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양하고 전부 내 마음 같지는 않습니다.
2015-02-04 목양칼럼
나이를 먹으니 더더욱, 사람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교양과 지식의 수준도 다양하고, 사고방식도 정말 많이 다릅니다.
세상에 왜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고 전쟁이 쉬지 못하는지를 나름 이해할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극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가지는 일반적인 반응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자기만 사람이고 상대는 사람 같지도 않다는, 아주 독선(獨善)적인 반응이지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상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사람이고 상대방이 사람 같지 않을 뿐입니다.
이 유치한 구조가 세상의 많은 갈등과 다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이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종족, 국가, 신앙, 풍속을 혐오하고 자기 중심적인 기준을 근거로 파괴적인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계속되는 지구촌의 부조리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떨까요?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미덕과 교훈이 ‘사랑하라’는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친절하게도, 그 사랑에 대하여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폄하하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교회 밖을 더럽고 냄새 나는 세상으로 깍아내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불의한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분명한 사실은, 불의한 세상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것을 심판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그리스도인은 인내하며, 겸손하며,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 시간(하나님의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뿐입니다. 이조차 우리의 생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시야를 더 좁아지게 하고 마음을 더 옹졸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은 연륜이 깊어갈수록 더욱 관용이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 순결함의 저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로서 마땅한 처신인 것입니다.
사람은 다양하고 전부 내 마음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특별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곤한 삶조차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신앙으로 누리는 은혜를 내세워 우쭐대거나 자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러라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결코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구하십시오.
사랑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치료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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