사람으로서는 더이상을 상상할 수 없는 완전체이다. 말하자면 성자이고, 슈퍼맨이며, 도민준이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이 와친남 때문에 시달린다. 심지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며, 부부가 파경에 이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엄친아와 와친남은 모두 '비교'라는 부조리한 의식의 산물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다른 사람의 가정은 더 행복해 보이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인생은 왜소하게 여겨지는, 극단적 비교의식에서 생겨나는 부정적 자기 비하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하신 일은 실수가 없으시다. 모든 것은 가장 적당하며, 그 안에 숨겨진 고유한 가치와 목적이 있다. 나의 아들도 나에게 가장 적당하고, 나의 남편도 나에게 가장 적당하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면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어찌 허비하려 드는가?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 좌절하고, 자기 식구를 비하하는 자학을 계속할 필요가 무에 그리 있겠는가... 엄친아보다 내 아들을 귀히 여기고, 와친남보다 내 남편을 귀히 여기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할뿐 아니라 옳은 길이 아니겠는가.
은혜는 단지 종교적 열심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 격이 높은 차원으로 성장하게 하는 생명이다. 은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황금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행복의 원인이다. 은혜는 자부심이며, 담대함이고, 아름다움이다. 그러니 어찌 이 은혜를 우리가 사모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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