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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4 하나님을 안다는 것



신앙에는 '지식'의 차원과 '경험'의 차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을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머리로 아는 차원의 신앙은 미숙하고 부족한 신앙이며, 경험을 통해 가슴에 이른 신앙이야말로 진실된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의 문자인 히브리어에서 '알다(know)'의 의미를 가진 말은 '야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다양한 용례를 갖습니다. 심지어 아담이 하와를 알았더니 하와가 잉태하게 되었다는 표현까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부관계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있어 '알다'라는 것은 결코 '머리'에 한정되는 무엇이 아닙니다.

마치 남남으로 만난 부부가 생활과 삶을 통해 서로를 경험하고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처럼, 그 모든 실체에 직면하는 지식이야말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이 말씀을 이해할 때도 이러한 유대인의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문자를 번역하여 이해하면 자유가 생겨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진리를 알고 경험하면 진리가 우리 자신을 자유하도록 만들어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꽃은 '변화'입니다. 아무리 오래 믿고, 열심히 믿어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모든 세월은 허무하고 덧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앙적 변화야말로 진리를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만 나타납니다.

 

청년 시절, 아주 회의론적인 태도를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철학적 논쟁을 즐겼는데, 그의 결론은 신앙이란 마음의 위안을 위한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태신앙이었던 저는 화가 나서, "그렇게 하나님도 못 믿으면서 뭐하러 교회에 나오냐?"고 쏘아 붙였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서 교회생활을 선택한 것 뿐이라고 도도하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산기도를 갔습니다. 청년회가 산속의 기도원에 올라 밤기도를 하는 행사였는데, 그에게는 신기한 소풍 정도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는 차에 올라 자매들에게 우스개 소리를 하며 히히락락 했습니다.

우리는 깊은 밤에 기도원에 도착했고, 간단한 예배 후에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산속의 기도처에 들어갔습니다. 

산속의 기도실은 두 세 명이 간신히 들어가는 공간에 희미한 전등이 달려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기도를 시작했는데, 그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옆에서 기도하던 후배가 괴성을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짐승의 으르렁 거림과 비슷한 그 소리에 놀라서 그는 무서운 느낌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청년회장이었던 저는 전도사님과 기도실을 돌아 보다가 그 사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움과 당혹감으로 도망도 가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도사님과 저는 두 명도 비좁은 그 기도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 함께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자연히 한 구석으로 몰려 우리를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30여분을 맹렬하게 기도했을 때에, 이상한 소리를 내던 후배가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칠었던 숨소리가 돌아오고 으르렁 거리는 듯하던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미혹되었던 그 후배는 흐느끼며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독거려 안정을 취하고, 기진맥진한 그 후배를 붙들고 산에서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도도하게 신앙을 조롱하며 철학을 앞세우던 그 청년이 자기 곁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나름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백 번을 더 설명하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는데, 그 한 밤의 경험을 통해 그는 자기의 틀을 깨뜨리고 마음을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십니까? 진실로 아십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찬송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그들은 신앙을 결코 문자의 차원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를 갖고 삶의 현실과 싸웠고 그를 통하여 무수한 '증거들'을 수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수확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참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위대한 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믿음을 가지고 싸워 보십시오. 비로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경험이 하나 둘씩 쌓여갈수록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제가 많다는 것은 많이 변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대답일지도 모릅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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