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8 큰 그릇은 천천히 만들어진다
2009-06-28 큰 그릇은 천천히 만들어진다
2003년의 3월2일 목회를 시작하며 어떤 목회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했다.
먼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각오의 중심에는 과연 내가 실현하려고 하는 목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벌써 훌쩍 만 6년 전의 일이다.
나름대로 다양한 생각을 했고, 자기 목표를 설정했다. 6년을 목회에 전념하고 안식년이 되는 7년에는 새로운 선교지를 찾아 나서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 때에는 어느 정도 교회가 안정되어 있을 것을 상정하고, 작더라도 성경적인 비전에 헌신하는 교회로서의 정체감을 찾아가겠다고 포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3년만에 개척했던 교회를 정리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 결정은 무모해 보이리 만큼 막연했다. 나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신앙의 후원자가 되시는 어머니조차 "꼭 일본에 가야만 했느냐?"는 질문을 지금도 하신다. 한국에서의 개척이 힘들었다거나, 목회적으로 지쳐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생기 넘치는 30대의 젊은 목사였고, 주변에 후원과 기도를 아끼지 않는 동역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내 안에 들리는 그분의 목소리에 순종하여 일본을 향했다. 그리고 어느덧 이곳에서 3년의 세월을 보냈다. 참 힘겨운 세월이었다.
일본에 도착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목회적 목표들을 대부분 수정해야 했다. 성경적 원칙이야 어디인들 변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주어진 현실은 많이 달랐다. 양들의 상태와 성향, 신앙경력, 경험, 추구하는 바와 이해할 수 있는 수준들이 많이 달랐다. 그들은 장년이면서도 청년이었고, 청년이면서도 노인들이었다.
일본에서의 3년 동안 가장 많은 훈련을 쌓은 것은 역시 나 자신인 것 같다.
몽골에서 섬기는 이용규 선교사가 <내려놓음>이라는 간결한 메시지로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영적 광야인 선교지에서 가장 먼저 배울 수 밖에 없는 영성은 비움과 내려놓음이다.
가난하더라도 목사로의 자존심과 명예만은 귀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선교지에서 목사는 별반 의미가 없는 이름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명(無名)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했다. 교회를 섬기고, 교우들을 섬기는 것에 그저 하나의 신앙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 섬김의 과정은 처음에는 고달프고, 속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하는 동안 점점 주님을 이해하게 되고, 성경의 새로운 일면들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은혜가 마음에 채워지면서, 요즘은 여전히 낮아지지 못하는 나의 다른 일면들에 대하여 고민한다. 비우고 또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마지막 욕심, 겉으로는 신앙을 말하지만 정작 안으로는 여전히 주님과 다른 길을 욕심 내는 나의 다른 심장에 대하여 돌칼을 든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하고 일가 친척들로 부터도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大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大器晩成)' 하는 그런 형이야. 두고 보라구.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시야가 좁다. 가능성은 무시되고, 현실만이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누군가 미래를 잉태하고 그 대가를 치루지 않는다면 어찌 인류가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을까!
정말 좋은 것은 쉽게 얻는 법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귀하고 좋은 것을 얻는 인생을 꿈꾼다. 대박의 꿈은 잠시 즐거운 상상의 꺼리가 될 수는 있지만, 인생의 기초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사람은 인생 자체를 낭비하고 결국에는 빈 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내를 보면 면목이 없다. 교회 지체들을 향해서도 비슷한 마음이다. 목사만 이곳에 오면 금새 교회는 회복되고, 신앙생활은 편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3년이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그 지루한 싸움에서 지쳐가는 표정이 역력하다. 교회의 건강한 목적도 좋고 비전도 좋은데, 당장 현실도 좀 챙기고 변했으면 좋겠다는 바램, 누군가의 도움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생각들이 얼핏 스친다.
하지만 아직은 이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의 목회를 좀 더 계속해야겠다. 이 고생이 뭔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벽돌을 쌓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충분히 숙성되어 단단하게 굳기를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100년을 버티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걱정이 많은가? 그렇다면 기도하라. 기도하지 않으면서 걱정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줄로 알아라.
다시 말한다. 교회는 돈이 아니라 기도와 믿음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와는 교회를 세울 수 없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변할 생각이 없다,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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