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12-07-15 목양칼럼
영웅의 시대는 갔다. 전장의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용감하게 선두를 달리는 용장(勇將)의 기백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일수록 비겁한 시대가 되었다.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돌격'을 외치는 그런 사람들의 시대 말이다.
작년3월, 후쿠시마의 원전이 쓰나미의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졌다. 처음에 그것은 수많은 피해지의 무너진 건물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원전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다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방송했고, 그것은 또 다른 재난의 시작이었다. 연이어 방사능 누출이 매일 신기록을 쏟아냈다. 인근지역의 소개(疏開)가 시작되었고, 소방헬기가 바닷물을 퍼서 원전 위에 쏟아 붓는 사상 최악의 대응이 전세계에 중계되었다.
가슴이 떨렸다. 원전사고가 빨리 수습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거기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던 것이다. 동경전력의 안일한 태도가 매일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그것은 원전정책을 결정하고 그 혜택으로 막대한 부를 누렸던 사람들의 몫이지 당시 그곳에서 반강제로 발이 묶여 있는 사원들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나라의 위기를 위해 가족과 눈물로 이별을 하고 동경에서 후쿠시마까지 달려갔던 소방특공대원들의 모습은 실로 장엄했다. 그들이 목숨을 이 위기를 모면하는 값으로 내놓아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감동만 해도 되는 일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목숨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게 될까 봐 다른 이의 위기를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외면은 결국 자기의 위기를 앞당긴다.
한 때 나치의 지지자였던 마르틴 니묄러라는 목사가 있다. 그는 나중에 나치의 반대운동에 나섰고 <그들이 왔다>는 아주 유명한 시를 남겼다. 이 시에서 '그들'은 나치이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의 '그들'이기도 하다.
"맨 먼저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지만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지만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지만 /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신교 기독교인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부른다. 이 말은 '항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왕이, 귀족이, 그리고 심지어 종교의 사제가 불의(不義)로 하나님을 사칭할 때에, 오직 손에 성경을 들고 진리를 위해 항의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항의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을 거룩한 희생으로 받고 하늘의 보상을 믿으며 죽어갔기에 시대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일본의 원전은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걸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설사 다시 후쿠시마의 원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결코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도장을 찍고, 누군가를 그곳에 보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이름이 다음에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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