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5 미래의 사람
2008-06-15
매우 모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평범한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삶의 길은 단조롭다.
엄마들은 ‘남들처럼’ 아이를 키우는데 조바심한다. 다른 아이들이 걸을 때 즈음이면 우리 아이도 걸어야 하고, 다른 아이들이 말할 때 즈음이면 우리 아이도 말을 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더디면 근심이 늘고, 조금이라도 빠르면 기뻐하고 자랑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서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그 ‘평범’의 범주 안에서 별 생각 없이 달려왔던 것 같다. 하나의 깃발을 잡으면 다음 깃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주저하거나 고민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빨리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만 주력하면 되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아직도 많은 경우에는 변하지 않은 과거의 모습들이 남아 있지만, 그러나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놀라운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를테면, 공부가 전부는 아니니까 무엇이든 소질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과거에는 거의 이단자적 생각으로 사람들의 놀라움을 샀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몸소 따르지는 않더라도 동의하거나 수긍한다.
그래서 내 아이들의 인생은 보다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성경에 갈릴리 뱃사람이 천대를 받았으나 오늘에는 결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내가 자라던 시절에 차별되었던 많은 직업과 분야들이 오늘에는 그 의미를 인정받고 있다.
내가 살았던 40년의 세월이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면, 앞으로 살아갈 40년의 세월은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까? 어쩌면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년 발전하는 컴퓨터 기술과 로봇의 발달, 인터넷의 변화, 혹은 기후재앙까지 우리의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삶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쉬워질 수도 있고, 또한 인간 탐욕의 결과로 참담한 재앙을 불러들여 비참해질 수도 있다.
개인적인 미래만큼이나 나는 목사로서 교회와 복음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이미 기득권층의 대변인으로 오해받고 있는 조국의 교회는 넷심(Net心)과 젊은이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물론 당장이야 교회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탈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들이 점점 교회를 약화시키고 우리의 미래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의 방식도 좋았다. 하지만 이제도 그러한가?
복음과 교회에 있어 단조로운 관습의 틀을 깨고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결국 교회는 세상 밖으로 밀려나 ‘그들만의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다. 훌륭한 사냥꾼은 새를 향해서가 아니라 새가 날아갈 자리를 향하여 활을 쏜다고 한다. 지금 당장에 훌륭한 교회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갈 날들을 통해 점점 견고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께서 꿈과 예언의 영이라고 말해 준다. 그분의 은혜 아래서, 우리는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복음의 사람들이란 미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로마에 집중했던 것처럼, 루터와 칼빈이 새로운 개혁의 중심으로 도시상공인을 발견했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그런 안목을 열고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은 미래의 사람인가? 과거의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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