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04 실제적인 믿음
2006-06-04
옛날 어느 농촌에서 긴 가뭄으로 인하여 위기에 처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특별 기도회를 선포하고 예배당에 모여 날마다 하나님께 단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1주일의 작정한 시간이 마쳐갈 무렵, 정말로 마지막 날 기도회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서려고 하니 천둥이 치고 시원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 받았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의 눈에 한 꼬마가 들어왔습니다. 꼬마는 장화를 신고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너는 어떻게 장화와 우산을 가지고 있니?”
꼬마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장화와 우산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거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비를 주실 것을 믿었어요!”
기도하는 것은 귀중한 일입니다. 아울러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부합하는 선택과 행동을 기대하십니다. 기도와 불평을 병행하고, 기도와 근심을 병행하고, 기도와 욕심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기도를 욕되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맙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은 단순한 마음의 확정이 아니라, 그 믿음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침울한 로뎀 나무의 그늘 보다는 응답의 기쁨과 기대 속에서 우리를 만나고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평강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슬픔과 고민도 분명히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저녁에는 슬픔이 기숙해도 아침에는 즐거움이 회복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자의 저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데에는 기도하지 않는 묵은 습성과 기도와 삶을 유리시켜서 한 가지로 묶어내지 못하는 신앙적 부조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기도 밖의 사람들과 매한가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를 달라고 기도하러 갈 때에는 장화와 우산을 준비하십시오.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마른 땅을 밟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에 대하여 그렇게 용감하고 실제적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용감한 자에게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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