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3 변화의 간절함을 품다
2010-10-03 변화의 간절함을 품다
나도 그런 날이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 '야호'하고 외치고 싶은. 세상 모든 것을 내 발 아래에 두고 서보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우러러 보게 만들고 싶은.
그런 욕망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서 지금도 마음의 한켠에서는 수도 없이 수군거리며 나를 부추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얼추 나이를 먹었고, 그래서 그것이 틀린 목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은 안다. 만약 내가 그런 마음을 좇아 내 인생을 살고나면 결국에는 허무한 날이 올 것이며, 나는 가면을 쓰고 마치 내가 괜찮은 것처럼 가장하며 살아낼 자신이 없다.
길을 떠나던 날과 내가 많이 변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외양적인 과시(誇示)가 아니라 변화이다. 내가 먼저 변하고, 나의 가정과 교회가 변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신성한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목회를 하면서, 날마다 한계를 절감했다. 처음에는 변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하여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들을 고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고쳐야 한다는 것에 눈을 뜨면서, 나의 싸움은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치열하게 옮겨갔다.
아주 사소한 습관, 생각의 방식, 이기심조차 내 안에서 죽어가는 과정에는 엄청난 저항이 뒤따르고 있다. 목사인 내가 이렇게 변하기 힘들다면, 날마다 세상에 온 몸을 담그고 살아가는 저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정말 목사라면, 나는 말하는 설교뿐 아니라 보여주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죄성과 악함을 죽이고, 그래서 날마다 점점 더 깊어지고 거룩해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나는 실패자에 불과하다.
그것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의 사람이 모이고, 어떤 건물을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문제이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할 공통의 꺼리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모든 기도, 관심, 노력의 꺼리가 되지는 못한다.
나는 변해야 한다. 내가 설교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도록 깊어져야 한다. 그래야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하는 나의 양무리를 선한 길로 인도할 수 있다. 그것이 있고 나서야, 많이 모이고 건물을 짓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말이 이해받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삶이 나누어지고, 우리 인생을 통해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면, 그제서야 처음부터 어디를 향해 출발했던가를 알게 될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말씨와 행동에서, 그 사람의 신앙과 깊이가 드러날 것이다.
나는 그 어느 날을 위해 목회자의 길을 가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는 것은, 내 양무리를 위해 먼저 나를 변화시켜 달라는 간절함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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