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1 이루 말할 수 없는 피곤함
2009-11-01
사람에게 있어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소홀히 여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육체가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를 위한 삶은 결과적으로 허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근본적인 만족을 줄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입에 달콤한 음식을 즐기면 이가 썩는다. 건강에도 이로울 리가 없다. 하물며 인생 자체에서 육체가 원하는 삶을 사는데 진정한 만족과 행복이 올 수 있겠는가?
그래서 육체는 관리해야 한다. 몸무게만이 아니라 모든 소욕에 대하여 적절한 제한과 조절이 필요하다. 좋은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過猶不及]. 모든 것에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고 우리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
3D 직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기피하고 꺼리는 직업을 분류하니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직업군을 3D 직종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비록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나는 목사야말로 3D 중의 3D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목사가 사명이지 직업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엄연한 현실이 그 일로 가족을 부양하고 먹고 살아가니 직업이 분명하다. 하지만 고생을 하되 알아주는 사람이 적고, 옷은 더러워지지 않아도 기분을 더럽힐 때가 많으며, 때로는 몸뿐 아니라 그 정신까지 걸고 위험한 승부를 해야 하니 분명히 3D 직종이 맞다.
자기를 혹사하는 것에 비하여 말도 되지 않는 이익을 취하지만,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것은 그것이 직업만이 아니라 사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목사는 목사만이 아는 뭔가가 있기에 그 길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목사도 가끔은 피곤하다. 푸념이 아니라 사실이다.
진짜 피곤함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몸의 피곤함이 아니다. 영혼의 피곤함이다. 몸의 피곤함은 아무리 피곤해도 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영혼의 피곤함은 그 끝과 깊이를 모르겠다.
한 주일을, 한 달을, 3년을 위하여 기도하며 복음을 뿌렸다. 그 기다림의 세월이 쉽지 않았다. 피붙이도 아니지만 형제보다 더 가까이 품고 기다렸다. 그런데도 묵묵부답(黙黙不答)이다. 도무지 기대했던 믿음의 싹이 보이지를 않는다.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것에만 빠져 있고, 살아가는 것은 게으름의 전형이다.
이제는 맘을 접어야 할까? 솔직히 그러고 싶다. 하지만 아직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는가 보다. 다른 양을 붙여주시지 않고 계속 그 양을 내 앞에 두시니 말이다.
그래도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왜 그것을 모르는가? 은혜 받을 때에 은혜를 받지 못하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참담한 말이지만 그것이 성경이다. 은혜와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만하면 언젠가는 자기가 그 대가를 치른다. 정말 조심할 일이다.
목회자를 영적으로 피곤하게 하지 말라. 내 말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주의 깊게 새겨 들으라.
히 13:17 여러분의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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