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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2 목양칼럼



자유와 평등. 그것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추구한 가치이며, 동시에 성경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다. 성경이 그토록 를 미워하는 이유도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불행한 사슬에 묶는 굴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그 죄의 사슬로부터 사람을 구원하고 해방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모든 억압에 항거하는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만인제사장이라는 교리를 강조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제사장은 본래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적인 중재를 담당하고 대신하여 수고하는 헌신적인 직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제사장이 하나님의 권위를 사칭하여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이 되고 말았다. 결국 만인제사장은 근본적으로 제사장이라는 역할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라는 이름을 남용하여 벌어지는 일체의 억압과 부조리에 항거한 교리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의 시작을,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대학교회의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5년만 있으면 500주년을 맞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목사라는 이름의 제사장에 눌려 정신적 억압에 신음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목사는 명예로운 직분이다. 목사의 명예는 성도들을 위해 수고하고, 성경을 실천하며, 신앙적 삶의 모델을 형성하는 것에 있다. 목사는 그러한 삶의 궤적 속에서 한 교회를 대표하고, 신자들을 양육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그것은 강요된 권위가 아니라, 동고동락(同苦同樂)의 동행 속에서 얻어지는 신뢰의 권위이다.

때문에 목사가 신뢰를 깨뜨리면 당연히 그 권위도 회수되어야 한다. 목사는 별종(別種)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평등한 신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직분이 특별한 것이다. 직분은 그것을 감당할 때에 명예로운 것이지, 감당하지 못하는 자의 방패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발람이라는 선지자가 나온다. 그는 불행하게도 돈에 신앙과 양심을 팔았다. 모압의 왕을 위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고 시도했다. 하나님은 그가 가는 길을 막으셨다. 더 놀라운 것은 당나귀의 입을 열어 발람에게 교훈을 주신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가르침이다. 선지자의 직분이 귀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면 당나귀라도 대신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예롭게 여겼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타이틀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고 하셨던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 그러나 귀한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은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반대로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명예로운 권위를 내어줄 필요는 없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하여 매우 단호하며, 이것이 성경적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교회에서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여겨야 한다. 억압의 굴레를 다시는 쓰지 말라. 하나님은 자유와 평등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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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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