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896)
목회 (632)
인생 (179)
동경in일본 (35)
혼자말 (50)
추천 (0)
11-24 03:25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2010-04-04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창세기의 26장에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창 26:17,18)


아브라함과 이삭의 나이 차이가 100살이다. 지독한 세대차이를 예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삭은 아버지의 방식들을 이해하고 순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들은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아버지와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들들의 운명이다. 그것이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기질 때문이든,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섭리이든, 피하기 힘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삭은 현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이루었던 업적을 부정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법을 알았다. 그는 아버지가 지었던 이름으로 우물들을 부르며, 아버지를 존중하고 또한 깊은 그리움으로 기념했다.

특별히 이삭은 신앙적으로 더욱 그러했다. 아버지의 신앙을 고리타분하고 구식의 신앙이라고 매도하지 않았다. 그것을 사랑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다시 이삭의 하나님이 되셨던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찬송가 이외의 ‘복음성가’가 200 여 곡에 불과했다. 그리고 신앙과 관련된 책도 많지 않아서, 대표적인 기독교 서적이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 정도였다. 

그렇지만 신앙의 갈망은 깊고 순수했다.

고난주간마다 금식을 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이 죄송하고 슬퍼서 일주일 내내 우울한 표정으로 살았다. 그리고 잘 생각나지도 않는 죄들을 회개하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쓰며 가슴을 쳤다.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십자가와 부활에 관련된 구절에는 빨간 볼펜과 색연필이 빼곡하게 밑줄 그어졌다. 요절을 암송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살고, 부활절 예배에서 성찬을 받을 때에는 예외 없이 흐느꼈다.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불편하던 예배당의 추억이 가고, 극장식의 화려한 예배당들이 세워졌다. 가요보다 더 음악적인 찬양들이 만들어지고, 이제 복음은 산업화되고 있다. 매주 새로운 신앙의 길을 인도하는 서적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터넷은 지구상의 모든 설교를 안방까지 배달한다.

그러나 고난주간이 허전하다. 그 시절만큼 절실한 무엇이 없다. 기도에서도, 예배에서도 흐느끼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있다면 너무 유별나게 보여서 눈총을 받을 지경이다. 그래서 더 이상 십자가를 아파하는 사람도, 부활절 성찬 앞에서 맹세하는 젊은이도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이 그립다. 세월을 거슬러 싸워볼 수 있다면, 이삭처럼 우물이라도 파고 싶은 심정이다. 과거와 단절된 신앙이 아니라, 과거의 은혜를 이어가는 내 어린 시절의 신앙을 이 동경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양(量)과 포장으로 승부하는 신앙이 아니라, 깊이와 진심으로 담아내는 신앙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내 할머니와 어머니의 하나님이, 이곳 동경에서 내 아이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다른 소원이 없겠다.

그것이 내가 그토록 절실하게 주일학교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 |