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7 속지 말라, 하지만 속아 주라
2008-01-27
얼마 전 주일에 교회에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정 아무개 집사라고 소개한 그분은 처음부터 목사를 붙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래 하셨습니다. 자신이 펀드 매니저인데, 금융사고와 관련하여 소송에 걸려 미국과 한국에 돌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그래서 무비자로 일본에 홀로 남아 3년 동안 도피생활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잠시 피할 곳을 찾다가 우리 교회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이 그분을 받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교회에서 밤을 보낼 때에 자는 이부자리와 전기장판을 내어드리고, 제 옷을 우선 드려 입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옷을 목사가 손수 세탁하고 건조하여 돌려 드렸습니다.
그렇게 주일부터 수요예배까지 함께 있었으니까 만4일 정도를 교회에서 머무른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한 번은 그분을 만나 여러 가지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참 말솜씨가 좋았습니다. 한 번 대화를 하면 서너 시간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내었습니다. 때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혼자 떠도는 분이 누구와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해볼까 싶어서 꾸~욱 참고 말 친구가 되어 드렸습니다.
솔직히 목사인 내가 그분에게 드릴 것이 지금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생활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크게 드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으로 그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같이 웃고, 옆에 있어주고, 이해한다는 사인을 보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적어도 2주 정도는 우리교회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4일만 계시다가 그냥 가셨습니다. 올 때도 예고 없이 오더니, 갈 때도 아무런 인사 한 마디를 남기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분이 입고 가버린 겨울 츄리닝은 사실 저희 장인어른의 유품입니다. 그리고 잠시 빌려 드린다고 생각했던 저의 난방까지 그냥 입고 사라졌으니 집사람은 못내 서운하고 화가 나는 것 같습니다. 지체들도 말을 전해 듣고 나름 괘씸하고 불쾌하다고 말한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께 속지 않았습니다. 다만 속아드렸을 뿐입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나름 솔깃하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전부 믿기에는 뭔가 허전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에게 교회의 열쇠와 저의 자리를 내어 드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목사이고, 이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목사는 속지 않는 사람보다 속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교회는 어쨌든 추위에 떠는 한 사람을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있어 진실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하다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 설사 나쁜 사람이라도 사람은 사람이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속지 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정작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묵상하니 대답은 너무나 자명했습니다. 추운 겨울 바람에 피할 곳이 없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은 분명 알면서도 속아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옷을 벗어 주시고 우선 먹이셨을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바보처럼 속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때때로 알면서도 속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신앙이며 참된 용기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저와 같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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