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2 자기다운 마흔은 꽃보다 아름답다
2010-09-12 자기다운 마흔은 꽃보다 아름답다
성공과 승리의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이 모든 그림자는 가려지고 좋은 점들만이 부각된다. 마치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갈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처럼.
이 불편한 반쪽 짜리 - 혹은 그 이하의 -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실패와 패배의 경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인생은 외계의 다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인생을 사랑한다. 생명과 삶은 성공과 실패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은 어떤 결과를 만드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표피적인 처세술을 혐오한다. 내 자신의 가치관이 너무 고전적 舊式(구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변명 같은 이유를 하나 더 붙인다면, 성공을 위해 살기 보다는, 사는 것 자체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순간순간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과 남을 속이는 표피적인 처세술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게 된다.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입과 행동은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는 - 이런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분열은 결코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나는 화가 나면 화를 낸다. 외로우면 외롭다고 한다. 슬프면 울고, 우울할 때에는 웃을 꺼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조금은 천박해 보이는 코미디를 보면서 박장대소를 하는 것도, 삼각 관계의 드라마를 보면서 연민의 눈물을 짓는 것도, 창가에 서서 먼 하늘을 응시하며 머릿속에 시를 읊조려 보는 것도 결국은 나의 모습이다.
사람의 내면은 클래식을 듣는다고, 시를 읽는다고 고차원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코미디를 보면서 웃어 준다고, 가요를 따라 부른다고 천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내면을 가장 천박하게 하는 것은 '거짓'이다. 좋은 것을 좋지 않다고 하고, 싫은 것을 싫지 않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내면은 언제나 불편하다. 반대로 사람의 내면에 가장 좋은 자양분은 '진실'이다. 솔직함은 실수까지도 사랑스럽게 한다.
나는 내가 이룬 것들에 대하여 자부심이 있다.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초라하고, 한심한 존재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답게 살아왔다. 고민했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언제나 나의 안에서 깨달아지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향하여 나 다운 보폭으로 걸어왔다. 그래서 삶의 순간마다, 구비마다 추억이 배이고, 따뜻한 감정이 스미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마흔이 넘은 요즘은 가을에 앞서 외롭다.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이들이 곁에 많지만, 여전히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만 한적한 곳으로 숨고 싶고, 말수를 줄이고 싶다. 좋은 책이 고프다.
이럴 때는 그냥 조금 기다려 주면 된다. 괜찮다. 성공을 향한 의지는 별로 없어도 삶에 대한 애착은 누구보다 강하니까. 조금 기다리면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재촉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인생에 더 이상 반전이 있을까 싶다. 외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적으로는 쉽게 예상되지 않는다. 나는 나다운 인생의 방식을 찾았고, 그것을 이미 구현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不惑(불혹)의 나이에 知天命(지천명)이라, 자기다운 마흔은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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