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1 사람은 사람이다!
2009-01-11~18 사람은 사람이다!
오사카의 한 아파트에서 40대의 독신남이 죽은지 한 달 만에 발견되었다. 파견 근로자로 일하던 그는 작년에 예고 없던 해직을 당했다고 한다. 그 후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다가 이 겨울에 굶어죽은 것이다. 부검을 담당한 경찰은 그의 위장에는 아무런 음식물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증언했고, 그의 주검을 발견한 아파트 관리인은 그의 냉장고에도 역시 음식물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언론은 시끄럽게 무심한 시대를 한탄했고, 앞으로 긴 경제적 겨울이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맞물려 사람들의 눈빛을 더욱 침울하게 했다.
기사를 읽으며 우선은 답답했다. 사십이나 된 사람이 굶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세계에서 순위를 다투는 부유한 나라 일본에서 그가 살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살 길이 있지 않았을까?
왜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부끄럽거나 게을러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4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가 그를 살고 싶은 의욕으로부터 갈라놓은 것은 아닐까... 한 달의 약칭이 39,000엔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석달이나 약칭을 못내고 있었다. 이제 곧 강제로 집을 비운다면, 그는 이 겨울에 어디로 가야할까? 나이 사십에 말이다...
부유한 나라일수록 사람들은 희망에 가난하다. 성공과 사치에 대한 갈증이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비참하게 하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은 살아갈 가치도 없는 것처럼 매도되기도 한다. 소위 밥벌이를 하지 못하면, 인간도 아니라는 식의 말들이 사람들의 정신 속에 강박증처럼 박혀 있는 것이다.
하기사 엄청난 스트레스의 사회생활을 견디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의 배수진이라도 치게 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그게 우리 사회를 유지시키는 세뇌적 방법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직장에서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과 상담한다. 맑은샘교회에서도 그랬고, 동경드림교회를 담임하면서도 그랬다. 직장생활의 과중한 업무가 건강을 악화시키고, 부부관계를 금가게 하고, 신앙을 무력하게 하며, 심지어 죽음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을 가져 보았다는 이야기를 직접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한 발 물러서 있는 우리들은 "왜 그러면서까지 그 직장을 다니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자기 이야기가 되고나면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한다.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당분간 견디는 것이 곧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서서히 정서적 공백(패닉)이 찾아오고, 크게 무너진다. 인간이 약하다는 것은 이러한 무너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신경증적인 감정의 충동에 휩싸인다.
사람은 사람이다. 이것은 중요한 명제이다. 그가 나쁜 일을 해도 사람이고,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못해도 사람이고, 심지어 사회에 악을 행해도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까지 '사람'의 범주에 넣고 존중하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다.
사람의 사람됨을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사람의 기계화, 혹은 부속화의 위험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의 사람되는 결정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해준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처럼 판단하고 폄훼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인간의 사형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오직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만 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을 보고, 격려하며, 희망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인생의 한 시점이 전부가 아니라 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 우리가 함께 돕고 사랑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보다 더 간절한 희망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복음의 핵심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나는 복음 안에 이러한 희망이 이미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와 함께 먹고 마시며 고생하셨다. 그분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고생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보았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모범을 배웠다. 땅의 가치가 아니라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던 그분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인생을 깊이 변화시켜 사도가 되게 했고, 전도자가 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사도나 전도자가 아니라도 자기의 자리에서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갈 이유를 그분이 가르쳐 주셨다.
일본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결코 음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의 문제이며, 희망의 문제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짐승 중에서 가장 나약한 짐승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을 믿는가? 그러면 사람을 세우고, 섬겨라! 주님의 관심과 사랑이 사람에게 있다. 모든 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 그러면 온 인류를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복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교활한 사기이다.
세상 사람들은 경제적 이유로 움추리는 지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하는 가장 적당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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