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25 다음 월드컵을 기다리며
2006-06-25
한국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서 모든 아시아팀이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기적과 같은 승리를 기대했던 일본이나, 투지를 불태웠던 한국의 탈락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한국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심판의 불확실한 판정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높았습니다.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2년의 4강 진출이라는 한국의 위업이 결코 주최국의 기득권에 의해서만 달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월드컵 리그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팀을 약체로 평가하는 논조가 대체적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유럽과 의연하게 겨룰 수 있는 팀으로, 그 체력과 조직력에서, 정신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매우 소중한 소득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차범근 해설위원의 칼럼이 생각납니다. 차감독이 독일의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뛰던 시절에는 매 경기마다 전투와 같은 각오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라운드의 모든 선수들이 경쟁자였고, 그래서 목숨을 거는 축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차두리는 똑같이 세계 무대에서 뛰지만 자기와 많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선수이면서도 지단과 같은 축구영웅의 팬이고, 경기에 나가지 못해도 상처받기 보다는 의연하고 즐겁게 축구를 하는 것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차범근씨의 축구가 투쟁이었다면, 차두리의 축구는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독일까지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어 다수의 프랑스 응원단을 잠재우고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조국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응원을 마치고 뒷자리를 치우는 모습이나, 선수단을 향하여 못하는 것을 꼬집어 욕하기 보다는 격려하고 다음 월드컵을 위해 준비하자고 다독거리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기쁘기도 합니다.
축구라는 하나의 종목에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 리그에서 우리는 세계와 어깨를 대등하게 하고 비로소 자기의 몫을 감당하는 현재의 우리를 다시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국팀의 보배로 일컬어지는 박지성 선수는 스위스와의 게임이 끝나고 나오면서도 심판을 비난하기 보다는 “그래도 심판의 판정도 경기의 일부이다. 내가 아직 만족스럽게 플레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참 건강한 젊은이가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히딩크가 보여주었던 좋은 리더십도 필요하고, 박지성, 이영표와 같은 신세대의 새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으니 그것을 찾고 보충하면 반드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더 뛰어난 민족성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조국을 위해 더 기도하도록 합시다.
다음 월드컵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은 저만의 성급함일까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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