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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8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교회마다 청년의 가뭄이다. 몇몇 교회들은 청년사역이라는 특성으로 알려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청년들이 귀해졌다. 베이비붐 시대가 지나면서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사회의 노령화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노령화보다 더 급하게 교회의 노령화가 진척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별로 자각이 없는 것 같다.

교회는 왜 청년들을 잃게 되었을까? 사실 나는 이 점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 지난 반 평생, 20여 년을 사역했다. 교육부서를 맡아 주일학교와 청년들을 담당했던 시간만도 십 수년은 되는 것 같다. 그 안에서 나는 참 많이 감동했고 또 절망했다.

사람들은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의 특징을 찬양과 훈련으로 요약한다. 물론 이 점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기존의 조직과 틀을 가지고서는 새술과 같은 청년들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청년목회의 가장 중요한 색깔은 ‘감성’이다. 청년들은 감동을 찾고, 감동을 통해 힘을 얻으며, 감동할 때 헌신한다. 장년과 같이 의무감이나, 직분,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기성세대의 장년들에게는 무책임하게 보여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비난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회적 특성을 가다듬으면 청년들은 지금이라도 교회 안에서 정착하고 자라갈 수 있다.

그런데 이 감성을 일깨우는 감동이 다만 ‘헐리웃 액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늘 하는 말이지만, 강아지도 자기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가족을 알아본다. 하물며 사람이고, 그토록 감수성이 뛰어난 청년들이 어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무엇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교회가 청년들을 잃고 있는 것은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헌금을 많이 하지 못한다. 청년들은 연애문제를 일으킨다. 청년들은 힘 쓰고, 귀찮은 일을 시키기에는 좋지만,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에는 아직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청년들은 그저 간식을 주고, 밥을 사 먹이면 좋아한다. 청년들은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쓰레기를 만든다.

솔직하게 대답해 보자. 이런 생각들이 기본에 깔려 있다면 아무리 청년부 예산을 많이 집행하고, 훌륭한 프로그램과 전임 사역자를 둔다고 하더라도 과연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나겠는가?

 

나는 동경드림교회에 부임하고 장년들을 독려해 왔다. 모든 궂은 일을 장년들에게 요구했다. 청년들을 심부름꾼처럼 여기거나 종처럼 시키려고 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청년들을 내 자식처럼 여기는 마음을 교회에 심기 위해서였다.

물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 하는 위세는 아니다. 오히려 나이 먹은 사람은 나이 먹은 값을 해야 하고, 존경의 몸짓 만이 아니라 존경의 마음을 품도록 만들어야 하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어른 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자기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장년을 존경한다. 그리고 그런 장년이 있는 교회는 청년들이 부흥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청년의 시기야말로 사랑에 가장 민감하고 목마른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옷에 맞추어야 하는가? 옷이 아이에게 맞추어야 하는가?

물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는 배내옷을 준비한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옷을 손질하여 아이에게 맞추어 입힌다. 조직과 프로그램, 찬양과 훈련 등은 청년들을 교회 안에서 입히는 옷과 같다. 그것은 청년들이 많이 모이면 저절로 해결되어간다.

청년들 중에서 좋은 리더가 나와 조직을 정비하고, 그들 스스로 연습하여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훈련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모이기 시작하면 말이다.

우리 교회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성에 차지는 않는다. 청년들을 부모로서의 시각으로 봐야 하는데, 동경그림교회의 장년들이 아직 너무 젊어서 그런 시각을 쉽게 가지지 못한다. 형과 누이의 시각으로 보니, 아직도 품고 사랑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훈련된 청년은 교회 안에서 심부름이나 잘하는 청년이 아니다. 훈련된 청년은 신앙 안에서 진로를 결정하고, 배우자를 선택하며, 신앙적 삶을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런 청년은 조직과 훈련이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만남과 감동이 세운다.

목회자가 감동스러워야 하고, 장년들이 그러해야 한다. 그러면 청년들은 그 모습을 보고 꼭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뒤를 따르는 것이다. 때문에 청년을 훈련하고 싶다면 당연히 장년을 먼저 훈련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가르침이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에는 청년들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이 시대의 교회들이 헌신된 청년들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원한다. 1년 워킹비자로 왔다 가면 어떠한가? 그들이 어디서든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으로 서 준다면, 함께 살아가고 늙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쁘지 않겠는가?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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