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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 2016년11월2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주도한 혐의로, 용혜인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검찰이 용씨에게 징역형을 구형한 혐의는 2014년 세월호 침묵 행진과 유가족 단식 농성 당시 항의 집회, 여러 추모집회 등에서 집회 주최자로서 신고된 범위를 이탈했다는 죄(일반교통방해)와 미신고 행진을 했다는 죄(집시법 위반)등입니다.

용혜인씨가 마지막 공판에서 발언한 최후진술을 공유합니다.

과연 그녀의 침묵행진이 징역 2년을 구형할 정도로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한 행동인지... 대한민국의 검찰은 이미 상식으로 납득하기에는 너무 멀어진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염려합니다. 지금 대통령에게도, 검찰에게도 마지막 기회가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손석희 앵커의 브리핑과 같이, 그 누군가의 마지막 잎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최후진술 ]


세월호가 진도앞바다에서 침몰한 지도 1000일이 다 되어갑니다. 그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저의 삶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말이 많지만 짧은 최후진술 속에 다 담아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법리적 이야기들은 변호사님과 함께 재판진행과정에서 많이 진행했으니 굳이 최후진술에 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이곳에 계신 판사님, 검사님, 변호사님 그리고 다른 분들은 세월호의 침몰소식을 접하셨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시험기간이라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학생회실에서 학교후배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있던 후배 중 한 명이 핸드폰을 통해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했고, '단원고'라는 익숙한 이름의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단원고. 중학교 3학년, 제가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할 때, 당시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단원고는 교복도 예쁘고 새로 생긴 학교라 많은 친구들이 단원고에 가고 싶어 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놀라웠지만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마음 놓고 수업에 들어갔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원구조라는 소식은 대형 오보였고, 몇 명인지조차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채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배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너무 놀라웠지만 그래도 수백 명의 잠수부, 배가 수백 척, 헬기가 몇 대, 조명탄이 수백 개 투입되어 대대적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을 놓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사실 당시에는 몇 명이라도 구조되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언론의 카메라 플래쉬 앞에서 가족과 눈물과 감동의 재회를 하는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대로된 구조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밝혀졌습니다. 전 국민이 슬픔에 빠졌고, 언론에서는 '베르테르 효과'를 운운하며 이 참사가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소비심리 위축'같은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미안하다"라는 말이 가장 많았습니다. 터져나오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보면서 일면식도 없는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미안할까 고민스러웠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미안하다'는 말은 304명의 목숨이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해야하는 사회를 만든 것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온 국민을 휘감은 슬픔 속에서 저는 이 슬픔을 혼자 속으로 삭이기만 하면 병이 날 것 같았습니다. 언론에서는 '베르테르 효과'를 보도하기 시작했고, 저는 물이 들어오는 순간의 공포와 절망, 절규가 가득찬 배 안의 장면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뭐라도 해보자고 이야기했고, 당시 언론에서 가장 많이 보도되었던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이 이 참사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으라"라는 피켓과 추모의 의미를 담아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꽃을 들고 검은 옷을 입고 서울 시내를 걷기로 했습니다.

5월 8일, 서울시내에서 처음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날 밤 앵커들에게 '검은 옷 입지 마라"라고 한 KBS 보도국장의 말에 분노한 유가족들이 KBS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가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한 KBS 여의도 앞에서 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70개가 넘는 영정사진이 유가족들의 머리 위에 들려 수많은 경찰병력과 차벽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영정사진 속의 눈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 제대로 영정사진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유가족들은 사과 받지 못했고, 당시 유가족들은 "그래도 믿을 건 박근혜 대통령님 뿐"이라며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유가족들은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고, 추위 속에 화장실에 갈 때도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가던 유가족들을 길바닥에 앉혀놓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서 "소비심리위축"을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날의 영정사진 속 얼굴들을 앞으로도 계속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경찰이라는 곳은 사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고 두려운 곳입니다. 자신이 피해자여도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찾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난생 처음 연행되어 경찰서에서 2박 3일을 자보기도 하고,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고, 압수수색영장이라는 것을 처음 직접 보기도 했고, 2년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누군가 저에게 "후회하냐"라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참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저에게 던졌던 질문은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였습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전근대적이고 끔찍한 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우리를 대의한다는 정부와 정치권이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남겨진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재판장님께서는 세월호 참사 304명의 죽음 이후 남겨진 우리의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을 뿐이고, 앞으로도 한치 앞의 나의 삶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법치주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용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억압받는 사람들이 그 억압을 끊어내기 위해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들 속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배웠습니다. 이 재판은 저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재판이지만,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고, 벌금을 내야하고, 구속되었습니다. 추모는 죄가 아닙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인으로서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윤보다 인간이 중요한 사회를 만들자는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우리 모두가 무죄입니다.

참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사실은 이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또다시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 한 명의 재판이었지만, 이 재판의 결과가 불의와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함께 슬퍼했다는 이유로 잡혀가고 재판을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희망을 줄 수 있는 결과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932일째인 2016년 11월 2일

용혜인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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